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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국 May 25. 2024

소속감의 온도

우리는 왜 타인과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낄까?

2024년 3월, 복학한 지 2년째, 4학년인 나는 학과 MT에 따라갔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아마도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25살이나 먹고 무슨 MT를 따라가냐?”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가지 않으려고 헀지만 갈 수 있는 마지막 MT이기도 하고, 같이 가는 동기들이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동기 중 한 명이 우리 과 학생회장이어서 그냥 가기로 했다. 대신 2박 3일인 MT 일정 중 1박 2일만 하기로 했다.

      

아는 후배가 거의 없었던 나는 가기 전부터 걱정이 조금 있었다. 아는 친구들도 없고, 새내기 친구들을 만나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떻게 놀아야 할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는지 묻는다면, 사실 그것은 아니다.

     

고등학생 때, 스무 살 때를 생각해 본다면 그 당시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도 잘 걸고, 처음 본 사람들이랑 재밌게 놀고, 선배들한테 먼저 다가가고 했었던 내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 와서는 과거에 그랬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후배들한테 먼저 말도 못 거는 소심쟁이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나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내가 아는 여러 사람에게도 대부분 적용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 생각해 보았고,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 당신은 내가 MT를 따라갔다는 말을 듣고 아마도 조금의 위화감을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MT는 보편적으로 새내기들, 학생회, 비교적 어린 친구들이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교적 나이가 많은, 그러니까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한 4학년과 같은 사람이 MT에 참여하는 것은 민폐, 혹은 눈치가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물론 이것은 보편적인 사실이 아니다. 4학년도 MT는 갈 수 있고, 후배들도 그렇게 민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후배의 입장이었을 때에는 그랬다.    

 

하지만 고학번이 MT를 가는 게 민폐라는 말이 있는 것만으로도 고학번들은 눈치를 보게 된다. 후배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기가 싫은 것이다. 그래서 평소의 내 모습보다 훨씬 소극적으로 변했던 것 같다.   

  

어쨌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참여한 MT는 결론적으로 정말 재미있었다. 아니, 단지 재미있었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MT에서 진행한 게임, 술자리와 같은 것들도 물론 재미있었다. 하지만 정말 내 안 어떤 것의 울림을 가져온 것은 바로 MT의 일정 중 있었던 ‘장기자랑’이었다.     


장기자랑은 MT 2일 차 마지막에 있었던 일정이다. 사실 나는 같이 온 형과 함께 장기자랑을 보고 집으로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장기자랑의 첫 무대를 보고 그 생각이 180도 바뀌어버렸다.     


장기자랑의 첫 무대에는 학과 밴드 소모임인 ‘밴드 갭’이 ‘악동뮤지션’의 ‘200%’와 ‘데이식스’의 ‘예뻤어’를 선곡해 공연했다.      


24학번 새내기들이 하는 보컬과 기타 연주, 그리고 그를 보고 환호하는 사람들, 그러다 저마다의 핸드폰을 꺼내 플래시를 켜 흔드는 사람들까지. 이들을 보며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을 느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 말이다.     


그렇게 분위기에 취한 나는 장기자랑이 끝나서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고, 스무 살 때처럼 술을 마셨다.   

  

그렇다면 내가 느낀 알 수 없는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내 생각에, 그 감정은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같은 사건, 같은 무대 등 같은 것을 공유했을 때 느끼는 소속감, 혹은 그 소속감으로 인해 생기는 고양감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장기자랑을 보며 거기 있던 시간을, 공간을, 감정을 공유했다. 그로 인해 우리는 ‘같은 학과’라는 관계를 맺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이를 느끼지 않았을까?     


당신이 만약에 어떤 가수의 콘서트를 간다고 해보자. 당신은 고생고생하며 티켓팅을 해서 콘서트에 갈 것이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내 말은, 집에서 편하게 누워서 영상으로 보면 되는데 왜 굳이 귀찮게 콘서트 하는 곳까지 가서 공연을 보냐는 말이다.     


만약 당신이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 경기를 직관하러 갔다고 해보자. 집에서 TV로 보면 되는데 굳이 왜 직관까지 하러 갈까? 직관까지 가지 않더라도, 왜 친구들과 치킨집에 가서 맥주를 먹으며 보려고 할까? 월드컵 시즌에는 왜 항상 치킨집이 만석일까?     


당신의 친구 중에 그런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난 술은 싫어하는데 그 분위기를 좋아해.’     


이런 것들은 모두 앞서 이야기했던 소속감에 의한 고양감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 안정감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보다도 깊은 것이다. 이런 감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즉,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없이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저는 혼자 사는 게 좋은데요?”     


사실 그건 착각이다. 당신은 정말 혼자인가? 또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가? 질문을 바꿔서, 당신이 혼자서 생존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그건 불가능하다. 당신은 이미 사회 속에 존재하고 사회, 국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즉, 우리 모두는 진정으로 혼자가 되어 본 적이 없다. 당신이 만약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면 그것은 정말 혼자가 되는 것이 좋은 게 아니다. 단지 당신이 선호하는 인간과의 관계가 일반적인 인간관계와는 살짝 거리가 있는 것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최소한의 소속, 관계는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에 쓴 글에도, 전에도 계속 언급했듯 과거 사람들이 했던 오래된 약속 때문이다.     


과거 인간은 서로의 생존을 위해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 협력했다. 공동체는 점점 살을 불려 나가 결국 지금의 국가, 사회가 되었다. 그렇다면 먼 과거 정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던 인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 도태되어 남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유전자에는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말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정말로 DNA 염기 서열에 그에 대한 유전 정보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소속감을, 그에 기인한 고양감을 느낀다. 사람과의 관계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항상 우리를 지켜주었던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최근 MT를 갔다 오고 나서 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어떤 이유 때문에 내가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인지, 분위기에 취한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글은 그에 대한 결론이다.     


당신도 이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내 생각엔 아마도 있을 것이다. 그 경험은 당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가?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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