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8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제8막 여름, 그리고 하계 훈련(7)

불의 나비 65화

by 매화연 Feb 26. 2025

 “윽……!”


 서둘러 불 속성을 팔에 휘두른 뒤 비도를 몸소 막았다. 부들거리며 떨리는 팔에 직접 닿은 비도가 막대한 힘으로 불 속성을 뚫으려 하고 있었다. 더는…… 못 버티겠군.


 가까스로 밀어낸 비도가 힘차게 반대로 나아갔다. 벽에 꽂힌 비도를 보시던 박 협회장님이 흥미가 가득한 눈빛을 내게 보내셨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가 없었으나 욱신거리는 통증은 피할 수 없었다. 통증을 억누르며 거친 호흡을 진정시키고 다시금 반격을 재개하려 팔을 들자 급작스레 심장이 조여왔다.


 이 통증은…… 망할.


 멈춰야 된다. 여기서 더 이상 속성을 사용하면 내가 내 속성의 힘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


 “쿨럭……!”


 결국 떨리는 손끝에서 멋대로 탄생된 불의 나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그 자리에 넘어졌다. 찬란히 빛을 태우는 불의 나비는 공격을 멈춘 박 협회장님의 손에 단숨에 파사삭 사라졌다. 박 협회장님은 자신의 손에 남은 미약한 불씨를 가만히 바라보셨다.


 ……빈틈.


 힘이 풀린 두 다리를 애써 새우며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었다. 결핵은 한 번으로 멎었고 이 상태면 적어도 한 번 정도는…….



 타악 -



 손목을 잡힌 채 높게 들어 올려진 손에 유지하기도 힘든 극강의 불 속성이 점차 꺼져갔다. 내 손에서 불 속성이 완전히 떠나간 것을 확인한 박 협회장님이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시다 이내 씨익 웃으셨다.


 “야 인마, 네 상태를 네가 확인할 줄 알아야지. 응?”


 박 협회장님이 손을 놓으시자 연이어 몇 번 기침이 나왔다. 어째선지 조금 안정된 몸 상태에 의아함을 품으며 박 협회장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너무 빨리 끝내려고 한 거 아니냐?”


 “저도 모르게 그만…….”


 “안다. 잘 알아.”


 호탕한 웃음을 보이신 박 협회장님은 내 머리를 꾹 누르셨다.


 “도헌이 너도 영 올라갈 상태는 아닌 것 같아 이준이처럼 그냥 여기 머물게 하고 싶지만, 이 대표가 기대를 좀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위층을 올려다보시며 박 협회장님이 자신의 뒷머리를 거칠게 쓸으셨다.


 “하긴, 아무래도 이렇게 몸 움직이는 건 학생 때가 마지막이었을 테니. 빨리 끝난 게 아쉽긴 하지만…….”


 아버지 운동 꽤 즐겨 하시니까. 속성 대표님들의 말을 들어보면 평소 이미지와는 달리 학생 때 대표님들끼리 수도 없이 대련하던 시기에 지치지도 않고 계속 대련을 하셨던 게 아버지라 말씀하실 정도이니. 하지만, 내 실력으로는 아버지의 상대가 되지 못할 텐데…… 이를 어쩌나.


 “무리하는 건 아니지? 힘들면 쉬어도 된다.”


 “괜찮습니다.”


 “그럼 되었다. 올라가 봐.”


 마지막 층을 향하여 한 걸음 뗄 무렵, 박 협회장님의 목소리가 다시금 격양되어 전해졌다.


 “자~ 자~ 충분히 쉬었으니 삼촌이랑 한 판 더 해볼 사람~?”


 “예……?”


 “그냥 죽여주세요…….”


 진우와 인혁의 중얼거림에 박 협회장님은 되려 더 신이 나신 듯 벼락을 세 사람의 중간에 떨어트렸다. 이준 형은 재빨리 몸을 움직였으나 간신히 벼락을 피한 진우와 인혁은 입 밖으로 비명을 토해냈다.


 “다 같이 하면 되겠구나~!”


 괜히 나에게까지 불똥이 튀기 전에 끝없는 벼락을 뒤로 하고 서둘러 아버지가 계시는 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죠. 자세한 건 추후에 임 실장을 통해 전해드리겠습니다. 네, 정확한 일정도 추후에.”


 아버지가 계시는 마지막 층을 올라가니 바삐 전화를 하시며 업무를 보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랑 통화를 하시는 건지 아버지의 목소리에 귀찮음과 짜증이 잔뜩 묻어났다.


 “……말씀드렸잖습니까. 근래에 회의와 미팅이 연이어 잡혀 있어서 당장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이번 신규 디자인 런칭도 이제 막바지 작업이라 한창 바쁠 때고 백화점이나 병원 쪽도 요즘 사람이 많이 붐비고요. 신경 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니 이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시끄러운 말소리에 아버지는 귓가에 바짝 붙이고 계시던 핸드폰을 넌지시 멀리하셨다. 대충 들리는 말에 의하면 회사가 어쩌고, 자기 딸이 저쩌고, 라며 자랑을 늘어놓는 듯싶은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들에 아버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한참 동안 이어진 일방적인 속사포는 심기를 단단히 건드려 버린 통화 상대의 말들에 아버지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질 무렵에 막을 내렸다.


 “네, 들어가세요.”


 서둘러 핸드폰 화면을 꾹 누르시고는 아버지가 슬쩍 나를 일별하셨다.


 “전화 한 통만 더 하마.”


 “아, 네.”


 곧바로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셨다. 짧은 연결음 뒤, 아버지 핸드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네, 이 대표님. 특경부 훈련 끝나셨습-”


 “임 비서…….”


 “……어라?”


 유독 낮게 깔린 아버지의 목소리에 태윤 형이 당황을 그대로 표출하였다.


 “하하, 왜…… 화가 나셨을까요오……?”


 조심스레 묻는 형의 질문에 짧은 정적을 유지하시던 아버지가 한숨을 푹 내쉬셨다. 그러자 형이 무언가 생각나신 듯 “아!” 입을 다시금 열었다.


 “혹시, 주조화향 대표님과 전화를……?”


 주조화향 대표? 화향이라 하면 내가 알기로는 소주 브랜드인데.


 말 그대로 화향(花香). 요즘 이삼십 대들 사이에서 한창 대세인 꽃향기를 담은 소주, 화향의 제조사. 이번에 화향주라며 양주를 만든다는 소문이 들려오긴 하는 것 같던데, 옷 브랜드인 JI랑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잖나. 주조화향과 JI, 이게 무슨 조합이야. 대체 주조화향 대표님이랑 아버지는 왜 전화를?


 “잘 아네?”


 “크흠, 아무래도…….”


 “……내가 분명, 잡지 말라 했던 것 같은데.”


 아버지는 이마에 가볍게 손을 얹으시며 이어 말씀하셨다.


 “자네도 알잖나, 임 비서. 신규 디자인 런칭 막바지에다가 회사 내뿐만 아니라 백화점과 병원 일로도 요즘 정신없이 바쁜 거. 누구보다 잘 아는 사실일 텐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에이, 바빠서 피하시는 게 아니잖습니까. 도련님 때문이시면서. 왜 제 앞에서까지 그러십니까? 도련님 앞도 아니……, 아?”


 급히 말을 멈춘 형이 잠시 정적을 유지하였다.


 “거기 도헌 도련님 계십-”


 “목소리 낮춰. 다 들린다.”


 나 때문에 주조화향 대표님과 통화를 한다고? 더 이해가 안 되는데.


 “이건 왜 말씀 안 드리는 겁니까? 숨기시는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굳이 귀찮은 일 알려서 뭐해. 내 선에서 끝낼 수 있는 건데. 것보다 이야기의 중점은 이게 아니잖느냐.”


 자연스레 화제를 바꾸려던 형의 속셈이 단숨에 무마되었다. 형은 어색하게 웃으며 정황으로 들리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주조화향 대표님 이번에 저한테 직접 전화 오셨습니다. 제 선에서 거절해 두어도 전혀 안 먹힐 것 같길래 일단 대표님께 말씀드려보고 다시 연락드리겠다 말만 해놓았는데…… 어느 정도 예측을 해두었다만 설마 진짜 대표님에게 전화를 하실 줄은…….”


 “……미치겠군.”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요즘 알콩달콩하게 연애하고 계시는 도련님 누구도 탐내지 못하게 잘 막고 있었는데 모두 막기에는 도련님을 노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아니 잠시만. 내가 연애하는 걸 형이 어떻게……? 거기다 어째서 아버지도 아는 눈치시지?


 “선아 아가씨 건만 해도 힘든데 이제 도헌 도련님까지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너무 많이 옵니다.”


 “웬만해선 그냥 무시해 버려. 상대도 해주지 마. 주조화향 쪽은……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보고.”

 “네, 알겠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대화가 끝이 나고 마침내 아버지와의 훈련이 나를 찾아왔다. 아버지는 후, 숨을 짧게 내뱉은 뒤 내게로 시선을 옮기셨다.


 “다른 훈련들은 잘하고 왔나 보구나. 밑층이 꽤나 떠들썩하던데.”


 여기까지 소음이 전해진 건가. 지금도 박 협회장님의 벼락이 활개를 치며 바닥이 잘게 진동을 유지하고 있으니 방금 전에는 더 심했겠지.


 “훈련은 어려울 거 없다. 네 공격이 내게 한 번이라도 닿으면 통과야.”


 박 협회장님 말씀대로면 아버지가 이번 훈련을 꽤나 기대하고 계신다는 것 같은데 내 눈에는 평소와 같은 아버지셨다. 지극히 냉철하시고 또 냉철하신.


 “준비는 됐겠지?”


 나는 떨리는 심장을 날숨 한 번에 진정시키려 한 채 나직이 내뱉었다.


 “네.”


 “시작해라.”


 아버지의 손목에는 여전히 백색으로 찬연히 빛나는 보석이 박힌 팔찌가 착용된 상태였다. 나는 의연히 뒤로 몇 걸음 옮겨지는 발을 우뚝 멈춰 세운 채 불의 나비를 소환하였다.


 뜨거운 열기가 손을 휘감아 돌았다. 현란한 붉은빛 속에서 발족한 불의 나비가 빠른 속도로 신속히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아버지의 옷깃을 스치기 전, 아니 아버지의 곁에 오래 머물지도 못하게 사르륵 소멸해버렸다. 더없이 부드러웠던 작별은 자그마한 불씨조차 재로 타버려 바람을 따라 하늘 높이 날아갔다.


 방금…… 뭐지?


 무언가에 홀린 듯 이어서 불의 나비를 하나 더 소환해 아버지에게로 보내었다. 전보다 더 천천히 날갯짓을 하던 불의 나비도 역시 똑같은 이별을 마주하였다. 아버지에게 조금도 닿을 수 없던 불의 나비가 사라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고 유연하다. 겉으로는 특이점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묘하게 반짝임을 품으신 듯한 것을 빼면. 팔찌도 여전히 착용 중이신 상태. 그런데 곁에 다가가기만 해도 불의 나비가 녹아버린다. 어째서?


 방금 전 통화에 심란하신 건지, 그냥 봐주시는 건지 잘 모르겠으나 아버지는 한 발작도 움직이지 않으셨다. 그저 붉은빛을 뿜어내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의 나비를 가만히 바라보실 뿐이었다.


 나는 천 팀장님의 층에서 했던 것과 같이 손에 불 속성을 입혀 주먹을 꽉 쥐었다. 아버지를 향해 가볍게 주먹을 휘두르자 그제야 아버지가 몸을 움직이셨다.


 직접 자신의 몸에 닿지 못하게 하신다. 몸에 무언갈 하셨다는 뜻인데, 뭘까.


 미세하지만 선명한 반짝거림. 닿는 즉시 소멸되는 불의 나비. 설마…… 달 속성을 몸에 두르고 계신 건가?


이전 04화 제8막 여름, 그리고 하계 훈련(6)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