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68화
협회장 집무실에 가는 길에 문득 눈에 들어온 한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름은 봄의 꿈. 현재 협회에 남은 유일한 보육원이었다. 아마 그 아이들도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겠지.
광이 나는 창문 너머로 깔끔한 보육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담하지만 따뜻한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아픔을 안은 아이들을 맞이하는 보육원 안을 밖에서 잠시 지켜보다 문을 열었다. 문에 달려 있던 종이 맑게 소리를 내며 외부인을 알리자 청소를 하던 한 여자 선생님이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머! 특경부 이도헌 님 아니세요?”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선생님이 말했다.
“네, 맞습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그나저나 보육원엔 어쩐 일이신가요?”
“다름이 아니라 물어보고 싶은 게 한 가지 있어서요.”
내 말에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혹시 이곳에 윤하연과 하현성이라는 학생들이 지내고 있나요?”
“하연이랑 현성이를 아시나요?”
“그 두 학생이 특경부의 대원이 되고 싶다고 지금 본부로 찾아와서…….”
내 말에 선생님은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허리를 숙이며 나에게 사과를 하였다.
“죄송합니다! 어쩐지 학교 마치고 올 시간이 훌쩍 지나는데 안 오더라니. 제가 아이들을 잘 지도했어야 했는데…… 아이들이 대원분들에게 민폐를 끼쳤네요.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민폐를…… 끼치지 않았으니 사과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 아이들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형이랑 약속했으니까.
“그래도,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이도헌 님을 따라 본부로 가서 아이들을 데리러 올게요.”
“아니요. 아직 절차가 남아서 다 끝나면 제가 직접 아이들 데리고 다시 보육원으로 오겠습니다.”
“네? 절차라 하면…….”
안절부절못하던 선생님이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다시 마주하였다.
“특경부 대원이 되기 위한 정식 절차 말입니다.”
“정식 절차요?”
놀람을 표정에 고스란히 담으며 선생님이 어리둥절하다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잠시 들어오실래요?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은 분위기라.”
“그러죠.”
나는 선생님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보육원 안에는 아담한 크기의 방이 다섯 개 정도 있었다. 선생님은 복도의 가장 끝에 있는 원장실로 나를 안내했다.
“편하게 앉으세요. 아, 커피라도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자그마한 책상 하나에 성인이 앉기에는 조금 작은 의자 두 개. 앙증맞은 냉장고와 비좁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간이침대. 원장실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기에는 다소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 혹시 아이들이 대원분들의 업무를 방해한 걸까요……?”
내 앞에 앉으며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닙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다행이네요.”
선생님은 이제야 조금 편안해진 모습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아,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나는 주위를 한번 쭉 둘러본 뒤 다시 선생님에게 시선을 옮겼다.
“왜 지원 신청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현재 사부가 부재중인 상태에서 박 협회장님의 업무량은 가히 측정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부가 계실 때야 바쁘신 와중에도 협회장님들이 일일이 협회 시설 하나하나를 확인하시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셨으나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으실 것이다.
그렇기에 현 상황에서는 협회장님의 지원을 필요하면 개인이 직접 신청을 해야 했다. 헌데 이곳은 내가 보기엔 조건도 충분하고 대충 훑어도 지원이 필요한 상태임이 명확했으나 지원을 받은 흔적이 조금도 없었다.
“으음, 그게…… 원장님의 고집이랄까…….”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선생님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계속 혼자 힘으로 충분히 하실 수 있다 하셔가지고요. 저도 지원을 신청하자 이야기를 꺼내 보았지만 듣지도 않으셔요. 그래서 그렇게 무시하시다가 결국 몸 상태가 나빠져서 이젠, 계속 병원 생활만 하셔야 된대요. 그러게, 내 말대로 했으면 아프실 일도 없을 텐데…….”
계속해서 유지하던 미소는 얼마 못 가 금세 사라졌고 애석함과 슬픔만이 선생님의 얼굴에 남았다.
“워낙 고집불통이셔서.”
사라진 미소를 의식했는지 선생님이 다시금 떨리는 입꼬리를 애써 올리며 어색하게 몇 번 웃었다.
“원장님 없이 저 혼자라도 보육원을 지켜보려 애쓰고 있긴 하지만, 쉽지 않네요. 선생님도 저 한 명이고, 남은 아이들도 하연이와 현성이뿐이거든요. 이제라도 지원을 신청해 볼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음, 그냥, 저도 조금 지친 걸까요.”
선생님의 시선이 점차 밑으로 내려갔다.
“……뭔가 무섭더라고요. 이유와 원인은 잘 모르겠어요. 근데 저까지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아직 하연이와 현성이가 제 품에 있는데 어른인 제가 도망치면, 안 되는 거잖아요.”
협회 보육원 상황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이 보육원마저 사라진다면 협회에 남은 보육원은 하나도 없었다. 보육원에 속해 있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모두 새로운 가정으로 걸음을 옮겼고 자연스럽게 협회의 보육원들은 점차 모습을 감추었다.
아이들에게 행복하고 희망 가득한 삶이 시작된다는 일은 무척이나 기쁜 일이었으나 남은 아이들에겐…….
“어른도 도망쳐도 됩니다.”
내 말에 선생님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뜩 들었다.
“무서울 수 있고요. 지칠 수 있습니다. 어른은 그러면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겠어요. 이제껏 이곳을 묵묵히 혼자 지켜왔잖습니까.”
어른이라는 무게를 온전히 제 힘으로 짊어지기엔 아직 선생님의 얼굴에 앳된 끼가 잔뜩 남아 있었다. 내가 알기론 지금 내 앞에 떨리는 눈동자로 애써 눈물을 참고 있는 한 어른은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된 아직은 어린아이였다.
“열네 살 때부터 보육원에서 일했다 들었는데.”
“그걸 어떻게…….”
“여기 원장님 손녀분이시잖아요. ……한 협회장님과…… 원장님이 친분이 있어서 협회장님께 가끔 이야기 전해 들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일을 도와주었던 아이는 성인이 되기도 전에 어른의 책임을 둘러매며 청춘을 버리고 점차 무게에 억눌렸다.
“힘드시면 그만하셔도 됩니다. 그 책임 내려놓으셔도 돼요. 이제 모두 제가 짊어질 테니까요.”
이만하면 충분하니, 이제라도 그 청춘을 즐겨야지.
“하연이와 현성이는 저와 특경부가 책임지겠습니다.”
“그, 제 책임을 특경부가 대신 짊어지시는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한데…….”
선생님이 내게 미안함을 고스란히 표했다.
“죄송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그저 해야 할 일은 하는 것뿐인걸요. 선생님이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점차 눈가에 차오르던 눈물이 결국 떨어지자 선생님이 황급히 눈물을 닦았다. 그러나 눈물은 쉽게 멈출 생각은 없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원장님에겐, 아니 할머니한텐 제가 잘 말할게요.”
“네, 걱정하지 않도록 제가 하연이와 현성이를 잘 챙기겠습니다.”
선생님은 빨개진 눈가를 연신 닦았다.
“저…… 진짜 걱정 많았거든요.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가 아픈 것만으로도 속상하고 버거운데 여기서 제가 넘어지면 하연이랑 현성이가 갈 곳이 없으니까 마냥 힘들어할 수도 없어서…… 아으, 진짜…….”
말 중간중간에 훌쩍이며 어설프게 문장을 잇는 선생님에게 바로 앞에 있는 갑 티슈를 슬쩍 앞으로 밀었다.
“아, 감사합니다…….”
휴지 한 장을 꺼내 선생님이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았다.
“한 번씩 애들 보러 편하게 본부 놀러 오세요. 오기 전에 미리 연락만 한 번 해주고요. 본부에 또래까진 아니더라도 열일곱 살인 대원들이 있습니다. 워낙 성격이 좋아서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예요. 뭐……, 정신연령이 스무 살인 애들도 있고.”
순간 스쳐 지나가는 녀석들의 얼굴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내 말에 그제야 선생님이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