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66화
급격히 느려진 움직임과 노골적인 시선에 아버지의 미간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깊어진 생각에 잠겨 아버지의 행동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 순간 뒤에서 날이 서 있는 매서운 바람이 내 등을 툭 떠밀었다. 자동적으로 앞으로 움직여진 두어 걸음에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없이 휑한 공간. 도로 고개를 돌리자 시선 안으로 나를 향해 팔을 뻗으신 아버지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 아버지가.
나는 정신을 차리고 훈련에만 집중하였다. 아버지가 몸에 무슨 짓을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우선적인 것은 훈련이었다. 한 번씩 불의 나비를 소환해 가며 아버지에게 전력으로 덤벼들었다. 물론 단 하나의 공격도 타격이 되지 못했지만.
중간중간 매서운 바람, 아니 너무도 미약해서 바람처럼 느껴지는 매우 약한 달 속성으로 아버지가 자세를 교정해 주셨다. 팔찌를 빼서 속성을 직접 사용하지 않으셔도 손만 움직여 달 속성을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설계를 해둔 모양이셨다.
아버지가 힘 조절을 엄청나게 하시고 계시다는 것은 불어오는 달 속성이 몸을 스칠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조절을 하신다 한들 달 속성은 달 속성이었다. 간혹 보다 세게 나오는 달 속성에 몸이 밀려 날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해 보였다. 벽 끝까지 밀려 나갈 때마다 아버지가 몸을 흠칫 떠셨으니까.
“……검술을 배울 때 오른손으로 쓰는 법만 배웠느냐.”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물음에 멈칫하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검 다루는 법은 사부에게 배웠다. 그때 양손잡이셨던 사부와는 달리 오른손잡이라 당연히 오른손으로 사용하시는 법을 사부가 가르쳐 주셨지.
“네. 오른손잡이라…….”
아버지는 잠시 고민하시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시더니 거듭 입을 여셨다.
“한 협회장은 검을 잘 다뤄. 검으로 승부하면 그 누구도 못 이긴다. 속성 없이 검 하나로 나도 죽일 수 있을 정도야. 양손잡이라 원래 양손으로 검을 다룰 수 있으나…… 왼손은 못 써.”
사부가 왼손을 잘 사용하지 않으시는 건 잘 안다. 어릴 적 사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왜 양손잡이이면서 왼손은 사용하시지 않냐고. 그때마다 사부는 그저 어물적 넘어갈 뿐 확실한 답을 알려주시지 않으셨다. 그저 늘 긴팔을 입으시는 사부의 옷자락 사이로 팔 끝까지 이어진 듯한 붕대를 보고 대충 짐작만 할 뿐.
보아하니 아버지도 이유까지는 말씀해 주시지 않을 눈치네.
“하지만 너는 양손 다 써야 돼. 이건 자신이 유리한 쪽에만 특성을 살려도 되는 검술이 아니잖느냐. 속성 사용에 있어 오른손잡이라는 제약을 받으면 안 된다. 왼손도 쓸 줄 알아야 해.”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속성을 재개했다. 왼손도 가끔 써보았으나 속성이 불안정하게 일렁였다.
끝없이 튀기는 붉은빛과 몸을 스치는 달 속성, 가끔씩 달 속성의 힘에 못 이겨 날아가는 것까지. 기초를 다지는 훈련의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체력에 한계가 오는 것이 체감되었다.
안정적으로 유지하던 호흡이 점차 어려워졌고, 몸의 움직임이 더디어졌다. 다시 한번 불의 나비를 아버지에게로 보냈을 때 오른팔을 슬쩍 들려던 달 속성에 못 이긴 몸이 오른쪽으로 거칠게 밀려갔다. 몸이 벽에 부딪치며 상당히 큰 소리가 일었다. 거듭 흠칫 몸을 떠시는 아버지의 시선에 무던히 극심한 충격을 입은 몸을 곧바로 일으키려다 그만 비틀거리고 말았다.
“……지금 못 일으켜 준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채로 거친 숨을 힘겹게 내뱉고 있자 아버지가 나직이 입을 여셨다.
“미리 설계해 둔 달 속성이 손과 연결되어 있어 직접적으로 닿았다가는 자칫 네게 영향이 갈 수도 있어.”
어렵사리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나를 일견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대체 어째선지 사부와 겹쳐 보였다. 흐릿하게 맴도는 사부의 모습에 인상이 절로 잔뜩 쓰였다.
……왜 하필 지금.
비틀거리는 몸을 애써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내가 일어나신 것을 확인한 아버지가 몸을 돌리실 때였다.
“더…….”
내 목소리에 아버지가 몸을 우뚝 멈춰 세우시고 다시 내게로 시선을 옮기셨다.
“더…… 할 수 있습니다…….”
가쁜 숨소리가 섞인 한마디는 내가 들어도 노상 신빙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후들거리는 몸은 도무지 미덥지 못했다. 아버지는 잠시 동안 아무 말씀 없이 나를 응시하시더니 손을 좌에서 우로 천천히, 그리고 유연하게 움직이셨다. 아버지의 손을 따라 광활한 밤하늘이 쫙 펼쳐지기 시작했다.
무수히 쏟아지는 별들 속에서 몇몇 개의 별이 나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 빛이 대단히도 밝고 찬연하여 금방이라도 현혹될 것 같았다. 무의식 중에 뻗어진 손끝에 서늘한 별의 온기가 담겼다.
살짝 스치기만 했는데도 통증이 예사롭지 않군. 마치 불에 타들어 가는 것 같아.
어둠이 대지에 고요히 내려앉았다. 이것이 현실인지, 달 속성으로 이뤄진 꿈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정신력이 붕괴되고 있었다.
빛이 밝다. 지독하게도 밝아 자칫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저 백색의 빛을 내 눈동자에도 박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극히 간절의 염원이 발을 앞으로 한 걸음 옮길 때였다.
불현듯 가미된 약간의 현기증. 곧이어 서서히 밤하늘이 사라지고 다시금 현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혼미해진 정신을 애써 되찾으려 하던 순간, 바로 앞에 계시던 아버지가 이번에는 손을 우에서 좌로 천천히 움직이셨다.
촤악 - !
바람처럼 옅게 날아오는 달 속성이 내 몸을 쭉 밀었다. 힘없이 그대로 밀리다 못해 아예 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해 버렸다.
“……허.”
다친 곳, 아픈 곳 하나 없이 그저 정말 눕혀지기만 했다. 차라리 아프기라도 했으면 조금은 덜 부끄러웠을까.
미약하던 발걸음 소리가 점차 극대화되었다. 여럿 들리던 발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의해 묻혀버렸다.
“뭐, 둘이 쌈박질이라도 한 건가?”
우연히 시선 안으로 들어온 김 선생님과 천 팀장님의 얼굴에 자잘한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대련을 했다나 뭐라나. 치료해 준다니까 영광의 상처 같은 소리나 해대면서 굳이 굳이 남겨두겠다네요~”
잔뜩 불만을 꾹꾹 눌러 담은 말을 내뱉어 보이시며 같이 탑을 올라오신 엄마가 노려보시자 두 분이 애써 모르는 척 고개를 슬며시 돌려 보이셨다.
“그나저나 도헌이는 왜 여기 누워 있는 거냐.”
“이 대표한테 맞았어?”
“……아뇨, 그냥…….”
김 선생님과 천 팀장님의 물음에 허탈한 목소리가 끝내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였다. 같이 올라온 연희와 인화가 내 옆에 쭈그려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얼마 안 가 최 소장님과 쌍둥이, 그리고 박 협회장님과 진우, 인혁, 이준 형도 오 층으로 올라왔다.
“와, 뭔데! 이게 뭐냐!”
“넌 진짜 나한테 평생 고마워해라.”
층으로 올라오시자마자 김 선생님의 핸드폰을 건네받은 박 협회장님이 화면을 보시며 두 눈동자를 한껏 반짝이셨다.
“도헌아, 이거 봐봐라!”
무작정 들이미시는 핸드폰 화면에는 연희가 물방울에 잡아먹혀서 얼굴만 겨우 빼꼼 내민 채 뾰로통해 있는 사진이 비춰지고 있었다.
“귀엽지 않으냐!”
“예…….”
아마 지금도 이 표정으로 김 선생님을 째려보고 있겠지.
“여보, 이거 봤어? 최 소장은? 김 원장이랑 이 대표는? 다른 애들은? 이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야 돼! 너무 귀엽잖나!!”
“아빠, 제발…….”
박 협회장님의 격한 호들갑에 연희가 고개를 슬쩍 내리깔았다.
창문 사이로 여름의 내음이 전해져 온다. 타오르는 열기와 기세를 꺾지 않는 푸르름이 뒤섞여 온 세상을 덮어버렸다. 급작스레 진우가 위에서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웃어?”
내 말에 진우가 히죽 웃는 입꼬리를 더욱 위로 당겨보았다.
“이야, 여름이다. 그치?”
“……그래, 여름이네.”
망할 여름.
내가 언젠가 기필코 죽여버린다, 서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