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가 되어서야 안정을 되찾았다. 그제야 오늘 저녁 회식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 사람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적당한 타이밍에 센스 있는 말을 하고, 궁금하지 않은 남의 휴가계획을 들으며 부럽다, 나도 가고 싶다며 자동응답기처럼 정해진 리액션을 할 생각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누구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 강한 피드백이 오가더라도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 정도, 마음에도 없는 칭찬 따위를 지어내서 할 필요 없는 그런 관계 말이다.
기대는 항상 실망을 낳았다. 엄마가 항상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고 했던 그 말에 걸었던 믿음과 기대는 번번이 깨어지고 말았다. 누군가를 믿는 일, 기대는 일은 내 인생에서 사라진 옵션이 되었다. 상처를 받지도 주지도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한 채 확실한 선을 그어 만든 안전한 영역 속에서 나 자신을 넣었다.
소고기 전문점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구석 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얄궂게도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못한 탓에 중간에 낀 자리에 앉게 되었다. 다들 사무실에서 굼벵이처럼 눈에 띄지 않으려고 수동적으로 있다가도 이럴 땐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날렵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기가 찰 노릇이었다.
대화를 주도해야 할 것 같은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나도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불편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불편한 것만 같은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자리를 바꿔 앉을 마땅한 명분이 있었다면 나도, 동료들도 흔쾌히 바꿔 앉았을 눈치였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지분을 적게 가져가기 위해 고기 굽기를 자처하였다. 불판 위 연기와 사람들의 말이 뒤섞여 정신없이 오고 갔다.
갓 돌이 지난 조카 자랑을 하는 임사원의 이야기에 모두가 집중했다. 임사원이 맞은편에 앉았기 때문에 조카 사진이 담긴 휴대폰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보며 귀여워 자지러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가끔은 그런 행동을 통해서 자신이 순수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임사원의 조카 사진을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서 튀는 행동을 하여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아 몸을 앞으로 내밀며 보고 싶어 하는 시늉을 했다. 조카 자랑에 심취한 임사원이 내가 보인 관심에 신이 나서 휴대폰 화면을 잘 보이도록 내밀어 보여주었다. 머리숱이 듬성듬성하고 위로 흩날리고 있는 모습이 솜사탕 같았다. 잘못해서 물이라도 튀기면 사르륵 녹아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입으로는 너무 귀엽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임사원이 조카의 셀프 백일잔치 경험담을 풀어놓았다. 요즘은 백일잔치를 크게 하는 일이 거의 없고 인터넷 주문 한 번으로 테이블에서부터 모형 음식, 아기 한복과 드레스, 심지어 아기 머리 사이즈의 가채까지 대여가 된다고 한다. 조카가 돌잡이에서 실을 잡았다며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잘 컸으면 좋겠다는 임사원의 말에 내가 나도 돌잡이에서 실을 잡았던 사실과 그로 인해 질기게 살아온 날들이 스쳐갔다. 그럼에도 살아있어서 좋다고 해야 할지, 그렇게까지 살아남았어야 했는지 한탄을 해야 할지 내 인생에 대한 평가표에 점수를 매기지 못한 채 인생은 멈추지 않고 흘러만 갔다.
나도 임사원의 조카처럼 티 없이 맑은 시절의 돌잡이 때 실을 잡았다. 그때 잡은 실때문이었을까?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지금 나는 살아있다.
심장이 뛰고 오감이 살아있다. 내 몸 어딘가에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이 있지만 살아있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