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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막 최연소 꼬맹이 대원?(3)

불의 나비 69화

by 매화연

박 협회장님의 집무실로 들어가니 협회장님과 함께 김 선생님이 계셨다. 나는 두 분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어, 그래 도헌아. 무슨 일이냐?”


박 협회장님은 서류를 잠시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셨다.


“물어볼 것이 하나 있어 찾아뵙습니다.”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일단 여기 앉아라.”


김 선생님이 웃으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김 선생님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 윤하연과 하현성이라는 학생을 아십니까?”


“윤하연이랑 하현성?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곰곰이 생각하시는 박 협회장님에게 김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 아이들이잖나. 십 년 전에 일어난 살인사건 가해자 딸이랑 피해자 부부 아들.”


“십 년 전? 십 년 전 살인사건이라면…… 아, 맞네! 하연이랑 현성이. 아휴, 그 당시에 난리였지.”


박 협회장님과 김 선생님의 반응을 보면 꽤나 유명한 사건이었던 것 같았다. 헌데, 내가 모를 리가. 분명 기억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도헌이는 기억 못 할 수도 있겠구나. 뭐, 하긴 중학교,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계속 공부만 했으니까.”


학업과 관련된 것도 이 대표를 닮았군그래, 라며 박 협회장님이 덧붙이셨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했던 건 딱히 특별한 이유나 목표한 바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의 칭찬이 듣고 싶어서. 짧은 한마디라도, 아니면 작은 미소라도 괜찮았다.


그래서 공부를 했다. 성적을 잘 받아오면 그때는 아버지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시지 않을까, 자그마한 칭찬이라도 넌지시 해주시지 않을까, 헛된 바람을 품었고 그 끝은 결국 화려하기 그지없는 불길이었으며 어느새 부질없던 바람은 타오르는 불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 애들은 왜?”


박 협회장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그게…… 그 아이들이 지금 특경부 대원이 되고 싶다며 본부에 찾아왔거든요.”


내 말에 박 협회장님과 김 선생님은 잠시 멈칫하시더니 웃음을 터뜨리셨다.


“하하하하! 들었나, 김 선생?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하다니.”


“귀엽기도 하지, 하하.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냐?”


김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미련한 고민을 연이었다. 허나 아무리 고민을 해도 형과 선생님과의 약속을 번복할 수도 없는 터.


“받아들여야죠, 대원으로. 아이들에 대한 기대는 없지만요.”


땅바닥을 찍고 있는 자신을 향한 나의 기대를 끌어올리는 건 오로지 아이들의 몫이었다.


“기대가 없는데 왜 대원으로 받아들이느냐?”


이준 형이 사부에 관한 말을 꺼낸 뒤로 아이들에게 같잖은 동정을 느꼈고 미안함을 수용하시는 사부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도저히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냥……, 갑자기 사부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사부와 실군단만 신경 써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이제 아이들까지 챙겨야 된다니. 내가 챙겨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해야 될 텐데.


……이게 다 사부 때문이잖습니까.


“애당초 한 협회장의 죄책감은 모순이다. 저지른 잘못이 없는데 그에 대한 책임이 존재할 리가.”


박 협회장님이 진지한 모습으로 입을 여셨다. 방금 그 한마디로 상황을 눈치채신 건가.


“나도 한 협회장도 아이들에게는 몹시 미안하다. 허나 그 순간에 우리가 일을 막을 방도는 없었어. 협회장은 신이 아니잖느냐. 모든 일을 예견하고 막을 수는 없지. 그렇기에 네가 그 거짓의 죄의식을 짊어질 필요 없다. 그것 때문에 아이들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고.”


그 말씀에 속뜻은 샅샅이 파헤치지 않아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 얄팍하고 허망된 책임과 사부가 느끼시는 자책의 대변으로 인한 마음이라면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가 새겨질 수도 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실언이 되고 아이들의 아픔은 더욱 급증한다. 그래, 어디까지나 내 마음이 그런다면 말이다.


“하연이와 현성이에게 앞으로는 그 어떤 상처도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대는 없으나 그 아이들에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넘쳐 나는 가망을 한없이 기대하는 것보다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믿고 지켜보는 편이 아무래도 낫다 판단하였다.


그리고, 사부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의 첫걸음이 이 아이들일 테니까. 잔혹한 세상 속에 한 조각의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것, 그것이 사부가 정의한 어른이었으니.


“사부의 영향이 없지는 않으나 오직 사부 때문에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건 아니라는 점 말씀드립니다.”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대원들은 모두 내 선택을 따를 것이고 아이들도 내가 밀어붙이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도 내가 왜 그 아이들을 대원으로 들이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그 아이들이 언젠가는 특경부의 대원이 될 운명이었겠지.


“뭘 그리 격식을 차려서 딱딱하게 얘기하느냐. 내가 널 모르는 것도 아니고.”


박 협회장님이 잠깐 나를 빤히 바라보시고는 이내 입꼬리를 올리셨다.


“그 부분은 전혀 걱정 안 한다. 우리 도헌이가 얼마나 잘할 걸 삼촌이 아는데.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아니, 아니다. 그 녀석이 아니면 아무 소용없겠지.”


박 협회장님의 말씀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고 있을 때, 문득 하연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허……,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 아이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현혹된 모양이군.


“대원들은 오히려 그 아이들이 특경부에 들어오는 걸 내심 바라고 있는 눈치인데 이 대표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잘 모르겠네요.”


“이 대표도 네 결정이라면 찬성할 거다. 널 많이 신뢰하고 있으니까.”


박 협회장님의 말씀에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저를 말입니까.”


다행히도 두 분 모두 내 말을 못 들으신 듯하였다.


아버지가 나를 신뢰하신다고? 과연 참으로 그럴까. 나는 언제나 아버지에게 부족한 아들인데.


“방금 하연이와 현성이가 지내고 있는 보육원에 다녀온 길입니다.”


“보육원이라 하면, 그 봄의 꿈 말이냐? 그러고 보니 진작 한 번 들렸어야 했는데 바빠서 잊고 있었군.”


“아, 그게 말이죠…….”


나는 박 협회장님에게 보육원의 사정을 자세히 전했다. 이야기를 다 들으신 박 협회장님이 안타까움을 고스란히 넣은 탄식을 조용히 내뱉으셨다. 한 번의 짧은 탄식으로는 복잡한 마음이 진정되지 않으시는지 미간을 희미하게 찌푸리시며 눈을 지그시 감으셨다.


“그래서 당장 하연이와 현성이가 머물 곳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애들 둘만 본부에서 생활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요.”


내 말을 들으신 김 선생님은 잠시 고민을 하시다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이들의 후견인이 되어주마.”


“김 선생님께서요?”


김 선생님은 멋쩍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 정도의 능력은 충분히 되고 마음도 그러고 싶으니까. 물론 하연이와 현성이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네,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나중에 애들 데리고 찾아뵙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화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이 대표가 너한테 뭐라고 하면 나한테 말해라. 내가 이 대표 따끔하게 혼내 줄 테니까.”


박 협회장님의 장난 섞인 말씀에 나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다시 본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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