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치료사 윤쌤이 딸아이와 밥을 먹으러 가면, 딸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린이 세트를 시켜주었어요.
남편은 어린이 세트가 예쁘게 데코도 되어 있고, 간식도 주어 좋지만, 딸아이가 먹기에 양도 많고 가성비가 나쁘다고 했죠. 그렇지만 딸아이에게 어린이 세트를 시켜주고 싶은 제 마음을 존중해 주었어요.
제가 어린이 세트에 이렇게 진심인 이유는 따로 있는데요. 저는 3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어요.
그래서 어릴 때 밥을 먹으러 가면, 엄마가 늘 남동생과 한 메뉴를 시켜서 그릇에 나누어 주었어요. 예나 지금이나 한 까탈 하는 저는 먹고 싶은 메뉴가 다름에도 굳이 하나를 시켜야 하는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았고요. (지금은 엄마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엄마가 한 메뉴를 시켜서 그릇에 덜어주면 그릇과 식기 주변으로 이리저리 국물이 튀어 지저분해지기 일쑤였어요. 제가 짜증을 내면 엄마는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며 오히려 타박을 주었죠.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하는 거 동생이랑 나눠 먹으라고요. 남동생은 저보다 덩치도 크고 빠르게 먹기도 잘 먹는 편이라 느리게 먹는 저는 먹다 보면 엄마가 동생 좀 더 준다며 덜어가기도 했어요.
어린 기억에 그게 정말 싫었나 봐요. 어른이 되면 돈가스를 내가 먹고 싶은 만큼 썰어서 그릇 깨끗하게 먹어보고 싶다 생각했을 정도로요. 동생이랑 같이 먹으라고 엄마가 가운데에 두고 재빠르게 칼질을 해주셨거든요.
어른이 된 지금도 저는 1인 1메뉴를 먹는 것이 편해요. 여럿이 시켜서 셰어하는 거... 사실 별로예요. 내가 먹은 양을 가늠할 수도 없고, 저는 안 먹고 못 먹는 것들이 많아서 다 같이 시키는 모든 메뉴를 더분 더분 잘 먹는 스타일도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정말 친한 분들이 아니면 이건 잘 몰라요. 내색하지 않거든요. 다들 좋아하는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런 기억들 때문에 아이를 낳으면 어린이 세트를 꼭 사주고 싶었어요. 사실 딸아이는 기억도 못 해요. 엄마가 어린이 세트를 사준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죠. 외동이니까요.
그런 것 보면 육아는 다른 의미에서 내 스스로의 한풀이 같아요. 임신을 하고서도 어린이 세트를 보면 제가 먹어보고 싶다고 했었는데요. 이제 안 그래요. 딸아이가 다 못 먹은 어린이 세트 저도 많이 먹었거든요.
딸아이가 다 먹지도 못할 어린이 세트를 굳이 시켜주고 싶다는 제 마음을 존중해 준 남편에게 고맙네요. 주말에 어린이 세트를 사줘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