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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쁘게 Sep 09. 2024

학벌, 학력이 인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2)

외삼촌 편

 그 외삼촌의 자식 중 둘은 우리 집 형제와 나이가 동일하다. 그러니 암암리에 경쟁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나와 동갑인 아이는 자신이 원하던 자신의 아버지와 동일한 의사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나는 그저 평범한 학과에 입학했다가 미련이 남아 의학전문대학원을 공부하다 포기하였다.  내가 27살이었을 때  할머니 생신으로 인하여 외가 가족끼리 태국으로 단체 여행을 가게 되었다. 우리 집은 부부 동반대신 나와 엄마가 함께 가게 되었다. 태국에서 여행하던 중 태국 무에타이는 한번 보고 가야 한다며 일정 중에 들어있지 않아서 저녁 자유시간 때 무에타이를 볼 것이냐 노래방에 갈 것이냐를 고민하다 할머니도 보시기엔 무에타이보단 노래방이 났다고 하여 노래방에 가게 되었다. 태국의 노래방은 우리나라 노포시장 같은 곳에 야외 분식집이 있을 법한 곳에 노래방 기기 한대와 주인과 여자가 되고 싶어 준비하는 여장남자 한 명이 있었다.  노래를 하던 중, 나는 큰외삼촌 바로 옆에 앉게 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를 취미로 배워서인지 학교에서 배웠던 웬만한 악기들은 다 잘했었다. 탬버린 역시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을 때  잘 친다고들 하긴 했었다. 나는 그나마 어른들의 분위기를 뛰어 드리려고 더 열심히 호응하고 억지로 더 잘 놀았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항상 외가 모임에서 장기자랑을 시키는 것이 너무 고역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와 어른들을 기쁘게 하는 게 효도라며 생각하고 내 동생들과 나는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큰외삼촌이 가도 너무 갔다. 더운 시장 냄새나는 후미진 그곳에서 누가 탬버린 치고 놀고 싶겠는가. 나도 호텔방에서 쉬고 싶었다. 선을 넘었다. 내게 '너 탬버린 잘 치고 분위기를 잘 뛰어주니 신이 나서 좋구나. 잘하고 있어.'라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고학력자의 고급스러운 표현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미쳐서 방방 뛸 번 했다.  " 너 탬버린도 잘 치고 노래도 잘하니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해도 되겠다." 즉, 노래방 도우미 하면 된다는 말을 하더라. '노래방 도우미=노래방에서 일하는 창녀.'라는 것은 누구나 알았다. 다들 내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데, 노래 잘하고 탬버린도 잘 치니 노래방 알바나 하란 말을 당신 자식들이 들었으면 과연 유쾌하게 생각하고 넘어갔을까? 외가의 특성이 자기나 자기 자식이 당하지 않으면 모른 척 입 다물고 있는 것은 알지만 기본이 안 돼먹은 것 아닌가? 기본적 상식도 없는 이기주의자들이 돈을 주고 배운 지식들은 상식이나 예의 따위가 아닌 그저 돈을 잘 벌기 위한 '술기'였을 뿐이었다. 너무나 수치스럽고 화가 치밀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조카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을까? '당신이 사람입니까? 이게 조카에게 할 말입니까?' 란 비명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왔지만,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참고서 억지로 웃으며 모른 척을 했다. 할머니 생신을 축하하기 위한 가족모임을 망치면 안 되는 일이니 말이다.  물론 그 사람도 내가 당연히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알고서 한 말이다. 의전 공부를 할 때는 항상 모이면 하는 말이 "의전 나온 것들은 하나같이 실력이 엉망이야. 의대 나온 애들이 의사를 해야지, 의전으로 4년 하고 의사고시 보는 건 이건 용납되선 안된다. 의전 나온 애들 병원은 가지 마라 실력이 엉망이니."라고 말이다. 

 또한, 어릴 적에는 내게 말이 많다며, '너희 엄마랑 너는 말이 왜 이리 많은 것이냐며 입 다물어."라 말했다. 지금 자신의 손주들이 셋이 있다. 그런데 그 셋이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말이 많은지 쉬지 않고 조잘대는데, 그 외숙모가 말했다. " 눈감기 직전까지 쉬지 않고 떠들어 대서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단다." 그랬더니 그 외삼촌이 하는 말이 가관이다. 말이 많은 아이들이 머리가 좋고, 똑똑하단다.  나도 그런 TV육아 프로그램 같은 곳에서 그런 말들을 들었다. 어휘력도 뛰어나고 이러한 아이들이 머리가 좋다고. 그러니 아이들이 맘껏 말하게 하라고. 자신의 손주에게 " 넌 누구 닮아서 그렇게 말이 많니? 입 좀 다물래?"라고 말한다면 과연 가만히 있을까? 게다가 자신의 손녀가 악기를 잘 다룬다는데, 그 아이에게 " 넌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해도 되겠다."라 말하면 과연 뭐라고 할까? 궁금하다. '네 할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인데. '라고 말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촌이 백인과 결혼했다. 한국에 나온다고 하니 한국에서도 결혼식장을 잡아서 결혼식까지 해주면서 나를 불러다 놓고 했던 말이 뭔지 아는가? " 너 쟤처럼 저런 외국인이랑 결혼하는 게 좋아보이냐? 동양인이면 동양인끼리 해야지 예전에 외국인들이랑 결혼하면 양공주라고 다들 손가락질했어. 넌 외국인이랑 결혼할 생각 하지도마. 저게 좋아보이냐? 애들도 낳으면 혼혈 아로 태어나도 동양인도 아니고 서양인도 아니고 저게 뭐야? 집안 망신이지." 라는데, 왜 내게 사촌들의 욕을 하면서 그들에게는 직접 얘기하지 않고 오히려 뒤에서 욕하던 것과 반대로 앞에서는 엄청난 환대와 칭찬을 하며 내게는 왜 그들 대신 야단치고 설교를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 가관이었던 것은 신정에 모이면 항상 나이 순서대로, 태어난 순서대로 세배를 한다. 결혼 전 아이를 가진 집의 결혼식엔 절대 참석하지 않는다고 항상 큰소리치더니, 자신의 아들이 26살에 사고 쳐서 임신하여 임신 6개월 차에 결혼하니, 그 이후로는 아이 가지고 결혼하는 사람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자기 자식이 그의 자부심을 깨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사람은 함부로 장담하는 게 아니라나 보다.'라고 그의 모친께서 내게 말했었다.

 

신정에 세배를 하는데, 결혼을 한 사람이 어른이니 동갑이지만 나보다 늦게 태어난 자신의 아들이 어른이니 먼저 절을 하란다. 그러더니 4년 뒤에 사촌여동생이 결혼을 했다. 그랬더니 사촌여동생이 그 아이 다음으로 절을 하겠다 나서니 그 아이의 엄마가 말린다. 그건 아니라고. 렇게 치면 그 외삼촌도 결혼을 늦게 했기에 어른이 아니었기에 동생들보다 한참 뒤에 절했어야 하나, 자신이 가장 큰사람이라며 자신이 가장 먼저 세배를 했었다고 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딱 그 짝이다. 화가 나지만 내 부모나 형제들도 가만히 있기에 불만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7년쯤 참다, 코미디언 '김숙'이 하는 말을 들었다. 명절에 꼭 어른들이 "너 언제 결혼하냐? 나이가 벌써 그렇게 먹었는데 결혼도 안 하고 어쩔 거냐."라고 한단다. 그런데 정작 웃긴 것은 소개 한번 시켜주지도 않으면서 걱정하는 척 사람을 기분 나쁘게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놓고 말했단다. " 소개라도 한번 시켜주고 언제 결혼하는지 물어보라고. 소개도 안 시켜주면서 언제 결혼하는지 묻는 게 걱정해 주는 거냐고!!"  그 이후로 명절에 가족모임에 참석하지 않고, 마음도 너무 편하고 기분도 좋단다. (나는 그 이후로 코미디언 김숙의 팬이 되었고, 대차고 진실한 그녀를 닮고 싶었고, 지금도 닮고 싶다. ) 그 얘기를 듣고서 나도 퍼뜩 깨달았다. 매번 다녀오면 기분만 나쁘고, 내게도 똑같이 소개도 시켜주지 않으면서 언제 결혼하냐는 둥 노산이라는 둥 어른이 아니라는 둥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으며 자꾸 사촌들 안에서 망신 아닌 망신을 주는 이 모임에 나오지 말자. 그 이후로는 설날이던, 추석에도 가지 않았고, 엄마와 아버지에게 얘기했다. 내 부모이기도 하면서 항상 동생들에게 나쁘게 말하면 보호해 주면서 나는 그런 수모를 당해도 가만히 두냐고. 물론 모두 성인이니 부모님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내가 알아서 해야 하며, 그런 일을 만드는 외삼촌이 잘 못된 것을 알면서도 괜한 화풀이를 엄마에게 했다.  


결혼 안 하면 어른이 아니다? 그럼 교황님과 신부님, 수녀님, 스님들은 결혼도 하지 않았으니 어른이 아닌가? 어른도 아닌 사람들의 설교나 말씀은 어떻게 듣는 것인지? 그들은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다 어리고 어리석은 사람들이란 말인가? 자기 입에서 무슨 말을 뱉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가 궁금했다. 게다가 설날, 추석, 제삿날 들에 외 할아버지는 기독교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자신의 마음대로 제사를 지낸다. 물론 외증조부모의 제사도 지내는데, 항상 자신들의 아들 둘을 앞에 세우며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 전주 이 씨 효령대군 몇 대파 어쩌고를 읊으며 자신들이 뼈대 있는 왕족가문임을 읊으며 여기 모인 니들성씨들과 다른 조선 왕족출신이란다. 우리나라에 왕족 아닌 성씨가 있을까? 물론 내 조상은 왕이었던 적이 없다. 김 씨, 이 씨, 왕 씨, 고씨, 다 따지다 보면 어디까지 갈까? 왕족도 직계가 아니면 벼슬도 하지 못하고, 숙청이나 되거나 살기 위해서 숨어 살아야 했건만 대단한 성 씨 나셨다.


 의학박사까지 마치고, 의학계에서는 내놓으라 하는 무슨 수술법에 논문에 대단하다는데, 재력이나 명예나 권력은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지만 그 사람이 인성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막냇동생이 군대에서 디스크가 터져서 아프다고 병원을 추천해 달라 했다니 '나도 디스크 있다. 디스크 없는 사람이 있니' 란다. 결국 내가 인터넷 서칭을 하여 EBS명의를 뒤져서 디스크의 명의를 찾아서 전화했더니 최소 1년, 1년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결국 그나마 다음순서인 서울대학병원 교수님의 자리가 비어있어 3달 뒤에 예약을 해서 겨우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동시에 다른 동생이 교통사고가 나서 중환자실에서 8개월 만에 깨어났고, 병원을 바꾸고, 여러 부분에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자신은 힘이 없다며 거절했다. 결국 돈도, 힘도, 지인도 없던 나와 엄마는 발만 동동거리며 두근 거리는 가슴을 졸여가며 내 발로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엔 아버지가 아버지역할을 하지 않았기에. 물론 외삼촌도 그것을 알면서도 불쌍해할 만도 한데 오히려 도와주지 않고, 몇 년 뒤 이모부가 가벼운 교통사고가 나니 지인을 통해 잘하시는 분께 치료를 받게 해 주고, 다른 사촌의 조모의 수술에도 힘써주었다. 사촌조카의 돌잔치에 참석했다. 하필 외할머니 옆에 앉게 되었는데, 그 옆에 하필 또 큰외삼촌이 있었다. 외할머니가 귀가 잘 안 들리시면서, 초기 치매가 오셔서, 시장함을 참지 못하셨다. 계속 지루한 행사들이 계속되니 할머니께서 조금 큰 목소리로 " 밥은 언제 먹냐, 아침을 안 줘서 못 먹고 와서 배고픈데." 라시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여기저기서 웃음소리들이 났고 웃어넘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외삼촌은 자신의 엄마면 자기가 조용히 시키지 내 팔을 막 때리면서 소리 지른다. " 할머니 조용히 시켜. 이게 무슨 망신이야! 축하하는 자리 와서 이게 뭐야!! 망신스럽게. 얼른 조용히 시켜!!." 라면서 내 팔을 때려댄다. 아니 내가 할머니 간병인인가? 아니면 내가 할머니 딸인가?  자식은 당신이면서 치매 걸리고 귀가 안 들리는 노모가 그리 창피한가? 난 내 부모가 그랬다면  그냥 웃으면서 엄마에게 설명하고 다른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웃었을 것이다. 늙고 병들면 창피해하는 이 씨 왕조 의학박사라. 의사면 나보다 더 잘 알지 않은가? 많이 배우고 힘 있고, 재력이 있다고 결혼 안 한 성인분들처럼 구는가? 결혼한 사람이 나보다도 더 어리게 행동하고 있지 아니한가? 가족모임에서 인사를 하니 나를 큰소리로 다시 불러 세우더니 왜 인사 안 하냐며 인사를 했다고 하니 "다시 눈 똑바로 마주치고 인사해!"라 하셔서 가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딱 쳐다보고 인사했다. 물론 이제는 아예 모든 가족모임에 오지 않겠단 다짐과 함께 말이다. 난 도대체 내게 왜 그리 못되게 구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그 사람의 자식들보다 잘 된 것도, 잘 살지도, 재력도, 권력도, 학력도, 학연도 지연도 없다. 그들이 보이에 난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 혼자서 하나씩 모아서 내 발로 뛰어다녀야 하는 흙수저다. 그런 나를 왜 이리 더 밟아 짓이기는지, 내가 잘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나선 적도 없었고, 항상 튀지 않고 싶어 조용히 구석에 있었는데 뭐가 그리도 못마땅했던 것일까? 아직도 너무나 궁금하다.

 

물론 부모의 재력과 권력이 부러울 때도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내게는 비빌 부모라는 언덕이 없기에 내겐 오직 신밖에 없다며 제발 도와달라고 아이처럼 떼를 쓰고  울며 기도했다. 그랬더니 신은 도와주셨고, 그리고 그 덕에 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오늘 하루를 또 살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같이 가정, 학교, 친척들 사이에서 이렇게 구박데기로 살아봤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고통과 역경이 힘이 되어 내가 더 강해진다지만, 나는 아직도 정금같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더욱 주눅 들고, 사는 것이 불행하고 힘들다. 세상은 나 빼고는 모두 행복하고, 나만 행복이란 것이 비껴가는 것 같다.  아직도 내가 써 내려갈 고난들은 차고 넘친다. 직장상사, 직장동료들, 그 일을 할 때 갑질했던 일들, 전남편과 그 시댁의 행보들. 오늘 하루도 이유 없이 힘들고, 슬퍼 눈물이 날지라도 나처럼 울면서 어떻게든 견뎌보시길. 그래서 살아남길 잘했다고. 이 말이 나오는 그날이 내게도, 그대에게도 얼른 오길 오늘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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