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행복 덮기
요즘 참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요즘이랄까 아니 여전히 바쁘게 살고 있다. 군대 전역 이후 제대로 쉰 적이 있었나? 제대로 쉰 날이 손에 꼽는다. 맘 편히 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딱히 쉬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런 생활이 벌써 10년도 넘게 이어지다 보니 바쁘게 사는 일이 습관이고 일상이다.
“왜 이렇게 몸을 혹사했어요?”
경추성 두통이 심해서 도수치료를 받는데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묻는다. 등과 목의 상태가 4, 50대 같다며 자세를 바르게 하고, 스트레칭은 어떤 것을 하며, 운동은 필라테스나 요가가 좋다며 걱정 섞인 잔소리를 한다. 나도 왜 이렇게 몸을 혹사하는지 모르겠다. 몸 아프기 전까지는 혹사라는 생각조차 못 했으니.
그로부터 조금의 시간이 흘러 천선란 작가님의 ‘천개의 파랑’이라는 소설을 읽는데 인상 깊은 문장을 하나 찾았다.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소설 속에 나오는 이 짧은 이야기가 마음속에 긴 여운으로 남았고, 몸을 혹사하는 이유 중 하나를 찾았다. 이유도 모르고 지금까지 달려왔지만, 알고 보니 나는 그리움을 이기기 위해 행복한 순간을 만들려 달리는 중이었다. 사람이 과거를 추억하는 이유는 다시 오지 못할 날들의 그리움 때문인 것 같다. 다시 못 올 기억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짙은 향수로 마음을 적신다. 그것이 얼마나 흥건한지 예전을 생각할 수 있는 실낱같은 작은 파편만 보여도 아련한 마음들이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최근에도 그리움이 마음을 가득 채운 일이 있었다. 얼마 전 외근 중 우연히 모교 대학로를 방문하였는데 지나간 10여 년이라는 세월을 증명하듯 많은 모습이 변해있었다. 그럼에도 강산이 변할 시간을 버티고 남아있던 편의점 평상, 공원 벤치 등이 그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었다. 한참 거리를 걷는데 문득 그곳에 또 다른 것들이 남아있는 걸 보였다. 친구들과 자체 휴강을 하고 낮술을 마시던 평상, 시험기간에 친구 하숙집에서 떠들다 주인 할아버지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쫓겨나 다 같이 추위에 떨던 공원 벤치. 모든 장소가 그리움으로 덧칠해 있었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무리 미련을 가져봐도 돌아갈 수는 없다. 결국 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더 큰 행복으로 그리움을 덮는 방법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부단히 달리고 있다.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 지키기 위해 한 걸음이라도 더 움직인다. 내일은 더 단단해져야겠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담금질하며 마음을 두드려본다. 아직 종착역에 거리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를 막연함에 지쳐 가끔은 행복이고 뭐고 그냥 쉬고 싶기도 하지만 나약함이 불행에게 있어 좋은 먹잇감이라는 것은 알기에 단단해지는 걸 멈출 수는 없다. 행복할 수는 없어도 불행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다행인 건 10년이 넘게 구르고 깨지다 보니 나름의 방향성은 잡았다는 것이다. 돌잔치 때 연필을 잡았다더니 귀신같이 팔자를 찾아 요즘 꾸준히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있다. 행복감을 만드는 일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따라가는 게 정답이었다. 답은 가까이 있었지만, 이 방향을 잡기까지 멀리도 돌아왔다. 조금 늦은 탓인지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행복에 아직은 이르진 못했지만, 요즘은 내 길을 걸어가는 소소한 분주함이 감사하고 이 길을 함께 하고 응원해 주는 이들이 있어 고마움이 가득한 일상이다.
이렇게 그리움을 이길 행복한 순간으로 하루하루 채워가다 보면 멀지 않은 때에 행복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나를 잔뜩 담가 허우적거리게 하였던 향수들이 어느 순간 행복을 들추어 보았을 때 잔잔한 윤슬처럼 일렁이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