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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퇴사할 수 없었던 이유

by 마잇 윤쌤

2018년 1월,

저는 중간 관리자(팀장)로 승진했어요.


새로운 상사와 함께 한 4개월 동안 사무실의 공기, 먼지 한 톨까지 달라진 것을 경험한 직원들은, 새로운 상사의 앞잡이로 생각하는 제가 승진한 것을 아무도 반기지 않았어요.


중간 관리자라는 게 상사와 동료, 아래 직원들 사이에서 조율해야 하는 역할이 많은 자리라, 좋은 분위기에서 지지받으며 승진해도 힘들었을 거예요.


거기에 저는 회사의 내부 승진 중간 관리자였거든요. 엉망진창인 신입사원부터 함께 근무한 동료직원들과 선배직원 몇몇이 여전히 근무하고 있었어요.


엊그제까지 함께 동료이자 후배로 일하던 제가 중간 관리자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현을 은연중에 하기도 했어요.


육아휴직 중인 상사도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승진이 이루어지는 것을 반기지 않는 눈치였죠.


늘 제 편에서 응원해 주고 힘을 북돋아 주던 남편마저 강하게 반대했어요.


그냥 조용히 그만두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이곳에서 그만 일했으면 좋겠다면서요.


상담 사업을 하는 회사이다 보니, 직원들의 98% 가 여성이었고, 정말 사소하고 자잘한 일들부터 굵직하고 큰일들까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어요. 감정소모도 컸고, 가끔은 저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이 힘들었어요.


남편은 제가 겪고 있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정말 이해하기 어려워했고, 중간 관리자가 되어 그것들을 조율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어요.



그럼에도,

퇴사할 수 없었던 이유가 저에게는 있었어요.



현실적으로 아동, 청소년을 상담하며 풀타임 근무를 할 수 있는 자리가 그리 많지 않아요. 마음먹으면 언제든 상담도 사업도 할 수 있는 제 일이 참 좋았어요.


저는 2018년 승진할 당시 이미 경력 7년 차였어요. 그래서 애매한 경력직보다는 승진으로 직책과 직급을 받는 것이 나중에 퇴사하더라도 저에게 유리할 거라 판단했어요.


걱정스레 말리던 남편도 결국은 열심히 해보라며 응원해 주었죠. 현실적으로는 적절한 판단이었을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가장 가혹한 선택을 했던 것 같아요.


어려운 상황인 만큼 능력과 성과로 증명해 내야 한다고 스스로 다그쳤거든요. 이때부터 저의 모든 인생의 우선순위를 몰아넣어 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아무도 반기지 않았던 저의 승진을 늦었지만,

제가 많이 축하해주고 싶네요.

감정적으로 퇴사를 선택하지 않은 것만으로 정말 용기 있고, 대단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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