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자주 나오던 과제 중 하나는 그날의 신문 기사를 읽고 오는 것이었다. 당시 신문은 낱말은 모두 한자로 쓰여 있었고, 세로 쓰기로 되어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엄청 옛날 사람이 된 것 같다.
당시 우리 학교, 경기국민학교(서대문구에 위치한 사립초등학교)에는 학교에서 제작한 한자 교재도 있었는데, 신문처럼 낱말이 한자로 된 쉬운 설명문이 실려 있었다. '나는 京畿國民學校에 다니는 學生입니다.'와 같은 문장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렇게 문장 안에서 한자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익힐 수 있어서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물론 한자를 외워서 시험 보느라 너무 힘들었지만, 단순히 낱말만 주구장창 외우는 것보다 훨씬 나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또 아파트 상가에는 서예 학원이 있었는데(당시엔 서예 학원도 많았다), 한자 서예 쓰는 시간 절반, 고사성어 외워서 시험 보는 시간 절반, 이렇게 운영하였다. 나는 이 학원에 꽤 오래 다녔는데, 고사성어책 몇 권을 땠으니, 한자는 기억하지 못해도 고사성어 뜻은 거진 안다고 볼 수 있다.
중학교부터는 한문 교과서도 있었고(지금은 선택과목임), 시험 때면 엄청난 한자를 외워야 했는데, 그래도 이미 배운 한자들이 많아서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의 한자 학습이력을 살펴보면, 과거에는 한자교육에 그만큼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 한자 교육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제 값어치를 했는가? 내 생각은 '그렇다'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 낱말의 몇 %가 한자어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우리가 초중고 단계에서 공부하는 데 사용하는 낱말의 대부분은 한자어이다. 또한 시험에 나오는 낱말은 거진 한자어이다. 따라서 우리가 공부를 하고자 한다면, 한자를 공부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두 해 전인가 교과보충 프로그램으로 한국어 독해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수업을 신청한 3~4명의 아이들과 독해 교재를 가지고 수업을 하게 되었다. 학생들과 다양한 종류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처음 접하는 낱말의 의미를 유추하는 데 있어 한자를 공부한 아이가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당연히 낱말을 보면 뜻을 추측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게 다 내가 한자를 공부한 덕분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달은 셈이다.
나는 살면서 대부분의 수업을 한국어로 들었고, 얼마간의 수업은 영어와 이탈리아어로 들었다. 영어나 이탈리아어로 수업을 들으며, 어떤 지식을 습득하는데 언어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언어를 높은 수준까지 성장시켜 놓으면 전설 단계의 검을 들고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게임의 난이도가 매우 쉬워진다는 말이다. 한자 학습은 한국어 실력을 키워주는 다른 테크트리(게임에서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과정)와 같다. 그러니까 한자 교육이 필요한가를 논할 필요가 없다. 내 아이가 공부를 잘했으면 한다면, 조용히 한자 공부를 꾸준하게 시키면 된다. 시험 보는데도 유리한데 안 시킬 이유가 없다. 남들에게 알려주지 말자. 쉿!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서 공교육에서 한자교육(혹은 한문교육)을 강화해야 하는가? 한자교육이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데, 안타깝지만 우리 공교육에서 강조하는 것은 너무 많다. 영어를 엄청 강조하더니, 역사도 꼭 배워야 한다고 하고(맞는 말이다), 예체능 수업을 줄일 수는 없고, 코딩을 강조하더니, 진로도 중요하단다. 당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문제는 한자를 찔끔 공부하는 것은 의미가 별로 없고, 우리 공교육에는 한자가 밀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다.
고로 자신이 한국어로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한다면, 각자 한자를 열심히 공부하는 것으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