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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하나도 안 중요해요

by 마잇 윤쌤

2019년 1월부터 제가 일하는 동안,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이 있었어요. 회사 상사도 동료도 아닌, 회사를 관리하는 정부기관 담당자였어요.


정부기관 담당자는 회사와 저를 위해 하는 이야기라고 했지만,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늘 기분이 나빴고, 찝찝했어요. 마치 결론은 정해놓고 수긍할 때까지 사람을 몰아가는 것 같았거든요.


저와는 많은 조율과 회의를 해야 하는 사이였는데, 이런 기분을 느꼈다는 것에서 이미 주도권을 빼앗겼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회사의 관리,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동등하게 협의하려던 저의 꿈이 참 야무졌네요.


비밀 퇴사 예정자로 예산과 내년 사업 계획 회의를 하던 초겨울의 어느 날이었어요. 어찌저찌 곤혹스러웠던 회의는 잘 끝났어요.


갑자기, 담당자가 정말 저에게 필요한 이야기라며 말을 시작했어요.



"상담 잘하고 사업 잘하는 거

하나도 안 중요해요."

- 담당자



이 뒤부터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아요. 이미 제 머릿속에서는 지진이 나고 있었거든요.


저를 굉장히 위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결론은 상담과 사업에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더 잘하라는 이야기였어요.


서로 서로 잘 되어야 하지 않겠냐며, 거듭 설득에 가까운 이야기를 이어갔어요. 이야기를 듣는 제 표정은 좀비에 가까웠을 것 같아요. 기가 막혔어요.


비밀 퇴사 예정자로 고립된 채 지내면서도 어떻게든 잘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마음 뜨겁게 좋아하던 청소년 상담과 사업을 그만두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마음의 빚이 있었거든요.



"청소년 상담과 사업에 매진할 게 아니라, 우리에게 더 잘하라"는 말을 저렇게 길게 풀어서 정성스레 설파하고 있는 담당자의 모습을 보며 할 말을 잃었어요.



좋은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자리를 나섰어요. 그리고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거든요.


매년 공고를 내고, 동료들을 떠나보내며, 최저시급에 가까운 급여를 받으면서도 긴 세월을 버텨냈던 이유는 청소년 상담이 사업이 좋아서 였어요. 제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으니까요.


고립을 자처하며 합격한 국가자격증조차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되어 가는 현실에 반은 넋이 나갔던 것 같아요.


지금은 한 편으로 진심 고맙게 생각해요. 의도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덕분에 남아있던 회사에 대한 마음이 깡그리 사라졌어요. 아무런 덧정도 아쉬움도 남지 않았어요.


그 뒤로 저는 누구에게도 함부로 조언하지 않으려고 해요. 어쩌다 조언을 구한다고 해도 정말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요. 조언을 빙자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날카로운 말의 힘을 알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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