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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과 추락

by 식물감각

상승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거침없이 뻗는 주가의 선은 날개를 단 듯 가볍고, 위험할 만큼 관능적이었다.

그 위에 올라탄 나도 잠시 신이 된 듯했다.

수익은 나를 변형시켰고, 그 변형이 빠를수록 짜릿했다.

붉은 숫자들이 춤추는 스크린 속에서

세상의 모든 리듬이 나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듯했다.

그러나 몰랐다.

상승이 얼마나 많은 공허 위에 쌓인 환영인지,

그 끝에 언제나 추락이 기다리고 있음을.

정점에 서 있을 때, 세상은 투명했다.

모든 차트는 나를 향해 열려 있었고

나는 스스로의 판단이 숙성된 감정처럼 완벽하다고 믿었다.

그 자신감은 거칠었고, 그 거침이 때로는 섹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깨달았다.

그건 발효가 아니라, 발광이었다.

인간은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추락하기 마련인 “비극성의 수직성”을 알고 있지만

어떤 인간은 가장 높이 오른다.

급등하는 종목을 보며 나는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을 떠올렸다.

그 이름부터가 예언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하늘로 솟구치는 독수리,

순간의 비상(飛上),

절대의 비명(悲鳴).

그 와인은 나파의 상징이자, 욕망이 낳은 궁극의 결정체였다.

그 완벽함이 너무 정교해서, 오히려 위험했다.

우리는 언제나 상승에 취한다.

잘 만든 와인처럼,

첫 향부터 균형 잡힌 탄닌, 터지는 과실미, 절묘한 산도.

의심할 여지없는 완벽함이다.

그러나 정점이란 언제나 의심을 잃어버린 순간이며,

그곳엔 늘 추락이 깃든다.

추락은 천천히 다가왔다.

처음엔 미세한 조정이었다.

가볍게 넘겼다.

다음 날, 하락이 이어졌다.

“괜찮아, 이건 일시적인 눌림이야.”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나 차트는 경사를 잃었고,

마침내 수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날 밤, 나는 와인을 열었다.

스크리밍 이글 2003.

오랫동안 아껴두었던 병이었다.

기념일을 위해 남겨두었지만,

기념은 상승이 아니라 추락을 위해 쓰였다.

나는 하락을 기념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억이 아니라 각성이었다.

병을 열고 향을 맡았다.

검은 과실의 아로마가 폭죽처럼 터졌다.

블랙 체리와 카시스의 농밀한 향은

끝없이 솟아오르는 주가의 그래프처럼 휘몰아쳤다.

한 모금을 머금자 잘 익은 과실의 육즙이 입안을 채우고,

그 순간 나는 과거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었다.

연속된 수익에 취했던 날들,

내 안에 아드레날린이 넘치던 시간들.

하지만 스크리밍 이글은 단순히 달콤하거나 관능적이지 않았다.

농축된 과실 뒤엔 삼나무와 시가 박스, 흑연의 그림자가 배어 있었다.

그 향은 경고였다.

상승이 클수록 낙폭 또한 깊다는 진실을

이 와인은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다.

며칠 후, 나는 더 플라이트(The Flight 2015)를 열었다.

같은 와이너리, 그러나 다른 운명.

이 와인은 조용했다.

메를로 중심의 블렌딩이 붉은 자두와 라즈베리, 말린 장미의 향을 피워 올렸다.

그 향은 마치 꺾이는 차트의 미세한 떨림 같았다.

급락이 아니라, 우아한 하강.

패배가 아니라 전환.

스크리밍 이글이 포효라면,

더 플라이트는 숨결이다.

이 와인을 마시며 나는 상승이 아닌 하강의 곡선을 보았다.

완만하고 정제된, 무언가를 놓아주는 사람의 움직임.

그것은 감정의 낙하산이었고

내면이 연착륙하는 방식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우리는 상승을 위해 투자하지만

삶은 추락 이후에 시작된다는 것을.

상승은 나를 자랑스럽게 만들었지만

추락은 나를 사유하게 했다.

사유 없는 수익은 단지 숫자의 축적일 뿐이다.

어떤 와인은 당신을 취하게 하지만

어떤 와인은 당신을 깨운다.

스크리밍 이글은 나를 취하게 했고,

더 플라이트는 나를 깨웠다.

그건 비극이 아니라,

숙성의 드라마였다.



� 스월링 노트 | 상승과 추락

1. 숫자는 높이지만 감정은 낮다

상승은 정점에 오르지만, 내면의 균형은 흔들린다.

감정의 고도를 함께 살피지 않는 상승은 위험하다.

2. 추락은 정제된 침묵이다

실패는 큰 소리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고요 속에서 감정을 익힌다.

3. 비명은 감정의 음악이다

스크리밍 이글의 향처럼, 완벽한 것에는

언제나 쓸쓸한 여운이 깃든다.

4. 가장 조용한 와인이 가장 많이 말한다

더 플라이트는 속삭이며 말한다.

우리는 고요한 추락을 통해 자신의 온도를 알게 된다.

5. 투자란 상승이 아니라 회복의 방식이다

‘오를 것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떨어질 것인가’이다.

그 철학을 가진 투자자만이 진정 익는다.




� 추천 와인 ① : 스크리밍 이글 (Screaming Eagle Cabernet Sauvignon 2003)

생산지: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 오크빌 AVA

품종: 카베르네 소비뇽 88%, 메를로 8%, 카베르네 프랑 4%

스타일: 컬트 와인의 지존, 초고가 슈퍼 프리미엄

특징: 농밀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닌 장기 숙성형 와인

� 테이스팅 노트

스크리밍 이글은 캘리포니아 컬트 와인의 상징이자

나파 밸리의 권좌를 차지하는 압도적 한 잔이다.

명불허전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짙은 루비-퍼플 컬러.

카시스와 블랙베리의 폭발적 농도 위로

삼나무, 에스프레소, 흑연, 허브의 결이 켜켜이 겹친다.

입안에서는 묵직한 과실과 산미가 팽팽한 긴장을 이루고,

매끄러운 탄닌이 완벽한 비행 궤도를 그린다.

바디는 풍부하고 장중하며

피니쉬는 길고 드라마틱하다.

이 와인은 절정의 아름다움이 가진 위험을 경고한다.

� 추천 이유

스크리밍 이글은 극도의 희소성과 상징성으로

한 번의 소유만으로도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와인이다.

그래서 이 와인은 상승의 화려함과 절정의 도취를 상징한다.

그 강렬한 완벽함은 욕망의 거울이며, 동시에 추락의 예고다.

스크리밍 이글은 사납게 울부짖고 미친 듯이 노여워하는 노래다.

미네르바 올빼미처럼 외치면서 노래하는 이 와인은 그래서 컬트적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짜 노래가 될 수 있는 외침들이다.

날지도 못하는 사람은 삶이 무겁다고 말한다.

가벼워져 새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니체는 말했다.

날게 하는 힘을 얻기 위하여 이 와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스크리밍 이글은 완벽에 그치지 않는 탁월함이 있다.

그것이 컬트의 속성이다.

이 와인은 ‘비명을 지르며 비상하는 인간’을 닮았다.

그래서 위험하고, 그래서 아름답다.

� 추천 와인 ② : 더 플라이트 (The Flight 2015)

생산지: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 오크빌 AVA

품종: 메를로 중심,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블렌딩

스타일: 고요한 구조, 관능적 섬세함

특징: 침묵 속에서 감정이 익어가는 와인

� 테이스팅 노트

더 플라이트는 스크리밍 이글의 세컨드 와인이지만

결코 부차적이지 않고 독립적인 위용을 보여준다.

가격도 매우 비싸다.

투명한 루비빛 속에서

라즈베리와 장미, 허브가 은은히 피어난다.

시간이 흐르며 시나몬과 젖은 토양의 향이 겹겹이 얹히고,

실키한 질감과 우아한 산미가 긴장 속의 평화를 만든다.

피니쉬는 길다고 말하기보다 깊은 침묵 같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마치 고요한 낙하처럼.

� 추천 이유

더 플라이트는 추락 이후의 회복을 위한 시다.

급락이 아닌 완만한 하강,

패배가 아닌 수용의 우아함.

이 와인은 침묵 속에서도 여운을 남긴다.

스크리밍 이글이 욕망이라면,

더 플라이트는 용서다.

두 와인은 상승과 추락, 욕망과 각성의 두 곡선이다.

그 교차점에서 우리는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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