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63화
곧게 뻗은 긴 나뭇가지, 그리고 그 나뭇가지를 가차 없이 휘감는 굵은 장미줄기.
“대체 아래층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순식간에 성장해 버린 거냐. 한계도 돌파하고 말이야.”
정말 미세하고도 미세한 떨림만을 담은 손을 앞으로 내뻗은 이준 형이 호흡을 다루며 멋쩍게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이십 초 가량 더 지속되던 팽팽한 수직선은 먼저 발을 뺀 나뭇가지에 의해 무너졌다. 후퇴가 워낙 급작스러웠던지라 순간 몸의 균형을 잃은 형이 잠시 몸을 휘청였다. 물론, 균형을 다시 잡는 것도 금방이지.
“완벽해. 통과했으니 올라-”
“아악! 제휘 삼촌!”
최 소장님의 통과가 온전히 형에게 전해지기 전, 다급한 인혁의 목소리가 위에서 내려왔다.
“왜 아무도 안 올라와!”
쿠당탕! 진우의 목소리가 묻힐 정도의 엄청난 소음 또한 같이.
“흐하하! 좋아, 좋구나!”
“와아악!!”
평소보다 곱절은 거뜬히 넘게 증가한 낙을 가득 끌어안은 박 협회장님의 목소리가 끝나자 다시 한번 천둥이 치는 듯한 커다란 굉음과 가쁜 비명이 들려왔다.
“……저 자식 눈 제대로 돌아간 것 같은데.”
평소에 업무 스트레스가…… 많이 심하셨던 모양인가.
“박 협회장이 과하게 신난 것 같아 많이 걱정되긴 하지만…… 일단 올라가 봐.”
“그럼 가보겠습니다, 아버지.”
“그래. 조심하고.”
형이 위층으로 올라가자 최 소장님은 어깨를 간단히 돌리시며 다시금 입을 여셨다.
“도헌아, 잠시 한 일 분만 쉬고 있어 주거라. 아직 몸이 좀 덜 풀린 것 같아서 말이야.”
“네.”
왜 내가 오니까 몸을 확실히 푸시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어찌 되었든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증가하는 긴장감을 애써 감추려 시선이라도 분산시키고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래 두 층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층이었다. 다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면 아무래도 작은 나무를 형상화하는 나뭇가지에 몸이 철저히 벽과 고정된 쌍둥이겠지. 층을 통과하지 못해 저렇게 된 건가?
작당모의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 속닥거리며 이야기를 하던 쌍둥이가 마주 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나뭇가지를 손에 휘감으시며 테스트 중인 듯한 최 소장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곧이어 이현이 목소리를 꺼냈다.
“아빠 안녕.”
“응, 안녕.”
“아빠 사랑해.”
“아빠도 우리 딸 사랑해.”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어.”
“응, 우리 딸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
“아이, 아빠도 참~”
연신 최 소장님과 짧은 말을 주고받던 이현이 볼이 한껏 상기된 채 해맑게 웃으며 쑥스러운 듯 고개를 내저어 보였다.
“바보야, 그게 아니잖아!”
“헉, 말려들었다……!”
뭘 그리 일을 꾸미나 했더니 겨우 이거였나.
몸을 푸시던 최 소장님이 다 들리게 말하는 쌍둥이의 대화에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셨다.
“아빠아~ 도헌 오빠 끝나고 한 번만 더 기회 주면 안 돼?”
“맞아. 처음은 너무 아쉬웠으니까 딱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응?”
“거기서 나와보렴. 우리 쌍둥이 할 수 있어.”
애교가 듬뿍 섞인 아양에도 최 소장님은 쉽게 넘어가지 않으셨다. 결국 풀이 죽어 잔뜩 시무룩해진 채 쌍둥이는 나뭇가지 속에서 몸만 겨우 조금씩 꿈틀댈 뿐이었다.
“귀여워라.”
쌍둥이를 보며 꺼내시는 최 소장님의 말씀에 기회를 엿본 이후가 서둘러 말했다.
“귀여우니까 한 번만-!”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훈련은 훈련이지.”
턱도 없을 테지만.
“기다려줘서 고맙다. 그럼 훈련에 대해 설명해 주마.”
최 소장님은 이준 형이 훈련할 때 쓰셨던 나뭇가지보다 비교적 짧은 나뭇가지를 하나 만드셨다.
“네 몸을 휘감으려는 이 나뭇가지를 막으면 돼. 어떤 수를 써도 상관없다. 생각보다 유연하니 참고하고 시간은 내가 만족할 때까지. 어려울 거 없지?”
……충분히 어렵습니다.
“준비됐으면 시작하겠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알겠지? 그러면, 훈련 시작.”
최 소장님의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나를 향해 뻗으신 최 소장님의 손을 따라 순식간에 몸을 길게 늘린 나뭇가지가 날쌔게 다가왔다.
시간을 길게 끌 수는 없다. 속도가 상당해. 최 소장님의 말씀대로 제법 유연하기까지 하다. 불 속성으로 어찌저찌 태워버리는 것도 일시일 뿐, 최 소장님의 만족을 사기에는 한없이 부족하지. 무작정 피하는 데에도 곧 한계에 도달할 텐데, 방법이 영 생각나지 않으니.
밀폐된 공간, 도망칠 곳이 한정적인 특성을 어떻게 이용할 수는 없을까…….
“생일~ 축하합니다~”
응?
“제발, 삼초온!!”
“생일 축하합니다~”
박 협회장님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생일 축하 노래가 위층에서 들려왔다. 중간중간 섞여 들어가는 거센 번개 소리 뒤에는 늘 진우와 인혁의 비명이 함께했다.
설마, 오늘 박인혁 생일이라고 노래 불러주시면서 때리시는, 아니 훈련하시는 건가? ……지극 정성이시네.
“사랑하!는! 우리 인혁이!”
“아니, 오늘 생일인 건 박인혁인데 왜 저한테도……!”
“생일~ 축하합니다아~!”
“와악, 잠시만! 아아아악!!”
……살아는 있겠지?
그때였다.
사악! 무언가 기어 오는 듯한 소리에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 손이 먼저 나섰다. 바닥에 내팽개치듯 사용한 불 속성에 내 발목을 노리던 나뭇가지의 끝이 매우 미세하게 마모되었고, 이에 나뭇가지의 속도가 조금 줄어들었다. 찰나의 틈을 노려 높게 도약했다.
“호오?”
최 소장님이 만족스러운 듯 웃으시며 말을 이으셨다.
“반응속도가 대단히 빠르군.”
실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빠른 반응이 아니다. 물론 신속한 반응속도가 승패를 좌우하는 데 있어 막중한 역할을 하긴 하나 더욱 긴요한 건 그 뒤의 대처지.
여태까지는 꽤나 나쁘지 않게 대응할 시간을 잘 벌고 있었는데,
“……쳇.”
착지 지점이 영 마땅할 곳이 아니었다. 잘못 착지한 구석에 발을 디디자 나뭇가지가 다시 득달같이 내게 다가왔다.
정면으로 돌파하는 건 불가능하고, 피하기엔 늦었다.
이미 한번 바닥에 붙은 나뭇가지는 여전히 바닥을 타고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뱀처럼 길게 늘어진 상태라 올라오지 못할 법도 한데 그럼 이대로라면 벽을 타고 내 몸을…… 잠시만, 벽?
내가 벽과 많이 벗어나지 않는 이상 벽에 붙은 나뭇가지가 떨어질 확률은 현저히 낮다. 지금은 나뭇가지의 움직임이 너무 자유롭다. 저걸 조금만이라도 속박하기만 한다면.
나뭇가지는 현재 내 발목을 휘감기 단 오 초를 남겨두고 있었다. 나는 두 손과 오른쪽 발을 벽에 완전히 밀착시킨 채 가만히 나뭇가지를 기다렸다.
오, 사, 삼, 이……,
일.
나뭇가지가 몸에 침투하기 바로 직전, 세차게 굴린 오른쪽 발의 속도를 입어 왼쪽으로 달렸다. 바닥과의 조금의 틈을 띄우며 벽을 타듯 매섭게 뒤따라 오는 나뭇가지를 피했다.
“우왁!”
“오우, 저 정도면 그냥 나는 거 아니야?”
벽에 밀착된 쌍둥이를 지나자 나뭇가지가 쌍둥이 위를 지나가려 할 순간 최 소장님이 쌍둥이 위에 초록빛의 불투명한 반원의 막을 씌우셨다. 내 예상대로 여전히 벽에 붙어있는 나뭇가지는 그 위를 지나 계속해서 나를 쫓아왔다.
그렇게 끊임없이 벽 주위를 돌았다. 완주하는 수가 늘어날수록 나뭇가지가 벽을 촘촘히 감았다. 벽을 돈 지 한 열 바퀴 되었을까, 마침내 드러난 틈도 없이 완전히 벽이 나뭇가지에 칭칭 감겼다.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