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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 Aug 28. 2024

하나 둘 세다가


자주 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내 음울한 성정이 그것과 같아서일까
모든 게 나로부터 멀어져 떠나갈 것 같은 게 꼭 밤일 것만 같아서일까
홀로 고요히 앉아 계절처럼 저무는 기억을 회상한다
봄날이고 겨울이었다
아늑한 정원이었고 겨우나무 우거진 숲이었다
텃새가 지키고 날아오르는 곳 우리는 아파해가며 나아간다 다만 나아갔다

어디에 닿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밤이 되고 달이 뜨면 그 아래서 밥을 짓고 시를 쓰며 기타를 켰다
지나온 역사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간절함에도 불행은 산재해 있었고 죽음과 생은 공존했고 산 자는 죽음이 있는 곳에서 곡하지만 죽은 자는 그때에 비로소 웃을 수가 있었다

공중구름 떼가 모였다 흩어진
겁 많고 꽤나 회의적이기에 난 좀처럼 세상이라는 무대의 한가운데로 나서지 않았다
가장자리를 서성이다 그저 겉돌다 별 볼일 없는 글쟁이가 겠지
소외받는 이곳이 익숙했고 썩 나쁘지가 않다
눈치 없는 척 할 수 있는 말이 많기에
모르는 척 물을 수가 있기에


손에 닿을 듯 시어들은 떠다녔고 이어지는 호젓한 날들 속에서 어쨌든 계속 쓰게 될 것이다
읽히지 않는 글을 쓰고 있었고 분명 이건 불행이지만 그래도 몇 마디 글줄이 그럭저럭 써지는 건 감복할 만한 일이었다
달큰한 술 몇 잔에 취기가 오른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춤을 출 것이고 남은 잔을 입으로 털어놓을 것이고 그리워한다 적을 것이고.. 그래 난 쓸쓸한 계절을 겨우 이렇게 나고 있었다

둥근 달이  어둑한 밤. 불어오 서늘한 바람과 함께 유유자적 흔들렸었다
침묵했던 것들과의 조우. 근원에 닿을 듯한 순간. 불을 밝힌 도시가 멀리서 보였다
내 허망한 사랑들은 저 도시의 황홀경이 빚어낸 신기루였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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