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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 Aug 13. 2024

어제의 달이 다시 뜨면


익숙한 길을 걸어 홀로 돌아간다
텅 빈 하늘에 나 같은 저녁달
비탈의 경사를 오를 때면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누군가 다녀갔다는 그달
분명 오랜 신비를 깨트리는 일이었지만 지금의 월야는 충분히 넉넉히 오묘하다


저녁달 아래의 온갖 것들은 고요하고 쓸쓸하고 소소하게 분주하다
밥을 짓고 누군가에게 다니러 가고 걷고 달리고 음악을 하고 시를 적는다
첫 만남을 가지기도 하고 끝을 얘기하기도 한다
웃고 떠들다 돌아와 긴 시간 혼자였고
잘 지냈냐며 안부를 묻다 얼굴이 그날들이 떠올라 말을 잇지 못하기도 한다


돌아가는 길은 늘 익숙해야 한다
눈감고도 갈 수 있어야 한다
만남이 어떠했든 돌아가는 길이란 늘 힘이 빠지는 법이니까
올려다본 저녁달에 종종 먹먹해지는 법이니까


오늘도 무사히 당도한다
집에 오면 고단함도 이야깃거리가 된다
오늘은 한잔 술에 안주 대신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게 될 것 같다
어둑한 망망대해의 밤에도 잠들지 않고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 내게서 이야기가 돼주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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