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강아지나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렇게 귀여운 동물들의 사진, 영상들을 보며 심장 아파하고, 행복해한다. 이런 사람들을 통틀어 ‘랜선 집사’라고 부르는데,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랜선 집사들은 남의 집 애완동물에 주인 의식을 느끼고, 대리로 만족감을 얻는다.
또한, 주변에 반려견을 키우는 지인도 다수 존재한다.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밥도 챙겨야 하고, 씻겨줘야 하고, 종에 따라 산책도 주기적으로 가줘야 하는 등 여러 번거로운 일들이 수반된다. 하지만 그에 따른 행복의 크기도 작지 않기에, 사람들은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고, 또한 그렇게 한다.
요즘 나의 SNS 알고리즘을 점령한 그런 귀여운 아가들을 보고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는 것 중에서 가장 징그러운 건 사람이다.’
단지 생긴 것이 징그럽다는 말은 아니다. 생긴 거로만 따지면 세상에 징그러운 것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게 곤충이든, 뱀이나 개구리 같은 파충류이든, 생명이 아닌 어떤 패턴 같은 것이든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어디가 그렇게 징그러운 것일까?
만약 당신이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다고 해 보자. 당신은 1년간 당신의 반려견과 신뢰를 쌓아 왔다. 일반적으로 반려견과 신뢰를 쌓는 데에는 1년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그 정도의 시간을 애정과 관심으로 보살피면 주인과 애완동물의 관계는 가족처럼 끈끈해진다. 정말 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쌓인 신뢰는 어지간해서는 무너지지 않는다. 당신의 애완동물은 죽는 순간까지 당신과의 추억, 채취, 손길, 체온 등을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가?
몇몇 사람들은 단지 본인이 불편하고,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같이 살던 애완동물을 유기해 버린다. 그렇게 생겨난 유기견, 유기묘들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로드킬을 당하거나 먹이 경쟁에 밀려 도태되어 죽어간다.
상대의 입장에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으면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길바닥에 버리면 어떻게 되는지는 불을 보듯 뻔한데 말이다.
여기까지 한 애완동물 이야기는 많고 많은 징그러운 인간 중 하나의 예시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과 만난다. 그 사람들 중 몇몇은 마음에 들 것이고, 몇몇은 그저 그럴 것이며 몇몇은 본인과 잘 맞지 않아 거리를 둘 것이다.
하지만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그저 맞지 않는 것일 뿐, 절대로 그게 나쁜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징그러운 사람’을 한 문장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표현해 보자면 남에게 피해를 주고도 아무렇지 않고 당당하거나, 한술 더 떠서 피해자의 고통을 즐기고, 조소를 머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최근에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본 것 같다.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을 말이다. 현실에서 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나 커뮤니티, SNS와 같은 플랫폼의 발달로 인해 익명성 뒤에 숨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일삼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행동이 공감 능력의 결여인지, 아니면 어떤 결핍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솔직히 별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이 나의 주변에서 내 심장에 비수를 꽂을 준비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과거보다 타인을 경계하게 된 게 아닐까? 속마음을 모두 내보이기가 힘든 것이 아닐까?
하지만 사람을 볼 때 항상 경계하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이 사람이 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할지 고민하며 말하면 사는 게 너무 피곤할 것 같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강인함을 가지는 것이다. 깊은 곳에 뿌리내려 폭풍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나무처럼 말이다.
땅 속 깊게 뿌리내린 나무는 바람이 불면 흔들린다. 더 센 바람이 불어도 그저 조금 더 세게 흔들릴 뿐이다. 폭풍이 와도, 갑자기 비바람이 불어도, 흔들릴 뿐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