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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은 홍어입니다.

흑산도에도 살고 저 멀리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친구들도 많이 있어요.

by 벼꽃농부

여러 물고기를 보러 가는 인천종합어시장에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따스한 봄햇살이 좋아 오랜만에 아내와 나들이 겸 어시장에 갔다. 신선한 횟감과 매운탕거리를 사기 위해 단골 가게에 들러 주문을 하고, 여유롭게 시장을 돌아봤다. 그날따라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붉게 빛나는 홍어였다.


홍어는 생김새가 꽤나 재미있다. 넓게 펼쳐진 지느러미는 마치 바닷속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고, 작고 동그란 눈은 제입보다 넓게 자리 잡고 있다. 눈썹처럼 보이는 검은 선이 인상적이고, 코는 숨겨져 있어 쉽게 보이지 않는다. 두툼한 입술은 마치 뽀뽀라도 하고 싶을 만큼 귀여운 느낌을 준다. 반면, 사나이 격인 숫치의 긴 꼬리에는 천적과 맞서 싸우기에 무시무시한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 있어 살살 다루어야 하고 사랑하는 암치를 못 살게 구는 상어라도 만나면 '휘~익'하고 매섭게 채찍을 휘둘러 버릴 테니 말이다. 사실 홍어의 천적이라 해봐야 불가사리 정도지만 말이다.


나는 삭힌 홍어를 좋아한다. 막 성인이 된 때쯤, 할머니는 천수를 누려 천국으로 가셨고, 문상 오신 동네분들께 대접했던 홍어탕이 내 기억 속 깊이 남아 있다. 그때는 홍어의 맛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들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자 궁금함에 조심스레 한 숟갈 뜬 것이 참으로 진귀한 맛이었다. 장례 3일간 문상객들 속에서 뜨끈한 홍어탕을 매 끼니마다 먹었고 추운 날씨에 제격인 듯 알싸한 맛이 속까지 따뜻하게 해 주었다. 그날 이후로 홍어는 나에게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할머니와 함께한 어린 날까지 추억하게 하는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인천종합어시장 홍어전문점 인천 만수동 홍어전문점


홍어를 먹고 싶을 때면 나는 가끔 홍어 전문점을 찾는다. 인천에는 만수동에 홍어골목이 있어, 그곳을 찾으면 제대로 삭힌 홍어를 맛볼 수 있다. 내 후각은 홍어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

지하철 출구에서부터 서서히 퍼지는 특유의 삭힌 향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홍어골목에 다다른다. 골목 전체에 진동하는 그 향이 내 코를 자극하면, 마치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홍어는 특유의 강한 맛과 향 때문에 집에서는 먹기 쉽지 않다. 냉장고 안에 넣어 두어도 냄새가 베어 나와 아내의 원성을 사기 일쑤다. 그래서 나는 주로 홍어 전문점을 찾아간다. 제대로 삭힌 홍어를 삼합으로 먹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부드러운 홍어 살을 한 점 들고, 돼지고기 수육과 묵은지를 함께 싸서 입에 넣으면 입안 가득 퍼지는 풍미가 기막히다. 그 강렬한 맛과 향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내겐 중독적인 맛이다.


요즘 홍어를 즐기는 것이 예전보다 쉽지 않다. 국내산 홍어, 특히 흑산도 홍어는 가격이 너무 올라 쉽게 접하기 어렵다. 자연산 홍어의 귀함과 더불어 그 가치는 더욱 높아졌고, 수입산 홍어가 대체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내 입에는 칠레나 아르헨티나 홍어도 충분히 맛있다. 삭히는 방식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잘 삭힌 수입산 홍어 역시 특유의 톡 쏘는 감칠맛을 내며 훌륭한 별미가 된다.


홍어를 먹다 보면 사람의 취향이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는 삭힌 홍어 특유의 암모니아 향 때문에 아예 입에도 대지 못하는 반면, 나처럼 그 향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홍어를 처음 접한 사람에게는 그 맛과 향이 충격적일 수 있다. 코를 찌르는 강한 향에 놀라고, 씹을수록 퍼지는 얼얼하고 알싸한 맛에 당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 익숙해지면 다른 어떤 음식에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한 매력을 알게 된다.




나는 홍어를 먹을 때마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따뜻한 미소와 동네 어르신들의 정겨운 대화가 떠오른다. 그리고 인천 만수동 홍어골목을 걸으며 맡는 진한 삭힌 홍어 향이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준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생존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기억을 곱씹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며칠 후 나는 그 특별한 향을 찾아, 홍어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기련다.


#인천종합어시장 #홍어삼합 #인천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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