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_사소함에 뭉클
점심을 먹고 산책길에 나선다.
걷기 운동을 위해 운동 앱을 켜고 사무실 근처를 돈다.
신호등이 없는 거리를 골라 걷는다.
신호등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기에,
운동 리듬을 유지하려면 큰길은 피하는 편이다.
평일의 골목길은 유난히 조용하다.
다들 밥벌이로 집을 비운 탓일까,
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드물다.
어제 걷던 길을 오늘도 걷고, 내일도 또 걸을 것이다.
직장인에게 평일 산책길은 늘 정해진 반경 안에 있다.
똑같은 길을 걷다 보면 특별함은 찾기 어렵다.
단조로운 길을 걷는 것은 때로 지루한 일이다.
그래서 시를 읊거나 음악을 듣거나,
사물을 오래 바라보는 일로 지루함을 달랜다.
걷기 외에 나만의 방법으로 길 위의 시간을 채운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반복되는 일상.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부정에 부정을 더하면 긍정이 되듯,
‘아무것’이라는 말은 아주 특별한 어떤 것일 수도 있다.
국어사전은 ‘아무것’을
‘대단하거나 특별한 어떤 것’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요즘 이 단어에 빠져 있다.
글밥 김선영 작가의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책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에 주목할 때’라는 제목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은 늘 곁에 있고,
아무것은 언제나 저 멀리에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밟고 걸으면서
아무것을 향해 손을 뻗는 것,
그게 우리네 삶이다.”
–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p.234
나는 지금 ‘아무것’이라는 말에 집착 중이다.
한 단어에 이렇게 오래 머문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나도 작가처럼
섬세한 촉수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그 촉수가 있다면, 내 삶도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