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경 Mar 13. 2024

이 튜브, 제꺼지 말입니다.

part.1 마음

다행히도 신은 내게,

하체에만 축복을 내리셨으니

비록 두 허벅지가 늘 맞닿아 있을지언정,

허리 하나만큼은 25인치로 20대를 살았다.


한 손에 착 감기는 허리에

축복 가득한 하체라 20대의 나는

풍성한 서양스러운 몸매 소유자였다.


28살 첫 아이 임신과 동시에 

신은 나에게

그야말로 온몸에 축복을 선사하셨다.

걸어 다니는 건지 굴러다니는 건지

뱃속에 아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애를 위해 먹는다고 쓰고

이 기회에 먹는다라고 읽었다


" 애 키워봐라 먹을 시간 없어서 저절로 빠진다"

" 모유수유하면 다 빠진다"

" 애 걸어 다니기 시작해 봐라 쫓아 댕긴다고 다 빠진다"

..

..

다 빠진다면서요..?

저에게 이 말해주신 분들...

고소해도 될까요?


32살 둘째 임신했을 때는

' 내가 당한 게 있지 ' 이번엔 진짜야!

아기 몸무게랑 양수무게까지만 나, 허용한다!

결의했건만..

이게 또 경력직이라

먹던 가다(?)가 있으니 나에겐 날씬한 임산부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 둘 모유수유 다 하고

애 둘 독박육아 다 하고

가정에 살림에 워킹까지 다 해도

도무지 중간에 껴있는 이 튜브가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한약다이어트로 한 달에 7킬로 빼고 석 달에 8킬로 쪘뿌고...

옳다구나!

16시간 공복 다이어트. 너로 정했다.

8시간 동안 때려 넣으니 3킬로가 더 쪘뿌고..

1일 1식이 답이구나 싶어

늦은 점심 왕창 들이부으니

11시쯤 야식은 닭발이지 하고 뜯고 있는데 뭘


뭐라 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 

혼자 뺐다 먹었다 

굶었다 들이부었다 요란법석을 떨고도

결과물은 여전히 내 배에 껴있는 튜브라니...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난데없이 신랑이 

자기는 육덕진 여자가 이상형이랜다.

분명히 결혼 전에 

25인치 쏙 들어간 허리에 반했다고 똑똑히 들은 게 있는데 말이다.

한약다이어트로 급 7킬로 뺐을 때 

내 허리를 보고 분명

환호를 질렀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내 튜브를 자꾸 만지면서 

자기는 행복한 사람이랜다

가슴도 만지고 뱃살도 만지고 만질 거 많다고 행복한 사람이랜다

이거, 나 멕이는거지?


그런데 매번 그런 말을 해댄다.

뜬금없이 날 아래위로 훑더니

"캬~ 죽인다 "하질 않나

"엄마 몸매 죽이지 않냐? ' 하질 않나

애들은 하나같이 눈이 말똥만 해져서는

' 아빠! 뭐가? 대체 뭐가? '라는 눈빛은 

상관도 안 한다. 애초에 질문이 아니었던 게다.


처음에는 저 인간이

날 놀리는 건가 조롱하는 건가 싶다가

어느샌가

'어? 나 정말 이 정도도 괜찮은가?'

'뭐, 뱃살 좀 있으면 어때! '

'편안해 보이고 여유로워 보이는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저 사람은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 하는 법을 알려준 것이다.

허리 25인치였던 그때의 '나'도

허리에 튜브를 끼고 있는 지금의 '나'도

여전히 변치 않는 건  겉모습의 '내'가 아닌 그 자체의 '나'니까.




밉다 여기면 미울게 서말이다.

불행하다 여기면 불행한 것밖에 안 보인다.

그런데  이 말과 완벽하게 같은 말이 있다.


예쁘다 여기면 예쁜 게 서말이다.

감사하다 여기면 감사할 것 밖에 안 보인다.


우리 조상이 이런 말을 남겼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이왕 볼 거 예쁘다 여기고

이왕 볼 거 좋은 점만 찾아보고

이왕 생각할 거 감사함만 생각해라!


이 말을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전 04화 망할 놈의 인스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