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64화
할 수 있는 한 최대치의 불 속성을 끌어낸 뒤 한 바퀴 더 돌며 나뭇가지에 불 속성이 맴도는 손바닥을 쓸었다. 타닥타닥, 나뭇가지에 완벽히 불 속성이 붙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불 속성을 나뭇가지를 타고 순식간에 번져 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드디어 걸음을 멈추었을 때에는 이미 큰 화마를 일으킨 불 속성이 벽에 감긴 나뭇가지를 모조리 태워버려 최 소장님과의 연결을 철저히 끊은 후였다.
“우와! 됐다!”
“도헌이 형 멋있다!”
두 눈동자를 한껏 반짝이며 신이 나 소리를 치는 쌍둥이의 말에 동요할 여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좋구나.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는 모습.”
아직, 훈련은 안 끝났으니까.
“그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지.”
자세를 다시금 잡기도 전에 방금과 비교할 수도 없는 속도를 가진 나뭇가지가 내게 날아왔다. 반응이 느렸군. 그럼 최선의 선택은…….
미처 피하지 못한 나뭇가지를 왼손에 휘감았다. 무서운 속도로 왼쪽 팔을 타고 어깨를 감싸려 할 때쯤 불 속성을 극치로 발휘해 무작정 나뭇가지가 감겨 있는 몸에 가져다 대었다.
순간 발생한 찬란한 붉은 광망과 함께 다행히 불 속성이 몸을 휘감는 속도를 따라잡았다. 빠르게 가지를 전부 태우고 남은 불씨가 제복까지 태워버리려고 할 때 나는 재빨리 불 속성을 거두었다. 불 속성은 이미 모두 사라졌음에도 왼손에는 여전히 약한 불씨가 남아 있었다.
왼손을 한 번 털며 불씨를 날려 보내며 앞을 바라보았다. 시선 끝에는 최 소장님이 잔뜩 식겁하신 채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도헌아. 우리 제발 몸 좀 소중히 여기자. 아무리 제 속성이라 한들 엄연한 불 속성, 즉 엄연한 불이다. 그러다 진짜 큰일 나.”
십년감수하셨다며 최 소장님은 안도를 담은 한숨을 내쉬셨다.
“뭐, 그래도 진짜 너무 잘했다. 대상의 움직임을 속박시켰던 것도,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던 것도 다 좋았어.”
“감사합니다.”
“훈련은 여기서 끝. 통과니까 올라가 봐도 좋다. 근데…….”
쾅! 콰앙! 쿠당당탕!
위층의 소음과 진동은 한시도 기세를 꺾지 않았다. 이제 이준 형 차례인 건가.
“아무래도 조금만 쉬다 올라가는 게 좋은 것 같긴 하구나. 우리 인혁이, 생일이랍시고 박 협회장 생일 축하 노래 들으면서 신물 나게 맞았겠구만. 옆에 있던 진우는 뭔 죄인지…….”
최 소장님이 쌍둥이 위에 설치해 두셨던 막을 손짓 한 번으로 수월히 제거하시며 고개를 내저으셨다.
“나뭇가지를 왜 바닥에서 안 떼셨습니까?”
내 물음에 최 소장님이 가볍게 웃어 보이셨다.
“이왕 바닥에 붙은 거 계속 유지한 채 이동하는 게 더 수월하니까. 그건 그렇고 솔직히 벽에 반 정도 감겼을 때 한 번 떼서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고 싶긴 했는데, 꾹 참았지.”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애절하게 바라보는 쌍둥이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시며 최 소장님이 말씀하셨다.
“혹시 중간에 나뭇가지가 벽에서 떼지길 원했던 거냐?”
뒤를 도시며 미소를 유지하신 채 물으시는 최 소장님의 말씀에 나는 진이 다 빠진 표정으로 답했다.
“……떼지면 어쩌지 계속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디 한 번 물어보자. 이 층에 반 정도 감았을 때 나뭇가지가 떼졌으면 어쩌려고 그랬느냐?”
그 물음에 잠시 곰곰이 고민하다 비장한 목소리를 꺼내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달 속성의 영향을 받은 불의 나비를 소환하여 자폭을…….”
“……안 하길 잘했군.”
“아니면 아까처럼 최대한 피하며 몸에 조금씩 나뭇가지를 감아 강한 불 속성으로 태워버리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성 있어 보이고요.”
“그러는 거 아니다, 도헌아.”
이 정도면 충분히 쉬었다. 체력도 다시 돌아온 듯하고, 부작용도 아직까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위층도 조금은 잠잠해졌고.
“그럼 이만 올라가 보겠습니다, 최 소장님.”
“그래, 남은 훈련도 조심해서 잘 진행하고.”
꺼내 달라는 둥 같이 가자는 둥 나를 향해 끊임없이 속삭이는 쌍둥이의 목소리를 전부 무시한 채 박 협회장님이 계신 위층으로 올라갔다.
“뭐야, 이거.”
사 층 입구 바로 앞, 잔뜩 꼬질꼬질해진 채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녀석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무심코 말이 튀어나왔다.
“죽었냐?”
“……사, 살아 있…….”
죽었는데.
“못 올라간다.”
무심결에 들려온 박 협회장님의 목소리에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한계 격파하는 데에 체력을 너무 많이 썼어. 계속 무리하면서 진행하다 진짜 쓰러진다, 최이준. 위층은 이 대표야. 제아무리 힘을 조절한다 한들 차원이 다르단 말이다. 이만하면 이미 충분하고도 넘쳤으니 이제 그냥 쉬어라.”
“……네, 그럼.”
이준 형의 손목에 팔찌가 채워졌다. 고개를 돌려 나를 발견한 형이 웃음을 보이고는 정신을 못 차리는 진우와 인혁의 옆에 앉아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했다. 박 협회장님이 제지하셨나 보군.
“드디어.”
형이 물러가자 층의 한가운데에는 광기가 어린 눈빛으로 사냥감을 발견한 듯 나를 바라보고 계신 박 협회장님이 계셨다.
“드디어 왔구만.”
분명…… 돌아오신 것 아니었나? 방금 형한테 말씀하실 때만 해도 괜찮으셨던 것 같은데 왜 다시 저렇게 광기가…….
“준비는 다 하고 왔겠지?”
답변을 재촉하시는 박 협회장님을 보며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이번 훈련은 복잡할 거 없다. 그냥 나랑 대련해서 이기면 돼, 쉽지?”
……잘못 들었나.
“협회장이니 뭐니 해서 눈치 볼 생각 하지도 마라, 이도헌. 상처를 입혀도 상관없다. 뭘 해도 다 좋아.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날뛰어.”
박 협회장님의 두 눈이 보라색으로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 해라. 삼촌 오랜만에 재미있게 놀아보고 싶으니까.”
층을 울리는 박 협회장님의 목소리는 곧이어 커다란 벼락에 묻혔다. 콰과광! 벼락이 급작스레 뒤에서 내리치자 반사적으로 위로 높게 뛰어올랐다. 스치지도 않았는데 온몸이 저릿하다. 역시, 위력이 굉장하네. 감히 저 힘을 넘나들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씹어먹는군.
이길 확률은 당연 존재하지 않는다. 애당초 말이 안 되는 내용이고. 박 협회장님의 말씀대로 정말 복잡할 것 없다. 실현 불가능한 훈련 내용을 계획하셨다는 것은 그냥 만족하실 때까지 대련하시겠다는 뜻이지. 그 만족이 얼마나 광대한 범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여기서 내가 할 것은 그저 최선을 다해 대련에 임하면 된다. 내 체력이 최대한 버텨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발이 땅에 닿기 전 불의 나비를 소환하여 연이어 박 협회장님에게로 보냈다. 잽싸게 비행하던 불의 나비는 박 협회장님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였다.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한 채 곧바로 하나씩 번개 속성에 터지는 불의 나비를 주저하지 않고 계속 보내다 왼쪽 발이 땅에 닿기 무섭게 불 속성이 맴도는 주먹을 박 협회장님에게로 날렸다.
그 순간.
“느리다.”
언제, 어디서 날아온 건지 모를 번개 속성으로 이루어진 비도에 서둘러 발을 뒤로 뺐다.
조금의 낌새도 없이 날아오는 비도를 눈을 찌르기 직전에 알아버렸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척도, 빛도 못 느꼈고.
한 번 의식되자 다행히 그 뒤로 오는 비도에서는 찰나의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존재를 의식하는 것에 있지 않았다. 피하는 것조차 버거운 비도의 삼라한 수를 불 속성이 단 한 개도 없애지 못하고 있었다. 날려 보내는 불의 나비는 족족 비도에 몸이 관통되어 소멸되었다. 거기다 이곳저곳에서 내려치는 벼락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이 막강함 앞에서 어떤 해결책을 내세워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내가 더 쓸 수 있는 수도 없었다. 이대로 가면 체력만 바닥날 게 뻔한데.
벼락이 내리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번개 속성으로 이루어진 비도는 날카롭게 나를 노리고 깊게 들어간 생각에 불 속성이 초반보다 미약해졌다. 박 협회장님은 자그마한 빈틈도 포용하지 않으셨다. 반격할 틈이 조금도 보이지가 않아.
끝내 묘안을 찾지 못한 채 짧은 시간도 벌이지 못하는 불의 나비를 무작정 소환하며 박 협회장님의 공격 하나하나를 겨우 피하고 있을 순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비도가 급속도로 내게 날아왔다. 더욱 강렬한 보랏빛을 품은 채 다른 비도들보다 대등히 크기가 크고 날카로운 비도가.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