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우물에 빠진 날

"그 우물로 함께 수영하러 갈까?"

by 꼭두

동생이 우물에 빠진 날

"그 우물로 함께 수영하러 갈까?"


나는 목욕, 동생은 다이빙


6.25 전쟁 때 피란을 갔습니다.


제가 살던 촌마을에서도 한참 찾아가야 하는 깊은 산골이었어요. 그 산골엔 단 세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그중 한 집에서 방 한 칸을 내어주어, 그곳에서 전쟁통 내내 생활했죠.


우리는 엄마, 아버지 그리고 저를 포함해서 다섯 남매까지 모두 일곱 식구였지요. 당시 아버지가 농기구 철공소를 하고 계셔서 집집마다 알고 지내는 친한 분들이 많았고, 그 산골 분들도 우리 식구를 참 친절히 대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살던 집에 저와 또래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아주 친하게 지냈어요. 함께 산으로, 들로 잘 놀러 다녔답니다.


그때 제 나이 열두 살이었고 제게는 세 살배기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제가 엄마 대신 늘 업어 키우며 보살피는 동생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우리 집에 다녀온다며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


그 산골엔 우물이 하나 있었어요. 그 우물은 마을의 식수였고, 빨래터이면서, 농사를 짓는 농수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동생을 업은 채, 산골 친구와 함께 우물가에 목욕을 하러 갔어요.


바가지 하나 들고 신나게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잠시 한눈을 팔고 있던 중에 그만 동생이 우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엄마, 나 우물 속에 들어갔다”


제가 혼비백산하며 우물을 들여다보는데 물이 맑아서 아기의 모습이 참 잘 보이더군요.


처음에 깊이 빠져들더니 쑥 하고 올라오네요. 처음엔 그걸 정신없이 보기만 했는데, 다시 깊게 빠져들더니 또 물 위로 올라오더라고요.


올라오는 벽 쪽에 풀잎 한 포기가 붙어 있었는데, 그 풀포기를 한 손으로 잡고 매달려, 다른 한 손으로 아기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는 아기의 팔을 붙잡았고 그렇게 둘이 함께 아기를 건져 올렸습니다.


아기가 새파란 물이끼를 온통 머리에 뒤집어쓰고 나왔는데, 얼굴이 안 보일 정도예요.


닦아도 닦아도 없어지지 않는 그 이끼를 간신히 벗겨낸 후 아기를 데리고 돌아왔는데, 아기가 많이 놀라서 그러는 건지 별로 울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는 거예요.


불안한 마음으로 아기를 보고 있는데, 밖에서 친구가 “너희 엄마 오셨다” 소리칩니다. 가슴이 두근두근하더군요.


친구한테 우리 아기 우물에 빠트렸단 건 절대 비밀이니 누구한테도 얘기하면 안 된다 해두었었고, 아기 동생한테도 “너, 엄마한테 오늘 우물에 빠졌단 말 절대 하면 안 돼” 해놓았었죠.


그런데 얘가 엄마를 보자마자 그러네요.


“엄마, 나 우물 속에 들어갔다”


다행히 엄마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더군요. “어이구, 그래 잘 놀았구나” 하시며 아기를 안고 쓰다듬기만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때부터 저의 악몽은 시작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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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커서 아주 잘 사는 동생


이 아이가 그날 이끼와 물을 많이 먹어 잘못 크면 어떡하나, 난 동생을 우물에 빠트려 죽일 뻔한 언니다 자책하며, 자다가도 그 순간이 떠오르면 깨어나길 여러 차례, 저는 가족 누구에게도 그 일을 말하지 못하며 거의 십오 년 정도를 혼자 끙끙 앓고 지냈답니다.


우물에 빠졌던 동생은 제 걱정과는 달리 아주 잘 컸는데, 너무 잘 커서 그랬는지 고등학생이 되고는 어찌나 남학생들과 연애를 하던지요.


처녀한테 그런 소문은 큰 흉이 되던 시절인지라 늘 엄마가 속을 끓였는데, 어느 날 저를 붙잡고 그러시더라구요.


“집안 망신 저년을 어쩌면 좋냐, 내가 괜히 쟤를 낳아 키웠구나!”


잠시 고민을 한 제가 드디어 오랜 비밀을 털어놓았죠.


“엄마, 그런 말 하지 마, 걔 진짜로 죽을 뻔했던 애야” 하며 그날 우물가에서 일어났던 그 일을 속죄의 눈물과 함께 다 말했습니다.


제 말을 들으면서도, 제 말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던 엄마가 천천히 입을 열더군요. “하마터면 두 딸을 다 죽일 뻔했구나. 다 내 탓이다. 네 잘못이 아니다” 하며 저를 안아주시더라고요.


가족에게도 말 못 한 채 품고 있던 제 오랜 비밀이 사라지면서, 마침내 죄책감을 덜어내던 순간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때의 우리 일곱 식구 중 살아있는 건 저와 여동생 둘 뿐입니다.


6.25 전쟁통 속 어느 깊은 산골 마을에서 일어났던 우물가 그 사건은 저와 동생만이 마치 흘러간 전설처럼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고요.


이제는 할머니가 된 제 동생은 미국교포와 결혼해 덴버라는 도시에서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가끔 동생이 국제전화로 제게 향수와 신세타령을 하면 저는 동생한테 이렇게 말하곤 하죠.


“너, 내가 그때 안 건져줬으면 지금 이렇게 잘 사는 거? 어림 택도 없어!”


그럴 때마다 동생은 깔깔거리며 자지러집니다. 제가 한 마디 더 보태죠.


“그날 넌 이미 죽은 거여, 두 번째 죽는 날까지 날마다 ‘언니, 고마워’ 하며 살아야 한다!”


동생이 한술 더 뜹니다.


"언니, 올 여름엔 그 우물로 함께 수영하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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