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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를 잃은 나무들, 그리고 우리의 삶

나무야 나무야 헌 가지 주면 새 가지 줄게

by 벼꽃농부 Mar 07. 2025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는 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아파트가 준공된 지 오래된 만큼, 나무들도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어왔다. 아내와 나는 여러 나무 중 옅은 파스텔색의 목련을 참 좋아했다. 그리고 다른 나무들에게서 봄부터 늦가을까지, 풍성한 잎사귀가 바람에 일렁이며 초록빛으로 가득 찬 이 공간은 내게 작은 숲과도 같았다. 그러나 최근 단지 내에서 대대적인 가지치기 작업이 진행되면서 익숙했던 풍경이 달라졌다. 가지가 잘려나간 나무들은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채 서 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허전하기만 하다.


    나무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떠올려 보면, 가지치기는 나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가지를 적절히 정리하면 나무가 더욱 튼튼하게 자랄 수 있고, 해충 피해를 줄이며, 바람에 쓰러지는 위험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도시 환경에서는 나뭇가지가 지나치게 퍼지면 보행자나 차량의 이동에 불편을 줄 수도 있고, 건물 창문을 가리는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맞은편 6층을 보더라도 높다란 남향임에도 가지에 가려 한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불편함이 따랐겠다. 따라서 가지치기는 단순한 미관상의 조치가 아니라, 안전과 건강 또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관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의 가지가 잘려나간 풍경을 마주하면 왠지 모를 아쉬움이 밀려온다. 무성했던 초록빛이 사라지고, 생명력이 넘쳐 보이던 나무들이 마치 생기를 잃은 듯한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은 가슴 한편을 허전하게 만든다. 나는 왜 이토록 가지치기된 나무를 보며 씁쓸한 감정을 느끼는 걸까?


전지작업(출처: 숨터조경)


    아마도 그 이유는, 나무가 본래의 모습대로 자연스럽게 자라지 못하고 인간의 손길에 의해 일정한 틀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이 나무들이 깊은 산속에서 자랐다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가지를 뻗고, 계절에 따라 자연스러운 변화를 맞이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일정 부분 인간의 개입을 피할 수 없다.


    도시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품을 수 없는 환경이다. 우리는 자연을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배치하고, 적절한 크기와 형태를 유지하도록 관리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삶과 충돌하는 순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무들이 본래의 생김새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이 왠지 씁쓸하게 다가온다. 도시의 나무들은 인간이 원하는 모습으로 다듬어지면서 자연과 인공의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가지치기를 마친 나무들을 조금 더 긴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것이 일종의 성장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비록 지금은 앙상한 모습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가지가 돋아나고, 다시금 풍성한 잎사귀를 펼칠 것이다. 가지치기는 단순한 단절이 아니라, 더 건강한 성장을 위한 준비 단계다. 우리 삶에도 이러한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때때로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야 할 때도 있고, 한때 소중했던 관계를 정리해야 할 때도 있다. 그 과정은 언제나 아프고, 때로는 상실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나 가지를 친 나무가 다시 싹을 틔우듯, 우리도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경험과 관계 속에서 다시 성장할 수 있다. 오히려 가지를 정리하지 않으면 더 튼튼한 줄기가 자라지 못하고, 약한 가지들이 엉켜버릴 수도 있다. 결국, 가지치기는 더 멀리 보고 나아가기 위한 과정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자연이 인간의 개입 없이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도시에서는 불가능하더라도, 적어도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나무를 단순히 미관을 위한 존재로 여기기보다, 그들의 생명력을 인정하고 나아가 존중하며 공존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가지치기가 필요한 이유를 알면서도 허전함을 느끼는 내 감정은, 아마도 자연이 본래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변화가 필요하고, 그 변화가 더 나은 성장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법도 배워야 한다. 앙상한 가지를 바라보며 느낀 허전함 속에서, 나는 자연과 삶의 성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다가오는 봄, 지금은 헐벗은 듯한 나무들도 다시 초록빛으로 물들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나무들처럼, 변화 속에서도 다시 피어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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