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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는 끝났고, 사람만 남았다

by 식물감각

숫자가 전부였던 날들이 있었다.

수익률, 변동성, 기준금리,

일별 수익률 그래프를 스크린샷해 놓고

나만의 미소를 지었던 날들.

하지만 지금,

그 파일은 열리지 않고,

그 차트는 기억나지 않으며,

그 종목의 이름조차 흐릿하다.

그럼에도 나는 기억한다.

그날 밤,

내게 투자 이야기를 처음 꺼내준 사람의 눈빛을.

폭락장 속에서 함께 커피를 마셔준 친구의 손끝을.

투자가 아닌 인생을 이야기한

그 깊은 침묵과 웃음을.

나는 이제 안다.

진짜 남는 것은,

수익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그건 따뜻한 한 마디일 수도 있고,

함께 울어준 어깨일 수도 있으며,

아무 말 없이 옆자리에 앉아준

그 존재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지만,

나는 결국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같은 종목을 두고 열띤 논쟁을 벌인 사람,

같은 하락장을 두고 함께 울어준 사람,

아무 수익도 나지 않았지만,

‘다음엔 괜찮을 거야’라며 웃던 그 사람.

그들과의 시간은

투자의 성과표에 적히지 않지만,

내 인생의 가장 진한 수확이었다.

투자가 끝났을 때,

잔고는 0이 될 수 있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기억 속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사람만이 남는다.

사람만이 나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수익을 기록하지 않고,

대화를 기억하려 한다.

사람의 말투, 눈빛, 그날의 공기.

그건 어떤 상승보다 오래 남는다.

우리는 결국,

사람에게 투자하고 있었다.



� 스월링 노트| 투자는 끝났고, 사람만 남았다

1. 투자의 끝에는 사람이 있다.

돈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당신 곁에 남은 사람이 당신의 진짜 수익이다.

2. 좋은 수익보다 좋은 대화가 더 오래간다.

그날의 상승률보다 함께 웃은 온도가 더 뚜렷이 남는다.

기억은 차트가 아니라, 감정으로 쓰인다.

3. 사람이 곧 테루아다.

당신이 속했던 공동체, 나눴던 이야기,

그것이 당신이라는 와인의 향을 만든다.

4. 함께한 시간은 복리로 남는다.

그들은 당신을 기억하고, 당신도 그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것이 진짜 자산이다.

5. 마지막 잔에 따를 건 수익이 아니라 온기다.

한 병이 끝날 때, 남는 것은 향이다.

투자도 같다.

끝났을 때, 당신 곁에 사람이 남는다면, 그것이 가장 완벽한 한 잔이다.




� 추천 와인 : 퀼세다 크릭(Quilceda Creek Cabernet Sauvignon 2017)

생산지 : 미국 워싱턴 주 콜롬비아 밸리

품종 : 카베르네 소비뇽 100%

스타일 : 파워풀한 구조, 농밀한 과실, 길고 섬세한 피니쉬

숙성 :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20개월

� 테이스팅 노트

보랏빛을 머금은 짙은 루비 컬러가 잔을 휘감으며,

빛의 각도에 따라 자줏빛 하이라이트가 은근히 드러난다.

향에서는 잘 익은 카시스와 블랙체리, 블루베리의 농밀한 과실향이 압도적으로 피어오르고

뒤이어 자두, 바이올렛, 삼나무, 흑연의 우아한 뉘앙스가 겹겹이 쌓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에스프레소, 다크 초콜릿, 담뱃잎, 미묘한 가죽과 흙 내음이 등장하며

아로마의 층위가 한없이 깊어진다.

입 안에서는 광활한 미네랄 감촉과 응축된 과일이 긴장감 있게 펼쳐지고,

실키하면서도 견고한 탄닌 구조가 등뼈처럼 서 있다.

산도는 잘 조율되어 긴장감을 부여하면서도 과실의 풍부함을 과도하게 누르지 않는다.

알코올의 힘이 따뜻하게 느껴지지만 결코 무겁지 않고,

오히려 와인의 구조적 균형을 강화한다.

피니쉬는 놀랍도록 길고 관능적이며,

블랙커런트와 은은한 스파이스가 서서히 사라지며 마음을 붙잡는다.

지금 마셔도 훌륭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위대한 깊이를 드러낼 것이다.

� 추천 이유

퀼세다 크릭 2017 빈티지는 힘과 절제, 균형의 미학을 보여준다.

이 와인은 단순히 화려한 첫인상에 그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한 아름다움과 힘을 드러낸다.

이는 마치 투자에서 단기적 수익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투자의 본질적 가치와 내면적 성찰을 상징한다.

수익은 시장의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며 쉽게 사라질 수 있지만,

그 뒤에 남는 것은 투자자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어떤 균형을 지키며, 어떤 기억과 감정을 축적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와인이 보여주는 농밀한 과실과 강인한 구조,

그리고 시간이 줄 수 있는 위대한 진화는 곧 지속성과 내적 자산의 은유다.

퀼세다 크릭은,

로버트 파커 포인트 100점을 네 차례 이상 받은 워싱턴 와인의 정점에 서있는 생산자답게

단순히 한 해의 성과가 아니라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철학과 전통을 담아낸다.

이 와인은 수익이 사라지고도 당신 가슴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와 사람, 그리고 따뜻한 미소를 위한 와인이다.

이 와인은 시대를 열고 미래를 남긴 장인 정신을 담고 있다.

이는 단기적 차트의 등락에 흔들리지 않고 긴 호흡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투자자의 태도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강렬한 첫인상에도 불구하고, 진짜 감동은 다 마신 후에 남는다.

그것은 마치 수익이 사라진 후의 고요와 닮았다.

감정을 뚜렷이 들추지 않으면서도, 입 안과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기는 와인.

이 와인은 말한다. 진짜 여운은 침묵 속에 남는다고.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람들을 오래 기억하는 방식이라고.

와인은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한 미디어다.

누구와 함께 하든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그것이 곧 삶의 기쁨이다.

그렇다면 와인에서 빛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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