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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만 Nov 08. 2024

문학상) 우산을 새라고 불러보는 정류장의 오후/ 홍순영

젖기 위해 태어나는 운명도 있다

누군가는 탈출하기 위해 자신의 뼈 하나쯤 예사로 부러뜨리며, 골목에 쓰러져 있기도 하지만


뾰족이 날만 세우고 좀체 펴지지 않는 고집도 있다

그런 것은 십중팔구 뼈마디에서 붉은 진물을 흘리기 마련,

정지된 시간 위로 녹슨 꽃 핀다


사람이나 동물에게만 뼈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거

기민한 종족들은 물과 돌, 쇠에도 뼈가 있음을 일찍이 알아챘다

어긋난 뼈를 문 우산, 길 위에 젖은 채 쓰러져 있다

그도 내 집 담장 밑에 저처럼 누워 있었다

젖는다는 것은 필연처럼 물을 부르고

눈물에, 빗물에, 국 한 그릇에 젖는 허기진 몸들

젖은 몸으로 태어난 당신과 나

살면서 몸을 말릴 수 있는 날은 의외로 적다


우산을 새라고 불러보는 정류장의 오후

출발을 재촉하는 채찍 소리 도로 위에 쏟아지면

날고 싶어 퍼덕거리는 새들 몸짓 요란하다

기낭 속으로 반달 같은 슬픔 우르르 몰려들면

둥글게 휘어지는 살들 팽팽히 끌어당기는 뼈

긴장이 도사린 새의 발목은 차갑고 매끄럽다

새의 발목을 끌어당기다 놓친 사내가 도로에 뛰어든다



2011 제13회 수주문학상 대상




'우산을 새라고 불러보는 정류장의 오후' 내용도 내용이지만 제목부터 가슴 깊은 곳을 후벼 파는 기분이 들지 않나요? 저는 이런 작품을 만나면 정말이지 시를 쓰는 행위가 얼마나 자신과의 부단한 싸움이어야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 작품은 2011년 제13회 수주문학상 대상작으로 뽑힌 홍순영(1963~) 시인의 작품인데요. 요즘 수주문학상은 당선작 한 편을 뽑지만 당시엔 대상 1편과 우수상 3편을 뽑았답니다. 아래 붉은 문장은 당시 수상작으로 선정한 심사평 중 인상적인 구절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수소 분자와 산소 분자가 결합하면 물이라는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지듯이 관찰과 사색과 표현이 상호작용을 하면 시적인 화학 변화가 일어난다독창적인 예술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오늘 이 작품을 소개한 이유는 그렇습니다. 이 시를 만약 2024 제26회 수주문학상에 냈다면 당선됐을까요? 아마도 올해 심사자들이 심사를 봤다면 장담컨대 99.9% 탈락일 겁니다. 하지만, 작년인 2023 제25회 심사자들이 심사를 하면 당선될 확률 90% 이상이라고 봅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문학상 공모전에서 심사자의 취향도 그만큼 크게 좌우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신춘문예나, 어떤 문학상에 응모하고자 할 때는 해마다 심사자가 같은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예지야 각 문예지마다 추구하는 성향이 있으니 논외로 하더라도요. 그걸 확인한 후에 당선작의 경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거지요. 최소 지난 5년간의 당선작은 살피시고, 심사자가 동일하다면 그분들이 작품에서 무엇을 중점으로 보는지 지난 심사평을 잘 읽어보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겁니다.




젖은 채 버려진 우산을 보면서 새(당신과 나)를 떠올리는데 이는 필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고단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부서진 우산살을 덮고 있는 삐죽한 원단이 마치 새가 날기 전의 웅크린 죽지를 연상시키죠. 별다른 해설이 필요 없을 만큼 시가 펼쳐내는 풍경만으로도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말하지 않아도 느낌이 오는 이런 작품을 좋아합니다. 물론 머리 싸매고 구구절절 다 분석해야 이해가능한 시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요.


그렇다면 이런 제목은 어떻게 지을 수 있을까요? 솔직히 제 생각을 말하자면 이는 심사평에서 말한 것처럼 관찰과 사색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아니지 싶습니다. 이는 시인의 타고난 성정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타고난 성정이라면 무엇일까요? 저는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화자의 애시린 감정과 어떤 일에든 측은지심을 내는 순한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한 가지에만 몰두하지 않고 고루 시선을 주면서 '다 괜찮다 다 괜찮아' 하는 여리고 순한 마음 같은 거랄까요. 물론 그런 성정을 타고났더라도 오랜 관찰과 사색이 동반돼야 좋은 시를 쓰겠지만요.


요즘 시단의 흐름으로 보아 중앙지 신춘은 어렵더라도, 일부 지방지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성정이 강세를 띠고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듯합니다. 오늘 소개한 작품은 성정뿐만 아니라 우산과 새를 통해 우리의 고단한 삶을 말하고 있으니 메시지도 분명한 편입니다. 앞서 소개한 <멜로 영화>처럼요.


이런 시를 아, 좋구나 하면서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어디서 줄 바꿈을 하고, 어디서 연을 나눴는지, 왜 여기서 나눴을까? 그런 걸 많이 생각해 보면 좋습니다. '젖기 위해 태어나는 운명도 있다'처럼 강력한 진술을 첫 행으로 넣고 시상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라든가, 어떤 시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등등을요. 다만, 이런 종류의 시를 쓸 때 조심해야 할 점은 감정에 너무 치우치면 유치해질 수도 있으니 퇴고할 때 특히 그 점을 유심히 살펴야겠습니다. 우리가 꼭 실수하는 부분은  '삭'해야 하는 부분에서 아깝다고, 나름 멋지다고 생각한 나머지  '삭'하지 못하기 때문이거든요.


지치지 마시고 꾸준히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시길요.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문득 한 계단 올라선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글쓰기는 우상향으로 서서히 실력이 느는 게 아니라 수평으로 가다가 갑자기 계단 한 칸을 올라서는 식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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