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걸어 다다른 이곳은 푸른 바다가 고요히 품은 외딴섬이다 언제가 가자고 닿자고 한 곳 꿈꾸어오다 절묘하게 상상과 들어맞는 곳 황금빛 억새가 나부끼다 눕고 바람은 비탈을 훑고 난 뒤 비로소 하늘에 오른다 숲을 울리는 산새들 소리에 한적한 숲은 깨나고 생령을 얻는다
시를 쓰다 그렸던 이곳을 '꼭 언젠가는' 하며 막연히 동경했었다 이곳에서는 내 가장 은밀하고 힘겨웠던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펼쳐진 해안선에 마음을 빼앗기고 바람에 실린 갯내음을 맡으며 아득해진다 너와 함께라면 못 참고 입맞췄겠지 아직 사랑하노라고 전부 털어놓았겠지 이별을 정리하려고 이곳을 찾았지만 마음 어딘가에서부터 애틋함은 끓어오른다
좋았던 일과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들 하얀 입김이 번지던 그겨울
유난히 따스했던 네 작은 손 눈송이가 네게로가만내려앉고 다만 널 안고서 눈이 하염없던 날 분명 지날수록 애틋함은 커질 테다 짐작이 가지 않는다 난 그때에 어떤 표정을 지을까 널 어떻게 기억해줘야 할까
회상에 젖어 걷다 보니 섬의 꼭대기까지 올랐다 옹기종기 모여있던 바닷새들이 망망대해를 향해 하나 둘 날아들고 망설임 없는 활공에 나도 따라 비행을 꿈꾼다 많은 곳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알고 그리고 아쉬움일랑 없겠지 태양빛에 물들어 가며 서로에게 눈부신 기억밖에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