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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다

지나도 잊히지 않는

by 고요

약 30여 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 지금까지 저에게는 수많은 향기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향들이 전부 어떤 종류의 것들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유난히 마음 모퉁이가 아련해지면서 기억 어딘가 흐릿한 그리움으로 남겨진 향기들이 있습니다. 그 향기의 주인은 추억하지도 않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마음 한 편에 짙게 배어있습니다.

은연중에 계속 맘에 밟히는 그 향기의 흔적을 지워내고 싶어 다른 향으로 덮어봅니다. 하지만 다른 향은 가벼이 쉽게 날아가 버리고 그 그리운 향만 비워낸 잔의 밑잔처럼 남아 일렁입니다. 아무리 비워내려 노력해도 남아있습니다. 남아있는 이유를 고민해 봅니다. 아마도 그건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일 것입니다. 다시 올 것에 대한 기대일 것입니다.

결국에 지워내려는 노력이 무산됩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잊지 못할 것이라면 간직하려 노력해 봅니다. 그런데 이제 향의 기억이 점점 흐릿해집니다. 내가 알던 향이 싱그러운 시트러스 향이었을까. 달콤한 다마스크 향이었을까. 점점 흐려집니다. 향에 대한 기억이 거의 사라져 갑니다. 지워내려는 시도도, 기억하려는 노력도 모두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삶은 항상 내가 소망하는 것과 반대로 흘러갑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겨울이 지나 봄비가 내리네요. 집을 나서는 길에 비 냄새가 나더라니 어김없이 비가 내립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계절이 돌고 돌아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었던 봄비 냄새를 알아채는구나. 그리운 그 향기도, 내가 잊었다 하여도, 결국 나에게 다가온다면 알아채 고개를 돌리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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