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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대행 중이라

by 마잇 윤쌤

2019년 3월,


딸아이는 유치원에 입학했어요. 딸아이의 유치원 적응 기간이 끝난 첫 등원일, 퇴근하고 딸아이를 데리러 갔던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분명히 유치원 운영시간은 6시 30분까지였고, 딸아이와 같은 나이의 50여 명 중 절반은 맞벌이 가정으로 방과 후 돌봄을 신청했어요.


퇴근하고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갔더니, 유치원의 모든 교실에는 컴컴하게 불이 꺼져있었고, 딸아이는 당직교사 1명과 교무실에 있었어요.


"아이가 잘 있을 수 있으면 괜찮다"라는 당직교사의 이야기도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왔냐"라는 딸아이의 이야기도 들리지 않았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 길을 잃은 기분이었어요. 일을 하며 유치원을 보낸 것이 욕심이었나... 자책감마저 들었죠.


그럼에도 연차를 쪼개어 딸아이의 유치원 행사에는 빠지지 않았어요. 부모 참여수업도 책 읽어주기 일일교사도 함께 했죠. 아이들이 그럴 때 부모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아니까요.


그렇게 1학기를 잘 보내나 했는데, 여름방학이라는 큰 산을 맞이했어요.


방학에는 맞벌이 가정으로 방과 후 돌봄을 신청한 친구들만 등원하는데 대다수가 10시에 왔다가 4시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딸아이를 그 시간에 맞추어 등원시킬 방법은 없었어요.


결국 딸아이를 자기 몸보다 몇 배는 더 큰 캐리어와 함께 3주 동안 친정으로 보내기로 했어요.


딸아이가 정말 보고 싶었지만, 딸아이가 없이 출퇴근을 하니 정말 한가롭더군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고 마음껏 야근하며 지내던 어느 날 오후, 친정 엄마에게 전화가 왔어요.



"저기... 딸아이가 좀 다쳤어..."

- 친정 엄마



평소와 다르게 잔뜩 긴장한 엄마의 목소리가 느낌이 싸했어요. 무슨 일인지 차근히 들어보니, 딸아이가 친정집에서 부모님과 놀다가 대리석 탁자에 이마를 부딪혔고, 그대로 이마가 찣어졌더군요.


피가 나고 위급한 상황이라 근처 병원에서 봉합 수술을 했고, 우느라 힘들었던 딸아이에게 친정 엄마가 큰 장난감을 사주며 달래 이제 막 돌아왔다는 얘기였어요.


얼마나 딸아이가 자지러지며 무서워하며 울었을지... 그 눈망울이 눈에 선하고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그때는 상사가 회사의 직인을 저에게 맡기고 휴가를 떠난 기간이었어요.


한 마디로 제가 직무대행 중이었죠. 직원들에게 설명을 하고 누군가에게 또 대행을 시켜야 연차를 쓸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예정된 상담과 회의, 외근... 머릿속으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취소해야 할지 머리도 복잡한데 이 와중에 이런 걸 생각한다는 것 자체도 못 견디게 짜증 났어요.



결국...



저는 그날도 그다음 날도 딸아이에게 가지 못했어요. 며칠 뒤 주말이 되어서야 딸아이의 봉합 자국이 있는 얼굴을 마주했죠.


이마에는 봉합 실밥이 있는 채로 딸아이는 저에게 달려와 안겨서는 할머니가 사주신 장난감을 자랑했어요.



그날 밤,



잠든 딸아이의 얼굴을 한참을 들여다봤어요.


엄마가 전부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텐데...


나는 어쩌자고 이 시간들을 이렇게 흘려보내고 있는 걸까 싶더라고요.


그리고 딸아이가 개학하기 전에

퇴사하기로 마음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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