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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던 세계에서의 크리스마스

by 마잇 윤쌤

입사 4개월 차, 직장인으로 12월을 맞이하고 있었어요. 취업을 준비할 때만 해도 직장인이 되면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도 하고, 송년모임도 하고 정말 즐겁게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12월은 회사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달이더군요. 한 해의 사업을 정리하고 결산하고, 내년도의 사업을 계획하는 기간이니까요. 직장인이라면 12월부터 1,2월까지는 일에 파묻혀 살아야 하는 시기였다는 걸 간과했었더라고요.


게다가 제가 다니는 회사는 매년 크리스마스에 취약계층 아동, 청소년을 위한 큰 사업을 했어요. 기한이 정해져있는 데다가 여러 기관들과의 협력 사업이었고, 취약계층 아동, 청소년들을 모집하고 지원해야 하는 사업이라 모두들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사업이었죠. 이 사업은 입사했을 때부터 저의 몫이었어요.


취약계층 아동, 청소년들을 모집하고 지원하는 서류들을 보며 그동안 제가 모르고 살던 세계의 문을 연 것 같았습니다.


모집된 아이들의 집으로 찾아가 선물을 전해주어야 하는 사업이라, 집 주소를 적는 칸과 신청 사유를 적는 칸이 있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아이들이 아파트와 빌라, 주택에 살고 있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거든요. 너무도 세상을 잘 몰랐던 거죠.


집을 찾아오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상세할 만큼 아이들의 집 대문이 눈에 그려지는 것 같았어요.


"작은 철문을 열고 오른쪽 계단을 올라와 옥상에 있는 가건물입니다"


"1층 슈퍼가 있는 정문 안쪽으로 들어오면 집으로 올라오는 계단이 보입니다"


"초인종이 없으니 노크해 주세요"


대문, 현관, 초인종... 제가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사라진 집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간 얼마나 편협한 세계를 전부라고 믿으며 살아왔는지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신청사유를 읽을 때는 한 명 한 명 서류를 읽을수록 마음이 아렸고, 슬펐어요. 이렇게 힘든 아이들이 많았다니... 이렇게 내가 세상을 모르며 살았다니...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가족이 없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던지...


서류를 정리하며 눈물을 쏟기도 여러 번...

쌓여가는 서류에 쌓여 감정을 다잡기도 바빴어요.


이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마지막 한두달은 주말에도 출근하고, 평일에도 집에 못 가고 기관에서 자는 날이 여러 날이었지만, 아동, 청소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게 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업을 마무리 하고도 직장을 다녔지만, 애석하게도 이 사업을 진행한 직원들은 많이들 퇴사했어요. 12월이 가까울수록 업무가 휘몰아치고 업무량 자체가 많았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우리가 굳이 목도하고 싶지 않은 세계로 이끄는 것이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알고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귀한 깨달음을 얻은 시간이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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