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내 음울한 성정이 그것과 같아서일까 모든 게 나로부터 멀어져 떠나갈 것 같은 게 꼭 밤일 것만 같아서일까 홀로 고요히 앉아 계절처럼 저무는 기억을 회상한다 봄날이고 겨울이었다 아늑한 정원이었고 겨우나무 우거진 숲이었다 텃새가 지키고 날아오르는 곳 우리는 아파해가며 나아간다 다만 나아갔다
어디에 닿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밤이 되고 달이 뜨면 그 아래서 밥을 짓고 시를 쓰며 기타를 켰다 지나온 역사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간절함에도 불행은 산재해 있었고 죽음과 생은 공존했고 산자는 죽음이 있는 곳에서 곡하지만 죽은 자는 그때에 비로소 웃을 수가 있었다
공중의 구름 떼가 모였다 흩어진다 겁 많고 꽤나 회의적이기에 난 좀처럼 세상이라는무대의 한가운데로나서지 않았다 가장자리를 서성이다 그저 겉돌다 별볼일 없는 글쟁이가 되겠지 소외받는 이곳이 익숙했고 썩 나쁘지가 않다 눈치 없는 척 할 수 있는 말이 많기에 잘 모르는 척 물을 수가 있기에
손에 닿을 듯 시어들은 떠다녔고 이어지는 호젓한 날들 속에서 어쨌든 계속 쓰게 될 것이다 읽히지 않는 글을 쓰고 있었고 분명 이건 불행이지만 그래도 몇 마디 글줄이 그럭저럭 써지는 건 감복할 만한 일이었다 달큰한 술 몇 잔에 취기가 오른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춤을 출 것이고 남은 잔을 입으로 털어놓을 것이고 그리워한다 적을 것이고.. 그래 난 쓸쓸한 계절을 겨우 이렇게 나고 있었다
둥근달이뜬 어둑한 밤.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함께 유유자적 흔들렸었다 침묵했던 것들과의 조우. 근원에 닿을 듯한 순간. 불을 밝힌 도시가 멀리서 보였다 내 허망한 사랑들은 저 도시의 황홀경이 빚어낸 신기루였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