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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북스 Aug 13. 2024

제자리 꿈

  그 사람이 나타났다. 너무 오랜만에 마주하는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다. 모든 것이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창이 없는 방 안에서 문을 닫고 귀를 틀어막았지만 살려달라는 애원의 부르짖음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늘 조근조근 속삭이듯 말하는 엄마의 몸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고 새된 소리가 공중을 갈랐다. 


 엄마에게는 항상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드리워 있었다. 그를 만난 이후 엄마의 삶은 달라졌다. 친정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혼하고 나와 해주가 태어났다. 우리가 마주한 세상은 위태롭게 서있는 벼랑 끝이었다. 언제 큰 사달이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무 소동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날에는 대체 얼마나 처참한 재앙 같은 미래가 예비되어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었다. 두려움은 엄마를 향한 원망으로 그 모양을 바꾸었다. 왜 우리를 낳았느냐고. 대책 없이 왜 그렇게 살았느냐고. 해서는 안 될 모진 말을 퍼부었다. 사실 이 말은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만만한 엄마에게 대신 쏟아부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우리 앞에서 죄인처럼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미안하다고 너희가 조금만 더 크면 나아질 거라고 전혀 가망 없는 이야기를 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그림자 낀 엄마의 얼굴이 저 방문 밖에서 살려달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것 밖에 없는 나 자신과 이런 운명이 한심스러웠다. 눈을 감고 떴을 때 내일로 갈 수 있는 초능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수명의 십 분의 일과 초능력을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지 않을까? 수명을 단축해서라도 이 시간에서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정말 간절하게 원했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함이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던 고통을 되살릴 때쯤 눈을 떴다. 꿈이었다.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빨리 파악해야 했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정신이 들도록 안간힘을 썼다. 우선 방금 전까지 꿈이었다는 사실과 그가 없음에 안도감을 느꼈다. 독립한 지 3년이 넘었는데도 가끔씩 예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가 엄마가 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같은 꿈을 꾼다. 숨을 쉬는 행동이 너무 당연해서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에 적응되어 안정적인 삶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당연한 권리가 될 쯤이면 이 꿈이 찾아와 당연하지 않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잘 숨기고 있었던 내 정체가 드러나는 수치심과 절망감이 온몸을 덮쳤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달음박질을 해도 보이지 않는 무형의 형체가 도망간 나를 찾아내어 '제 자리로 돌아와. 너의 본분을 잊지 마' 라며 예전의 집으로 나를 기어코 데려다 놓는 것만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긴장된 몸을 이완시키기 위해 숨을 천천히 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심장박동을 늦추기 위해서 숨을 참아보기도 했다.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을 때 눈물을 꽤나 많이 흘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언제부터 흘렸는지, 눈물이 말라서 눈곱 마냥 고체로 굳어 허연 각질처럼 붙어있었다. 머리카락 속 두피도 땀 때문인지, 눈물이 흘러 들어갔는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핸드폰 화면을 두드려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6시 30분. 알람이 아직 울리기 전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조금 더 잘 수 있어서 이득을 본 느낌이 들어 흐뭇한 마음으로 다시 잠에 들곤 할 시간이다. 이 기분으로는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침대에서 거의 기듯이 나와 방 불을 켜지 않은 채 감을 의지하여 화장실로 걸어갔다. 갑자기 환한 빛을 맞이할 자신이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채 그 어떤 자극도 치명적으로 받아들일 것만 같아 베란다 창을 미처 다 가리지 못한 커튼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에 의지해 움직였다. 심장 박동이 줄어들어 안정을 찾아갈 즈음 불을 켰다. 방 안의 불을 최대한 낮은 밝기로 조절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회사 사람들을 마주해야 할 가까운 미래를 생각하니 불편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죽상을 하고서 그들을 마주하면 분명 무슨 일이 있냐고 집요하게 캐물을 것이 훤했다.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내 치부를 드러내는 멍청한 일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출근길에 최대한 기분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그래야만 하는 내 꼴을 생각하니 아까 느낀 불편한 감정의 정체는 서러움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불편한 사실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은 서러움의 감정으로 내 온몸에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그 무게를 한껏 짊어진 채 노이즈캔슬링 기능이 되는 이어폰을 끼고 예민해진 감각에 거슬릴만한 모든 요소를 차단하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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