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 만남은
지루했던 동남아 여행,
비 오는 어느 사찰이었다
그녀는 홍차를 좋아했다
우유나 무언가를 안 타고
맑게, 그 맑음을 사랑했다
처음 그 향을 마주한 순간,
나는 비로소 알았다
그 맑음 속에는 고요가 있다는 것을
비를 머금은 나무의 묵직함과
상큼한 라벤더가
지치고 우울한 나를 지켜주었다
그것들은 그녀가 내게 건네는
말 없는 위로 같았다
한 번, 두 번, 만남이 계속되고
익숙함이 편안함이 된 순간
쉽게 끝나지 않을, 관계를 보았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들은
마치 나의 삶에 내리는
가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그런 비와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맑은 홍차 한 잔을 들고
그녀를 떠올린다
비가 땅을 적시는 것처럼,
그녀의 존재는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