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그 전쟁의 회상

전쟁은 끝나고 노래가 남았네

by 꼭두

6.25 그 전쟁의 회상

전쟁은 끝나고 노래가 남았네


국민학생 내 기억 속 6.25


제가 국민학교 4학년이었어요.


어른들 말이 지금 3.8선이 뚫렸다며 피란을 가야 한답니다. 동네 언저리에서는 가장 깊은 산 속인 ‘구리실’이라는 곳으로 피란을 갔죠.


온 마을 사람들이 산 속에 함께 모여 솥단지를 걸어 놓고 밥을 해 먹는데, 어린 저는 힘들다기보다 오히려 재미도 있고 신이 나더라고요. 그때 말로는 천렵, 요즘 말로는 캠핑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아주 오랫동안 머무는 단체 캠핑 분위기.


솥으로 갓 지어낸 밥을 막 나누어 먹으려던 어느 날 초저녁 무렵. 동네 순사가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가쁜 숨 몰아쉬며 하는 말이, 인민군이 대전 가는 걸 막기 위해 오늘 저녁 금강철교를 폭파할 거다, 어서 금강다리 건너 멀리 부산으로 피란을 떠나라 합니다.


이 밥이라도 마저 먹고... 였을까. 다들 멀뚱멀뚱하며 아직 엉거주춤 있는데, 갑자기 피융 피융 소리와 함께 총알이 머리 위로 막 날라다닙니다. 혼비백산하여 밥솥, 밥그릇 다 집어던지고 대충 간단한 봇짐만 챙겨 허둥지둥 산 속 피란길을 걷기 시작했죠.


"피난은 무신 피난이랴"


그런데 제가 그때 학질이라는 병에 걸려 있었어요. 열이 펄펄 끓어 더 이상 그 밤길을 걸을 수가 없더군요.


그때 저 멀리에 작은 불빛이 보여요. 세 가구가 살고 있는 그야말로 산 속 오지 마을이었는데, 아버지가 그곳 사립문을 두들깁니다.


"아이가 많이 아파 피난길을 더 못 가니 방 한 칸만 내어주면 안 되겄슈?"


이내 사립문을 열고 나온 집주인.


"피난은 무신 피난이랴, 여서 그냥 함께 숨어 살지 그류~"


결국 우리 식구는 그곳에서 전쟁 속 피란살이를 하게 됐답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한겨울의 1.4 후퇴도 지나고, 다시 여름이 왔어요.


6.25가 터진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쟁이 한창인데, 서울에 이어 대전도 국방군과 유엔군이 또다시 차지했다는 뉴스를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마을의 국민학교도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우리 식구도 마침내 그리웠던 집으로 돌아왔어요.


선생님들이 마을 구석구석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아이를 학교에 다시 보내달라고 사정 사정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죠.


더 대단한 건 원래 선생님들은 피란으로 떠나고, 인민재판으로 사라지고, 거의 보이지 않게 됐지만, 서울에서 피란 온 선생님들이 그 일을 대신 하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도,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우리나라의 인재, 물자 돌려막기는 참 대단한 나라입니다.


6.25 피란학교에서 받은 졸업장


그 서울 선생님 손을 잡고 학교를 다시 가보니,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되다시피 한 건물에, 미군들이 겨우내 막사로 사용했다더니 책상, 걸상도 모두 땔감으로 때어버려 교실에도 뭐 하나 남은 게 없네요.


그나마 멀쩡한 교실 몇 개를 골라 바닥에 가마니때기를 깔고 수업을 했답니다. 책도 없이요. 그렇게 1년쯤 지나자, 문교부에서 임시 교과서라며 나눠주더라구요. 정식 교과서는 휴전 후에 나왔고요.


그렇게 6.25 전쟁학교에서 힘들게 공부하고 졸업했지만, 전 그때의 기억도 참 좋답니다.


서울에서 피란 와, 동네 선생님을 대신해 주셨던 선생님들이 정말 멋졌거든요. 인물도 좋았지만, 교과수업은 물론이고 음악, 체육 등 실기까지 참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셨죠. 전 그때 선생님들 이름, 지금도 다 기억하고 있어요.


저는 마을의 피란학교에서 국민학교를 다닐 수 있었지만, 중고등학교는 모두 공주 읍내까지 가야 하는데, 금강 다리가 폭파되어 나룻배를 타고 통학하는라 중고생들은 고생 엄청 했답니다.


유행가라는 건 없던 시절. 이름 모를 전쟁통의 구전가요와 군가를 개사한 듯한 노래를 흥얼거린 기억은 지금까지 가사도 곡조도 생생하고요.


왜 그리 흉년마저 계속되어 먹거리는 귀했는지, 겨울이면 산에 올라가 소나무 송진 따서 껌을 만들고, 그 송진 껌을 함께 씹어먹으며 정을 나누던 국민학교 친구들 모습이 지금도 아득합니다.


55년 후의 에피소드


2006년에 현대그룹에서 하는 금강산 여행을 갔어요.


북한 온정각에서 식사를 하고 금강산 유원지를 계곡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굽이굽이마다 큰 바위가 웅장히 서 있는 거예요. 바위마다 북한 유명 인사의 이름이 쓰여 있더라고요. 북한 최고지도자라는 인물의 첫째 부인, 둘째 부인 이름까지도요.


제일 위에 있는 큰 바위가 김일성 바위더군요. 그 바위에 시처럼 보이는 글귀가 길게 쓰여 있었는데... 한참을 쳐다보다 새카맣게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6.25 때 우리 마을에 인민군이 점령했을 당시의 일입니다. 인민군들이 저녁마다 동네의 어린아이들과 처녀 총각들을 강제로 불러 모아 노래를 가르쳤거든요.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저도 불려 나가 노래를 배웠죠. 두 달을 넘게 매일 밤을...


그때 지겹게 따라 불러야 했던 노래 중에 '인민항쟁가'라는 게 있었어요.


그런데 김일성 바위에 새겨진 그 글귀가 바로 그 노래가사인 거예요. 사람들이 "이게 뭐야? 꼭 노래가사 같은데..." 하길래, 제가 "노래가사 맞아요" 하면서 저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웃으면서 놀라더군요. 이 노래를 지금까지 어떻게 기억하냐고. 저도 신기하더라고요. 인민군이 물러간 후 지금까지 50년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다시 떠올려본 적도, 불러본 적도 없는 노래였는데 말이죠.


그때 누군가 그러더군요. 인민군이 만든 노래가 아니고 대한민국의 작곡가 김순남이 만든 곡이라고.


전 그저... 군가가 중독성이 있다더니, 아니면 내 기억력이 남다른 건지 싶으면서 문득 드는 생각.


'전쟁은 끝나고 노래가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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