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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일흔다섯 번째 시

by 깊고넓은샘


정리



만약에, 정말 만약에

오늘 밤 숨이 멎는다면

그건 예고 없이, 조용히

방 안의 공기처럼 스며들겠지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어느 평범한 밤에도

마지막은 올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오는 거니깐, 마지막이란


그럼, 누군가 내 폰을 들여다보고

저장된 번호로 부고를 보내겠지

고르고 있을 정신이 없을 테니까


단골 분식집이나 미용실 원장님,

복사기 관리업체 사장님,

택배 아저씨도 부고를 받겠네


그들은 부고를 받고

고개를 갸웃하겠지

'누구지?'


안 돼, 싫어

나를 기억할 이유 없는 이에게

내 마지막을 알리고 싶지 않아


지금부터 정리하자

내 삶의 테두리 밖에 선 이들

그 경계선 바깥부터 지워가자


삭제, 삭제, 삭제

이름 없는 이름들

잠시 스친 인연들

고마웠지만 거기까지다


그래,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

나는 조금 가벼워졌고

안심이 된다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내가 떠나고 난 자리에 방문하신다면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은

그런 마음임을 기억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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