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쓸모_최아영
5월 연휴에 저는 전라남도 순천 여행을 했습니다. 순천에서 ‘책방 심다’라는 동네 작은 서점에 방문했는데요. 그곳에서 이 그림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의 쓸모’
제목과 표지에서 쓸쓸해보이는 살짝 깨진 흰 화병을 보니 쓸모라는 단어가 참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표지를 넘기면 깨져서 슬픈 표정의 많은 화병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하루 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좋은 일은 아니었어요.’
멋진 식물과 반짝이는 오너먼트를 담아내던 흰 화병은 어쩐 일인지 깨져버렸고 동네 쓰레기장에 버려집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 의해 낯선 집의 베란다로 오게 됩니다. 화병은 이 모든 상황이 싫습니다. 자신을 쳐다보며 수근거리는 다른 화분들도 싫고 흙냄새도 벌레들도 모두 싫습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다른 화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다른 화분들에 담긴 꽃과 나무들에 관심을 갖기도 합니다. 심지어 다른 화분들을 부러워하기도 하죠. 그러던 어느 날 이제는 화분이 된 화병에게도 새싹이 돋아납니다. 어떤 식물일까요? 흰 화분은 자신에게 담겨진 식물을 잘 키워내며 뿌듯함을 느낍니다. 다시한 번 본인의 쓸모를 찾고 행복해합니다. 그리고 앞에서 본 슬픈 표정의 많은 화병들도 저마다 다른 자신들의 쓸모를 다시 찾아 행복해하는 모습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몇 해 전에 40년을 근무하시고 퇴직하신 선배님의 마지막 퇴근 길을 배웅해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매일 같이 다니던 직장을 내일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싶었습니다. 지금이야 당장이라도 사직서를 쓰고 싶지만 그날이 온다면 조금 씁쓸하면서 허전하다고 느낄 것 같습니다. 은퇴하신 분들이 많이 허전해하시는 것을 많이 보곤하는데요. 돈을 벌지 않으니 가족에게 쓸모가 없어진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들 하시는 것 같습니다. 자식들 독립시키신 어르신들이 느끼는 허전함과 쓸쓸함도 이런 게 아닐까요?
제 '쓸모'를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교사입니다. 저는 제 일을 참 좋아하는데요. 조금 자랑하자면 꽤 아이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는 '쓸모'있는 교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급격히 나빠지는 교육환경, 특히 교사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일부 악질의 학부모들에 대한 생각을 하면 일에 대한 열정이 없어지곤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참 열심히 가르치며 보람을 느끼고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의 쓸모를 느끼고 에너지를 얻곤 하는데요. 힘든 교실상황때문에 오히려 열정을 펼치지 못할 때 교사로서의 ‘쓸모’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내가 만약 다른 선생님들이 겪는 그런 교사로서의 수모를 당하게 되면 교사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싶고 그럼 그만두면 나는 무엇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쓸모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며 우울해지곤 합니다.
교사로서의 쓸모를 펼치지 못하는 환경에 우울한 요즘. 이 그림책은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쓸모’는 거창한 것만 말하는 것을 아닐 것입니다. 작은 씨앗을 담고 키워낸 흰 화분처럼 작고 소소한 일이라고 멋진 쓸모가 될 것입니다. 깨진 화병도 깨진 채로 멋진 화분으로 변신해서 행복하게 다른 쓸모를 다 하는 것처럼 저 또한 여기 저기 상처가 나더라도 저도 다른 쓸모를 찾아 잘 살 수 있겠죠?
혹 저와 같은 고민하시는 분이 있다면, 쓸모를 잃어버렸다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 그림책이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