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색이 안 좋아 보이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녀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 일없어요. 잠을 좀 못 자서 그런가 봐요."
대충 무난하게 대답을 하고선 컴퓨터를 켜고 책상을 정리하며 그녀가 눈치껏 가주기를 바랐다.
"잠을 왜 못 주무셨어요? 저녁에 커피 드셨어요? 카페인에 약해서 저녁에 커피 안 드신다고 하셨죠?"
내가 했던 말을 그녀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의 작은 말까지도 기억할 만큼 그녀의 관심이 나에게 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왜 나를 자신의 안중에 넣어두고 있을까? 오지랖이 넓은 성격 탓일까? 아니면 연민의 감정이라도 느끼는 것일까? 아침부터 그녀가 쏟아붓는 관심에 반감을 넘어 적개심까지 들었다.
"아뇨, 잠자리가 불편했는지 새벽에 몇 번 깼어요. 좀 뒤척이면서 잤더니 피곤한 것 같네요. 별일 없어요."
"그러셨구나. 맞아요. 가끔 자는 자세가 불편하면 자다가 깨더라고요! 팔을 위로 올리고 자면 편한데, 몸에 안 좋대요. 왜 편한 자세는 몸에 안 좋은지 모르겠어요."
엷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그녀도 더 이상 질문하기를 멈추고 힘내라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바쁘게 오전 업무를 쳐내고 나니 기분이 조금 올라와있었다. 생각을 한 곳을 집중하는 것이 새벽에 있었던 일을 자연스레 잊는데 도움이 되었다. 오늘은 다들 바빠 점심을 거르는 분위기였다. 나도 대충 편의점에 갔다 올 생각을 하던 중 이루리 씨가 메신저를 보내왔다.
이루리: 주임님, 오늘 다른 분들은 밖에서 점심 안 먹는다고 하시네요!
이루리: 주임님, 시간 되시면 저희 둘이 밖에서 맛있는 거 먹고 올까요?
점심을 같이 먹자는 그녀의 메신저를 못 본 척할까 했지만, 나를 걱정하는 그녀의 진심을 계속 무시하는 것에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
나: 네, 같이 드시죠. 12시에 바로 일어나죠.
현지 느낌이 물씬 나는 인테리어에 공을 들인 태국 음식 전문점에 갔다. 실내에 파라솔이 설치되어 있고 실제 태국 현지 식당에 있을 법한 페인트칠이 되지 않은 은색빛이 도는 철이 그대로 드러나있는 선풍기기 천장에 달려있었다. 평소 1인분을 다 비우지 못하고 꼭 한 두 숟갈씩 남기던 내가 팟타이 한 접시를 다 비운 것을 본 적이 있는 이루리 씨가 고심하여 이 식당을 골랐을 것이다. 그녀는 유독 사사로운 것을 잘 기억하는 능력이 있다. 동료들과 떨었던 가벼운 수다의 내용을 다 기억하고, 그날 입었던 옷과 농담조의 말투까지 생생히 기억하곤 했다. 가끔은 지독한 기억력이 주변 사람의 수치스러운 경험을 끄집어낼 때도 있어 당황스러운 적도 있었지만 이루리 씨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었기에 애교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주임님, 여기 진짜 태국 같지 않아요? 주임님 팟타이 좋아하시는 거 생각나서 제가 태국여행을 준비해 봤어요! 걸어서 온 태국 어떤가요? 하하"
이루리 씨 특유의 귀여운 표정과 농담이 섞인 말로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게요. 여기 맛집인가 봐요. 웨이팅도 많이 있고, 인테리어도 잘해놓았네요. 고마워요. 루리 씨는 맛집을 참 잘 찾는 것 같아요."
"감사해요. 저는 주임님이 같이 와주셔서 더 감사한걸요! 하마터면 혼자 처량하게 밥 먹을 뻔했는걸요!"
"루리 씨가 처량한 모습은 상상이 안 가네요. 그런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