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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 Aug 08. 2024

줄지어 꽃이 피던 때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시상이 샘솟는 까만 밤들이 있었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 바람이 그치지 않고 불어왔었다
그러나 이젠 먼 이야기처럼 그것으로부터 스쳐 지나온 기분이었다
하루에도 느끼는 십 수 번의 회의감.. 기대와 바람과는 무관한 글쓰기라고 다짐해 왔지만 역시나 나도 크게 다르지 나 보다
어렵사리 출간을 했건만 알아봐 주지 않는 현실에 실망하고 나약함은 순간의 틈새에 스민다
내 글이 세상에 나온 날 대단해 축하해 그런 반응이었지만 이 세계는 지독한 물질세상. 스스로를 입증할 수 있는 건 결국 데이터화된 결과물이었다

아무리 잘 나온 글이라도 설령 기쁜 마음이라도 소정의 성과가 없는 이상 불편한 조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뭐 물론 어느 정도는 필요한 말이다
때때로 오기라도 나니까
지난 인생을 내 생각만으로 꽉 채울 수는 없었지 않나
여기까지 온 것만 보아도 그 생채기와 내적 반항은 도움이 되었다 할 수 있다
해도 달도 별들도 바라던 바라지 않던 먼 하늘에 거기 꼭 그 자리이다
거기에 비하면 내가 뭐라고
묵묵히 피차 할 수 있는 걸 하는 수밖에

별이 뜬 밤 뒤채이는 바람과 어디에선가 부딪히고 일렁일 파도 그리고 아직 애틋한 너의 부분들
자주 갖던 질문들을 이름 모를 호숫가에 던져내고 이는 물결을 오래도록 바라다본 날이 있었다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쓰지 않는다면 내 가슴에 진득이 들러붙은 것을 드러내는 기분일 것 같다
무척이나 아플 것 같다
언젠가는 할 수 없는 순간이 오겠지만, 힘겨운 하루를 지나 가까스로 닿는 까만 밤을 난 아직 좋아한다
그 시간이면 아득하기만 했던 세상의 언어들이 내가 펴든 흰 종이 위에 하나 둘 모여든다
그리운 것들과 여태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아른거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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