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퇴사 예정자가 되어보니 회사 사람들의 얄팍한 정치술수가 보이더군요.
겉으로는 제가 퇴사한다는 것을 몹시도 아쉬워하며 붙잡으려 했지만, 속으로는 자신들에게 더 호의적이고 유리한 사람을 제 후임으로 오게 하기 위해 물밑작업에 열심이었어요.
얄팍하다는 것은 결국 그 이야기를 다 제가 알게 되었다는 뜻이겠죠.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앞뒤가 다른 것도 그랬지만, 여기가 그럴 자리인가 싶어서요.
가만 생각해 보니, 이 회사는 1,2년을 넘기지 못하고 나가는 직원들도 많았지만, 그 기간을 넘기고 나면 오랜 기간 근속하는 직원들도 꽤 있었어요.
근속한 직원들은 마치 이곳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더군요. 무서웠어요. 여기에 더 있다가는 저도 그렇게 될 것 같아서요.
그럼에도 함께 했던 7,8년의 시간과 애착이 가득했던 곳이었기에, 퇴사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제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저는 제 일에 너무도 많은 자아를 내어준 것 같아요. 퇴사를 한다는 것이 하루하루 모래성처럼 제가 사라지고 있다고 느껴질 줄 저도 몰랐으니까요.
친구는 우스갯소리로
"지금 잘리는 게 아니고, 사표를 낸 거야!"라고 했지만, 웃음이 나지 않았어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며칠을 보내던 중, 갑자기 딸아이도 저도 39도가 넘는 고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다음날 아침,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어요.
A형 독감이었어요.
앞으로 5일 동안
딸아이는 유치원에 갈 수 없었고,
저는 출근할 수 없었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남은 일들이 많았거든요.
다섯 살 딸아이와 동시에 독감을 확진 받고도 마스크를 사서 쓰고, 사무실에 들렀어요. 급한 일들을 먼저 처리하고, 나머지는 집에 가서 하기로 했죠.
독감이어도 엄마랑 같이 있어서 좋다는 딸아이를 금방 가겠다는 거짓말을 하며 친정으로 보냈어요.
집에 있으며 혼자 일을 하려고 했거든요. 제가 독감을 너무 우습게 본 거죠.
고열과 몸살에 시달려 며칠을 앓아누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정부기관 담당자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식사를 하려고 한다며, 나오라는 연락이었어요.
며칠째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해 몰골이 엉망이었지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팀장님은 꼭 오셔야 하지 않겠냐는 담당자의 궤변에 택시를 타고 식당으로 갔어요.
백지장보다 더 하얀 얼굴로 테이블에 앉았어요. 물조차도 넘길 수 없었던 상태에 음식 냄새를 맡으니 속이 뒤집혀 금방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아프면 오지 말라고 했어야지 하는 다른 담당자들의 이야기가 들렸지만, 대답할 기운도 없었어요. 꼭 오라던 담당자는 난감해서 어쩔 줄 몰라 했지만, 괜찮다고 말할 정신도 없더군요.
먼저 가보라는 성화에 다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어요. 수액을 맞고, 회사에 가서 일을 마무리하려고요.
일이 있어서 그러니 간호사에게 수액도 빨리 맞을 수 있냐고 물어보던 제가 참... 지독하네요.
수액을 다 맞고 간신히 정신을 차려 사무실로 향했어요. 남아있던 모든 일을 다 처리하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짐을 챙겨 나왔어요.
명예로운 퇴사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쓸쓸히 떠나는 그림을 상상해 본 적은 없었거든요. 짐이 많아 데리러 온 남편을 만나자마자 주저앉아 오열을 했어요. 말할 수 없이 서럽더라고요.
잊을 수 없는 마지막 출근이 마무리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