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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 Feb 28. 2024

가출하는 남편

part 1 . 마음

" 오늘부터 사무실에서 출퇴근할 테니 그런 줄 알아 "

꼭 이런 식이였다.

싸우고 나면 내 꼴이 보기 싫어서 저러는 건지

본인이 화가 얼마나 많이 났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

종종 싸움의 끝은 남편이 짐을 챙겨 사무실로 나가는 걸로 휴전을 맺게 된다.


' 참나, 나도 존심이 있는 여자야. 마음대로 하라 그래 ' 마음속으로 큰소리 뻥뻥 치지만

반나절이 지나면 분노는 차차 줄어들고 그 나이에 왜 저러나 한심해졌다가 

불편한 사무실에서 쪽잠 자고 있을 남편 생각에 안쓰러운 마음이 생기게 된다. 

서로 불만이 있으면 대화로 풀면 되지 유치하게 집을 나가고 그래? 

지 불편하지 뭐 나 불편할까 

참나 나도 자존심이 있는 여자라고.


딱히 내가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먼저 사과하자니 자존심은 상하고 

그렇다고 그냥 몇 날 며칠을 남보다 못한 사이처럼 지내자니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찝찝했다.

볼일보고 거기에 휴지 끼어있는 느낌이랄까 

가슴속에 시커먼 스펀지가 끼어있어 숨이 잘 안 쉬어지는 느낌이랄까?

어떻게 하면 불편한 내 마음을 없앨 수 있을까 생각하다 우선 사무실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궁상이란 궁상은 혼자 다 떨며 불편하게 작은 소파에 쪼그리고 누워있는 게 아닌가.

테이블에는 안주 없이 깡소주 1병은 이미 세팅을 해놓고선 말이다.

시시비비를 따져 물을 생각은 없었지만 좀 억울은 하다고 말하려는 참이었는데

그 꼴을 보니 그냥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

아이 둘 먹여 살린다고 참 밤낮없이 뛰어다니면서도

단 한 번도 힘들다 하기 싫다 말한 적 없었는데..

이 남자.

지나가는 혼잣말로 아 오늘 오맥이 살짝 댕기는데.. 한마디에

슬쩍 나가 오징어와 맥주 사 오곤 넷플릭스 영화 재밌는 거 떴다고 말해주었는데...

이 남자.

결혼생활 12년 내내 양념닭다리 2개는 날 주고 후라이드 닭다리 2개는 애들 주고

자긴 터벅 살도 맛있다고 말하는 사람인데


모르겠고,

그냥 이 남자 참 가여웠다.


내가 딱히 잘못한 건 없단 생각은

그렇다고 내가 썩 잘한 것도 없단 생각으로 변했고

대화로 풀면 되지 유치하게 집을 나가냐 한심함은

얼마나 답답하면 저렇게라도 시위를 할까 미안함으로 변했고

나정도 되니까 너랑 살아준단 근거 없는 시건방은

별 볼일 없는 나를 제일 예쁘다고 말해주는 남편의 칭찬으로 만들어진 것을,

역시 결혼 하나는 잘했다 말해주는 남편의 인정으로 만들어진 것을,

너희 엄마 같은 사람 없다며 애들에게 하는 잔소리로 만들어진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오빠 마음을 힘들게 해서 미안해. 집에 가자




자존심이 상할까 봐 먼저 손 내밀기 힘드신가요?

내 잘못도 아닌데 왜 먼저 화해하자 말해야 하냐고요?


자존심을 지키는 일은  

손해 보는 걸 하지 않음으로 지켜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조금은 손해 보더라도 먼저 손 내밀어주는 것 

그로 인해 마음 한 뼘이 더 자라는 것 

그 한 뼘에 더 단단하게 채워지더라고요.


ⓒ https://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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