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 비밀 퇴사 예정자로서의 4개월은 참 길었어요.
3개월이 지나고, 회사 규정에 따라 후임자 채용 공고가 나가면서 비밀의 꼬리표가 사라졌어요. 드디어 저는 공식적인 퇴사 예정자가 되었지요.
내년에는 이 자리에 없을 사람, 공식적인 퇴사 예정자가 되자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어요. 직원들과의 관계에도 한결 여유가 생기더군요.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어린이집에서도 저는 늘 미안한 사람이었거든요.
살림과 육아는 늘 뒷전이었던 아내를 묵묵히 응원해 주었던 남편에게 미안했어요. 얼마 벌지도 못하면서 이 난리를 치는 것 같아서요.
이른 아침 당직 교사와 등원하고 저녁 늦게 당직 교사와 혼자 남아 있던 딸아이에게도 미안했고, 딸아이를 봐주는 교사에게도 미안했어요.
회사에서는 이제 막 승진한 팀장과 일하는 팀원들에게도 미안했어요. 조금 더 능숙하게 일하는 팀장이 있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이가 없었다면, 상황이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모든 원인을 스스로에게 찾으며 더 마음껏 야근할 수 없는 현실을 원망스러워했어요.
그리고 퇴사 예정자가 되어서야 깨달았어요. 결국은 이 모든 것은 스스로의 욕심이 만든 마음의 짐이었다는 것을요.
어쩔 수 없는 상황에도 포기할 줄 모르고, 무리하며 일하다 보니 지나친 의욕과 집착에 가까운 상태를 보이고 있더군요.
고립을 끝내고 직원들과 점심을 같이 먹고, 일에 집착을 버리니 관계에도 여유가 생겼어요.
한결 편안해진 분위기가 좋기도 했지만, 이 여유를 진작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며 마음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어요.
왜 이것을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다시 자책이 이어졌어요.
애착을 갖고 일했던 곳을 떠나야 하는 슬픔과 그렇게 불태웠음에도 남은 것이 없구나 하는 공허함이, 더 미리 깨닫고 잘 해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미안함이 한꺼번에 몰려왔어요.
이제 곧 떠날 수 있으니 홀가분할 줄만 알았는데... 생각지 못한 감정에 당황스러웠어요.
잘 마무리하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래야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