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한 시도 쉴 줄 몰랐던 저는, 다른 회사에 지원서를 넣었고, 프리랜서 상담사 면접을 보러 다녔어요.
다행히 2곳에서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고, 2월부터 출근하기로 했어요. 프리랜서 상담사로서의 새로운 출발이었죠.
남은 1월 동안은 남편, 딸아이와 여행도 다니고, 재충전을 하기로 계획했어요. 엄마가 일하느라 늘 당직 교사와 출퇴근하던 딸아이와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거든요.
여행을 일주일 앞두었던
2020년 1월 20일,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이 최초의 감염자로 확진된 것을 시작으로 코로나19의 확산이 시작되었어요.
그 이후 코로나19는 국내 감염병 위기 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시켰고, 그 해에 유, 초등, 중, 고등학교의 개학이 5월 이후로 연기될 만큼 무섭게 퍼졌어요.
상담이 잡혀야 출근할 수 있는 프리랜서를 코로나19와 함께 시작한 셈이었죠.
프리랜서 상담사의 업무는 작은방에서 아이들과 밀접한 접촉이 있는 놀이치료, 청소년 상담을 하고, 부모님들이나 성인과 심리 상담을 하는 것인데요.
이렇게 낯선 사람과의 접촉을 꺼리고 두려워하던 시기에 새로운 상담사와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가족들과 여행을 가려던 1월의 계획도, 출근을 하려던 2월의 계획도 기약 없이 미뤄졌어요.
일도 하며 딸아이와 시간도 보내며 균형 있게 살아보려고 시작했던 프리랜서의 첫해였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일이 없을 줄은 몰랐거든요.
남아도는 이 시간을 어찌해야 하나, 엄두가 안 났어요. 일주일에 2~3일 친정에 보내던 딸아이와 꼼짝없이 일주일 내내 함께 있었어요.
집에서 쿠키도 만들고,
미니어처도 만들고,
팔찌, 스티커 공작 등등...
공방을 차린 것처럼 사인펜과 색연필, 색종이와 도화지를 쌓아놓고 딸아이와 집콕놀이에 열중했어요.
그리고 6개월이 지난 2020년 가을,
어느 정도 프리랜서 상담사의 일도 자리가 잡혀갈 무렵 깨달았어요.
"스스로 쉴 줄 모르는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구나."
돌아보니, 열심히 일하는 시절 일주일에 한번 맞았던 영양주사도, 한 달에 한 번 맞았던 링거도, 1년에 한두 번 찾아오던 급성장염도 없이 시간이 흘렀더라고요.
가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고 행사와 회의를 다니던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도 작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순간들도 솔직히 있었어요.
하지만 계획에 없었던, 코로나19 덕분에 저는 딸아이와 남편, 셋이 제일 친해졌여요.
그전까지 저와 친정엄마 사이에서 크든 딸아이에게 제가 제1양육자로 우뚝 서게 되었고, 일주일에 2~3일 딸아이와 제가 친정에 다녀오느라 주말을 함께 보내지 못했던 남편과도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요.
그때 세 식구가 함께 한 시간들이 저에게는 참 소중해요.
계획에 없었지만,
더 좋은 일이 많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