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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천천히 가도 되었을텐데

by 마잇 윤쌤

기다리던 복직은 3개월 미뤄졌어요. 할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뿐이었죠. 마음을 가다듬고 남은 육아휴직 기간 동안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했어요.


딸아이의 돌이 다가올 무렵에는 두 번째 자격증 시험이 있었어요. 딸아이 돌잔치와 복직 준비로 바쁠 것이 뻔했지만, 홀린 듯이 자격증 시험도 접수를 했죠.


시험일을 보름 정도 앞둔 어느 날, 남편은 출근 준비를 하던 평범한 아침이었어요. 인기척에 깨서 딸아이를 쓰다듬는데 뭔가 느낌이 쎄해서 습관적으로 체온을 재 봤어요.



삐- 40.3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어 몇 번이고 다시 열을 쟀지만, 결과는 같았어요.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근처 소아과로 달려갔죠.


소아과 의사는 아이를 찬찬히 살펴보고, BCG 주사자국이 벌겋게 부어오른 것을 확인하더니

"가와사키병" 이 의심된다며 3차 병원 소견서를 바로 내어주었어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남편과 아이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어요. 출산 전 치료실에서 만났던 아이 중에 어릴 때 "가와사키병"을 치른 아이가 있어 알고 있었거든요.


심장 합병증을 부르는 급성 열성 혈관염, 입원해서 면역 글로블린을 때려 맞아야 하는 병이었고, 이후로 모든 예방접종을 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바로 달려간 3차 병원 응급실 의사의 소견은 또 달랐어요.


현재 분명 의심스러운 것은 맞지만, 이 상태(고열)가 3일 이상 유지되어야 하고, 다른 증상(딸기혀 등)도 나타나야 한다는 거죠.


아직 생후 12개월 된 아기라 더욱 조심스럽게 진단해야 한다면서 두 번이나 3차 병원 응급실에서는 해열제만 처방해 주며 집으로 돌려보냈어요.


타이레놀 계열과 부루펜 계열의 해열제를 교차 복용하며 지켜보니 다행히 고열 말고는 다른 의심 증상이 더 나타나지 않았어요.


이후에 찾아간 다른 소아과에서는 "돌치래" 같다는 소견을 주었어요. 태어난 아이들이 돌 즈음이 되어 고열이 나고, 발진이 나며 아픈 것이라고 하더군요.


딸아이는 일주일이 지나가며 열이 잡히기 시작했고, 예약해둔 3차 병원 진료도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좋아졌어요.


딸아이가 괜찮아지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한 저에게 열감기가 옮겨왔어요. 어른이 되고서는 처음으로 고열에 시달렸고, 며칠 동안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아 중이염이 왔어요. 심한 중이염으로 귀가 멍멍해졌어요.



두 모녀가 보름을 앓고 났더니, 자격증 시험날이 코앞으로 다가왔어요.


딸아이도 저도 나을 수 있는 열감기와 중이염이었다는 것에 감사할 겨를도 없이 불평만 쌓여갔어요.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인데 이렇게 준비 없이 보러 가야 하다니, 모든 것이 야속하기만 했어요.


아이가 아플 수도 있고, 내가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은 머릿속에 전혀 없었던 일이었거든요. 인생의 계획에 이제 강제적인 브레이크가 걸려버린 기분이었어요.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는 얘기를 왜 스스로에게 해주지 못했을까, 육아휴직 기간 동안에도 뭔가 성과를 내고 싶어 아둥바둥 발버둥치던 저의 모습이 안쓰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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