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달맞이 치성
달맞이 치성의 기억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달맞이 치성’을 아시나요?
‘달맞이’라고 하면 요즘 사람들은 정월 대보름이나 추석 정도를 떠올리겠지만, 예전에는 보름달이 뜨는 매월 음력 15일 밤이면, 집 마당 한가운데에서 ‘달맞이 치성’을 드리고 있는 여인을 흔히 볼 수 있었어요.
치성의 대상이 남편과 자식인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주로 어머니.
깊은 밤, 환하게 빛나는 보름달 아래, 장독대 혹은 소반 위에 정한수 한 대접 올려놓고, 두 손 모아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혼자 빌고 있는 여인의 모습.
지금은 영화 아니면 사극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지만, 꽤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했던 그 시절의 풍속이자 문화였습니다.
그랬던 ‘달맞이 치성’이 사라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어요. 제 주변을 시작으로.
남편과 제가 오랜 서울 타향살이 끝에 홍은동에 처음 우리 집을 지어 살기 시작한 때입니다. 제가 막 나이 서른을 넘겼을 무렵이죠.
‘아폴로’라는 우주선을 타고 ‘암스트롱’이라는 미국 우주인이 달에 다녀온다는 소식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어요.
지구인이 달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을 흑백 TV로 생중계한다고 난리였죠.
TV는 없었지만, 24시간 라디오를 끼고 사는 남편 덕에 늘 뉴스를 듣고 살던 저에게도 매우 설레이는 소식이었습니다.
영 쓸쓸 맞은 달나라
그런데 웬걸요.
계수나무 아래 절구에서 떡방아를 찧고 있는 옥토끼의 모습을 드디어 보게 되는 건가 싶었는데... 나무와 토끼는커녕 물 한 방울도, 풀 한 포기도 없이 그저 바위와 흙밖에 없는 쓸쓸 맞은 곳이라고 하네요.
제 마음까지 뭔가 쓸쓸 맞을 뿐 아니라, 영 허망한 소식이더라고요. 쓴 입맛만 다셨죠.
겨우 그런 소식을 전해준 그 미국 우주인이 뭐가 그리 대단한지, 몇 달 후 한국을 방문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환대를 해주고 광화문에서 꽃가루를 뿌리며 대형 카퍼레이드를 하고, 또 한 번 나라를 시끄럽게 하더군요.
그때 우리 집 옆에 남편과 함께 아들, 딸 두 아이를 키우는 저와 동갑내기 엄마가 있었어요. 친한 사이였죠. 저도 충청도 공주 깡촌에서 올라왔지만, 그 엄마는 저보다도 훨씬 더 먼 남쪽 촌마을에서 올라온 아주 조용하고 순박한 여자였습니다.
그 우주인이 방한한 날이 마침 음력 15일 보름날이었어요.
그날 밤, 영 퇴근이 늦는 남편을 기다리느라 보채는 막내딸을 업고 집 근처를 서성이고 있는데, 밝은 달 아래 그 엄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더군요.
보름달 아래, 정한수 한 사발 소반 위에 올려놓고 두 손을 합장한 채,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달맞이 치성을 드리고 있더라고요.
순간, 조금 전 낮에 요란했던 그 우주인의 광화문 카퍼레이드 뉴스가 떠오르며 이 밤의 풍경이 뭔가 어색해 보이는 겁니다.
등 뒤로 다가가 무릎으로 등을 툭 쳤죠. 그 엄마, 소스라치게 놀라며 “뭐 하는 짓이야?” 합니다. “자기야말로 뭐 하는데?” 하니 “달님에게 치성 중이잖아” 하더군요.
조각 난 쪽배
제가 웃으며 그랬죠.
“달에 암것도 없댜. 보이는 건 조약돌 뿐이라는디. 겨우 그 조약돌 몇 조각하고 흙 몇 주먹 가지고 왔단다. 지금 그 돌덩이에 치성드릴 일 있어? 암만 빌어본들 그 소원 들어주고 이루어줄 암것도 없다는디 다 소용없는겨” 했더니, 이 여자 충격을 받았습니다.
비명처럼 “정말?” 하더니 말문을 닫는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입니다. 달착륙 뉴스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더라고요.
확인시켜 주듯 제가 자세하게 그 뉴스를 다 얘기해줬죠. 몇 달 전 달착륙부터 오늘 낮 카퍼레이드 소식까지. 한참을 낙담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더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면서 간신히 입을 떼네요. 몹시 슬픈 표정으로.
“그럼 난 이제 어떡해...”
달에 아무 것도 없다는 그 뉴스를 들으며, 계수나무와 옥토끼까지는 아니어도 틀림없이 뭔가는 있을 거다 했던 저도 참 허망했지만, 저하고는 차원이 다르게 낙담하는 그 엄마가 갑자기 안쓰러워지더군요.
오랜 세월 매달 보름날 밤마다, 남편과 아이들을 위한 달맞이 치성을 한 번도 거른 적 없는 여자였거든요.
이제는 도리어 당황한 제가 급히 그 엄마를 달랬어요.
“이제는 우리 스스로를 믿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된 거여. 곧 달나라 여행도 가게 된다니 우리 열심히 돈 많이 벌어놓아야 한다니까”.
멈춰 선 달맞이 치성
제가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서도, 남편과 함께 서울 객지살이를 시작하던 무렵, 보름날 밤이면 어린 아기를 업고 달을 쳐다보며 불렀던 동요 '반달'.
그윽한 보름달빛 아래 고향을 생각하며 ‘반달’을 부르면, 타향살이의 고단함이 조금은 덜해지는 것 같았는데... 그 노래를 그 뒤로는 잘 못 부르겠더군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뻔히 알아서인지.
그날 뒤로 그 옆집 엄마는 그예 달맞이 치성을 멈췄습니다. 결국 그 보름날 밤의 풍경이 제가 살면서 마지막으로 본 누군가의 달맞이 치성이 되고 말았죠.
달착륙이 전해준 달의 본 모습 때문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 느낌으로는 우리나라의 오랜 달맞이 치성 풍속도 그때부터 빠르게 사라진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말이죠. 그 우주선과 우주인이 미웠어요.
우리에게서 계수나무 아래 절구에서 떡방아를 찧던 옥토끼를 빼앗아간 것도 미웠고, 그 대신 곧 달나라 여행이라도 시켜줄 것처럼 온 세계 온 나라를 흔들며 요란을 떨더니, 그날로부터 5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 소식 없는 걸 보면 괘씸하기까지 하다니까요.
토끼야, 이제 그만 서쪽 나라에서 돌아오지 않으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