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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도 피할 수 없었던 산후우울증

by 마잇 윤쌤

산후우울증 : 출산 후 4주에서 6주 사이 산욕기 동안 각종 우울증상을 경험하며, 일상생활에서 기능 저하를 초래하는 질환 (출처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


대학원에서 수업 들을 때 들어는 봤어요. 하지만 제가 산후우울증을 경험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예정일보다 열흘 빠른 출산으로 출산 하루 반나절 전까지 출근을 했던 저는 하루 아침에 아이를 낳고 갑자기 사회에서 격리된 기분이었어요. 병실 밖으로는 아이를 보러갈 때만 나갈 수 있었죠.


큰 배를 부여잡고 밤 늦도록 공부했던 국가자격증 시험은 응시해보지도 못했고요. 무엇이든 아이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부모의 삶이 너무도 낯설었거든요.


함께 부모가 된 남편이 딱 일주일 출산휴가를 쓰고 출근하는 날부터 이건 뭔가 불공평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어요.


딸아이가 태어났던 2015년 봄에는 한국에 메르스라는 중동호흡기증후군이 기승이었어요. 건강한 성인들도 외출을 꺼렸던 시기였죠. 사람들 만나고 예쁜 카페 가야 사람 사는 것 같았던 저도 아기와 함께 칩거가 길어졌어요.


그 무렵, 남편이 저에게 가방을 선물해줬어요. 출산을 축하한다면서요. 남편이 선물해준 가방을 들어보는 데 눈물이 났어요. 가방을 들고 갈 곳이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냥 눈물이 맺힌 게 아니라 서러움에 복받쳐 어깨가 들썩여지더라고요.


그리고 그 때 알았어요. 제 마음에 우울감이 너무도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요. 마음이 어디서부터 어긋나고 있는 건지 차근히 되짚어봤어요.


저는 어리석게도 출산을 하면 다시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었더라고요.


휴직이라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 아이와 카페도 가고 바빠서 보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나고요. 아이가 잘 때면 응시하지 못했던 국가자격증 시험도 준비하고요.


육아휴직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저만의 계획이 있었던 거죠. 하지만 출산 후 생활은 계획과는 너무도 달랐고, 커다란 간극 사이로 깊은 우울감이 찾아왔구나 깨달았어요.


저는 다행히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해준 남편과 집 앞 카페로 커피 마시고 싶어서 왔다며 나오라고 전화해주었던 친구, 새로운 생명의 씨앗 받은 것을 축하한다며 편지를 보내주었던 언니가 있어 금새 털어낼 수 있었어요.


힘들었던 몇주를 보내며 알게 되었어요. 상담사도 산후우울증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요.


공부해서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게 별 소용이 없구나. 경험해야 아는 것들이 분명히 있구나.


그리고 그 뒤로 마음에 대해 더더욱 함부로 이야기 하지 않아요. "의지가 약하다느니,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괜찮을 거다" 하는 말들이 가진 날카로움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어요.


마음을 다루는 상담사로 더 겸허하게 일하게 되었던 아프지만 소중했던 경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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