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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 Aug 27. 2024

범람하는


걷고 또 걸어 다다른 이곳은 푸른 바다가 고요히 품은 외딴섬이다
언제가 가자고 닿자고 한 곳
꿈꾸어오다 절묘하게 상상과 들어맞는 곳
황금빛 억새가 나부끼다 눕고 바람은 비탈을 훑고 난 뒤 비로소 하늘에 오른다
숲을 울리는 산새들 소리에 한적한 숲은 깨나고 생령을 얻는다


시를 쓰다 그렸던 이곳을 '꼭 언젠가는' 하며 막연히 동경했었다
이곳에서는 내 가장 은밀하고 힘겨웠던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펼쳐진 해안선에 마음을 빼앗기고 바람에 실린 갯내음을 맡으며 아득해진다
너와 함께라면 못 참고 입맞췄겠지
아직 사랑하노라고 전부 털어놓았겠지
이별을 정리하려고 이곳을 찾았지만 마음 어딘가에서부터 애틋함은 끓어오른다


좋았던 일과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들
하얀 입김이 번지던 그 겨울

유난히 따스했던 네 작은 손
눈송이가  가만 내려앉고
다만 널 안고서 눈이 하염없던 날
분명 지날수록 애틋함은 커질 테다
짐작이 가지 않는다 난 그때에 어떤 표정을 지을까
널 어떻게 기억해줘야 할까


회상에 젖어 걷다 보니 섬의 꼭대기까지 올랐다
옹기종기 모여있던 바닷새들이 망망대해를 향해 하나 둘 날아들고 망설임 없는 활공에 나도 따라 비행을 꿈꾼다
많은 곳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알고 그리고 아쉬움일랑 없겠지
태양빛에 물들어 가며 서로에게 눈부신 기억밖에 없을 거다

멀어졌던 바람이 바다 위를 미끄러져 다만 내게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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