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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열심히 살면 안 되겠다

by 마잇 윤쌤

2019년 가을,

저는 퇴사 예정자가 되었어요.


2019년 12월 퇴사가 공식 발표가 되기 전까지는 함구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죠. 처음에는 이것이 지키기 힘든 비밀이라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회사는 정부 부처 예산을 받아 운영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가을부터는 내년 사업 계획과 예산 계획을 하느라 바빴어요.


중요한 건 내년에 제가 없을 거라는 거였죠. 없을 사람이 사업 계획과 예산 계획을 짠다는 것이 아이러니였고, 자연스레 이 작업에 참여하는 직원들도 하나 둘, 눈치를 채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아직 퇴사 시점은 멀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을 언급할 수는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아무 일도 없는 척 뻔뻔하게 연극을 할 배짱이 저에게는 없었어요.


차라리 홀로 고립되는 방법을 택했죠. 돌아보니 이미 1년 전부터 고립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고립을 자처한 선택은 임신했을 때도, 아이를 낳고 귀에 물이 찬 채로 보러 갔던 그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였어요.


2년 동안 휘몰아치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시험공부는 갖다 버린 저는 자격증 시험지만 구경하고 돌아왔어요. 떨어질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험도 거르지 못했어요.


2018년 여름부터 더 이상 미룰 수는 없겠다는 마음에 점심시간과 출퇴근 시간을 쪼개어, 주말에는 친정 엄마와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공부에 매진했어요.


다시는 이렇게 공부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들 정도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친정으로 돌아가는 기차역 플랫폼에서 이제 막 공개된 가답안을 보며 손을 덜덜 떨며 채점한 시험의 결과는 합격이었어요.


결과를 확인하고 부들부들 손을 떨며 사연 많은 여자처럼 기차역 플랫폼 벤치에 앉아 목 놓아 울었어요.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마음과

"다시 공부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에서요.



3~4개월 점심시간과 출퇴근 시간을 쪼개어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직원들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 것 같아요.


좋은 동료들 덕분에 버텨왔던 지난날과는 기억의 색채도 달라지기 시작했죠.


그 즈음부터 회사 일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시작이 스스로 고립을 자처한 선택에서 함께 왔다는 것을 그때는 알아채지 못했어요.


홀로 고립되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음에도, 점심시간과 출퇴근 시간을 함께 어울려 즐겁게 지내는 직원들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어요.


1년이 지나고, 퇴사 예정자가 되어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던 순간, 외로움과 서글픔이 한순간에 몰려왔어요.



그리고 이 시간을 지나며 "너무 열심히 살면 안 되겠다" 깨달았어요.



선택으로 고립을 자처했고,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저와는 다른 방식으로 함께 즐겁게 조금 느긋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더군요.


오랜 기간 원하던 자격증을 마무리하게 되어 기뻤지만, 누군가 저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저는 이렇게 얘기해 줄 것 같아요.




"남들을 봐도 화가 나지 않을 만큼,

최소한 그 도전에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힘 정도는 남겨두고

열심히 살아도 충분한 것 같아요."


- 놀이치료사 윤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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