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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막 최연소 꼬맹이 대원?(1)

불의 나비 67화

by 매화연

“다들 모였지?”


특경부 대원들 모두가 책상에 모여 앉았다. 대원들을 모은 장본인인 인혁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모인 것을 확인한 뒤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아주 심각한 일이 생겼어. 진짜 심각한 일이야.”


대원들을 쭉 훑어보다가 보고서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 인혁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날 쏘아댔다.


“야 이도헌, 내 말 듣고 있는 거 맞아?”


“듣고 있어.”


손은 실군단 보고서에, 시선은 화면에 고정시키며 귀로는 인혁의 말을 대충 흘려 들었다.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이유 모를 불만을 품은 인혁은 탁, 큰 소리를 내며 책상에 손을 올린 채 미간을 선명히 찌푸렸다.

그러고는 장난기를 싹 빼고 한껏 진지해진 모습으로 말했다.


“누가 내 푸딩 먹었어?”


인혁은 깊게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협회에서 하루에 다섯 개밖에 안 파는 푸딩이란 말이야……. 내가 새벽에 출근해 가지고 힘들게 두 개나 구해서 본부 냉장고에 넣어놨는데 하나도 안 남아 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웬일로 일찍 출근했더라니 겨우 푸딩 때문이었어?”


진우의 말에 인혁이 목소리를 높였다.


“겨우 푸딩 때문이라니, 그 푸딩이 협회에서 얼마나 유명한데! 진짜…… 그래서 도대체 누가 먹었어?”


인혁은 대원들의 얼굴을 한 명, 한 명 꼼꼼히 살펴보았다. 계속해서 옮겨가던 인혁의 시선이 인화에게서 잠시 멈춰 섰다. 인화는 자신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는 인혁과 눈이 마주치자 불쾌감을 겉으로 확연히 드러내며 인상을 썼다.


“뭘 봐, 왜.”


“네가 먹었냐?”


“아니.”


인혁은 의구심을 품은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쌍둥이, 너네 왜 내 눈을 못 보냐.”


인혁의 매서운 눈빛의 타깃은 먼 곳을 보며 인혁의 눈을 피하는 쌍둥이가 되었다.


“설마, 쌍둥이 니들이냐……?”


화살은 정확히 쌍둥이의 정곡에 명중한 모양이었다. 쌍둥이가 흠칫 놀랐다.


“아, 하하…… 나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크흠, 나도 갑자기…….”


“이 자식들이 어딜 도망가!”


인혁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쌍둥이의 뒤를 쫓았다. 쌍둥이의 사죄의 소리가 연신 들리며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순간 갑자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본부로 내려온 사람은 단정히 교복을 입고 있는 여학생 한 명과 남학생 한 명이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두 학생은 한치의 긴장도 없이 당당하게 본부 안으로 들어왔다.


속성 대표님들을 제외하면 누군가 자진해서 직접 본부로 찾아온 경우는 지금이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전혀 위급 상황이 일어나 본부로 찾아온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저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이유는 없었다.


“그만.”


내 말에 학생들이 곧바로 걸음을 멈추었다.


“그 이상 발을 옮기면 즉각 제압하겠습니다.”


학생들은 움찔 놀라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누구시죠?”


서늘한 분위기 속 차가워진 공기보다 더 차가운 내 목소리가 두 학생의 겁을 생성하였다.


“아, 안녕하세요……! 온기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윤하연이라고 합니다.”


“온기중학교 재학 중인 하현성입니다.”


여학생이 다시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먼저 또박또박 자기소개를 한 뒤 남학생이 뒤이어 말했다. 그들의 등장에 대원 모두가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무슨 일로 본부를 찾아오셨습니까.”


“특수 속성 경호 본부의 대원이 되고 싶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여학생의 말에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특경부의 대원이 되고 싶다고요?”


“네.”


당당한 태도에 순간 할 말을 잃은 채 여학생을 빤히 쳐다보다 그녀가 거듭 입을 열었다.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에요.”


진심을 가득 담아 반짝이는 눈동자. 저 눈동자가 여학생의 말이 장난이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진심 어린 눈빛을 애처롭게 내게 보낸다 한들 특수 속성 경호 본부 대원이라는 직책을 애들 소꿉장난이 아니었다.


“특수 속성 경호 본부는 애들 놀이터가 아닙니다.”


특경부라는 이름의 무게는 어린 학생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결코 가볍지 않았고, 특경부 소속이라는 사명은 곧 위험을 뜻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순간에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게 특경부이다.


“학생들이 오고 싶을 때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입니다. 게다가, 대원이 되고 싶다고요?”


누군가에게 보호받아야 할 어린아이가 벌써부터 목숨을 바쳐 누군가를 보호하는 사람이 되는 일을 어른 되는 입장인 나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


“특수 속성 경호 본부의 대원이라 함은 그저 한낱 진심으로만 올라갈 수 있는 위치가 아닙니다.”


“……진심은 그렇게 얕보실 정도로 가벼운 마음이 아니에요.”


순간 머리 뒤쪽을 한 대 크게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옅은 마음도 아니고요. 특경부에 대한 저희의 진심이 얼마나 무거운지, 얼마나 깊은지, 저희 말 들어보시지도 않고 멋대로 판단하지 말아 주세요.”


“지금…… 뭐라 했습니까?”


그렁그렁해지는 눈동자와 주먹 쥔 손의 떨림을 숨기려고 애쓰는 와중에도 뻔뻔스러운 당당한 말을 멈추지 않았다.


진심이라. 안다, 그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존재임을. 찰나의 반짝임이 아닌 영원한 빛을 품은 채 불가의 영역에도 도달하여 제 것으로 실현할 수 있는 게 진심임을 내가 모를 리가.


“……그래, 내가 말을 잘못했군요. 정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진심이 온전한 빛을 내려면 당사자의 쓸모가 보장되어야 하는 법.


“학생들이 올라갈 수 있는 위치가 아닙니다. 어떤 수를 쓸지언정.”


아무런 반응 없이 내 말을 듣고 있는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은 꽤나 충격이 컸는지 몸을 흠칫 떨었다.


“그깟 진심 하나만으로, 열정 하나만으로 들어올 수 있는 자리였으면 왜 여태껏 특수 속성 경호 본부의 대원이 겨우 아홉 명으로 유지되겠습니까.”


물론 ‘겨우’ 아홉 명이 아니긴 하다. 모두 각자 일 인분 이상의 역할을 탁월히 수행해 주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 학생들을 떼어내려면 더 세게 나가야 했다. 다시금 목소리를 꺼내려 할 때, 누군가 내 어깨를 살포시 잡았다.


“도헌아.”


이준 형이었다.


“형이랑 잠시 이야기 좀 할까?”


형의 부드러운 미소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이 잠시 형을 지그시 응시했다. 끝내는 그 미소에 이기지 못해 짧게 한숨을 내쉬며 그저 형을 따라 가장 왼쪽에 있는 방에 들어갔다.


문을 닫자마자 나는 입을 열었다.


“싫어.”


“음?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색하게 웃으며 형이 대답했다.


“허. 뻔하지, 뭐. 저 애들 받아주자는 거 아니야?”


“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하하.”


“그러니까 싫다고.”


형은 앞에 놓인 침대에 걸터앉았고 나는 팔짱을 낀 채 문에 몸을 기대었다.


“일단 형 말 한 번 들어봐 봐. 응?”


“……뭔데.”


“저 애들, 누군지 모르겠어?”


형의 물음에 나는 학생들의 얼굴을 다시 곰곰이 떠올렸다. 내 눈에는 딱히 특이점이라고는 없는 그저 평범한 학생, 그 이상 그 이하로 보이지 않았다.


“모르겠는데.”


“십 년 전에 협회에 살인사건이 하나 일어났었어. 꽤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십 년 전?


“당시 한 여성이 자신의 남편을 죽이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밖으로 나가 한 부부를 죽였어. 그리고 감옥에 들어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다 하더라.”


문 너머의 그 아이들을 보는 듯 형이 내 뒤에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 사건의 가해자가 여학생의 어머니 되는 사람이고 피해자 부부가 남학생의 부모님이셔.”


형은 다시 나와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사건이 막 일어났을 무렵 우연히 협회에서 한 협회장님과 하연이와 현성이가 같이 있는 걸 봤거든? 그때 한 협회장님이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우는 하연을 네 잘못이 아니라며 괜찮다고 다독여주다 하연이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가고 현성이 혼자 남겨졌을 때 조심히 안아주시면서 미안하다 말씀하시더라. 일이 일어날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한 협회장님.


그 단어 하나가 텅 빈 마음을 가득 채워 메아리처럼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그제야 현성이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리더라고. 고작 다섯 살짜리 아이가 계속 울음을 참고 또 참고 있었던 거지.”


사부가 미안함을 느끼시는 사건의 당사자들이 지금 본부로 찾아왔다.


본인 하나도 지키기 벅찬 어린 나이에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차마 삼키지 못한 아픈 상처를 끌어안은 채로.


사부였으면 어떤 선택을 내리셨을까. 겨우 중학생밖에 되지 않은 애들이 불쑥 찾아와 특경부 대원이 되고 싶다고 한다면 사부는 그냥 돌려보냈을까, 아니면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을까.


차라리 답이란 게 정해져 있다면 편할 텐데. 무엇이 옳은지 모르는 상황에서 확실한 하나는……,


사부시라면, 적어도 매정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는 않으실 것이다. 참혹하고 잔인한 세계 속에서] 아름다움을 어떻게든 찾아 보여주셨겠지. 단 하나의 작은 홀씨라 하여도.


“뭐, 그냥, 꽤 유명한 사건이었는데 저 아이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것 같아서 해주는 이야기야. 대원으로 받아들일지, 돌려보낼지는 온전히 네 선택이지.”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형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방금 여학생 거의 울려고 하더라. 네가 조금만 더 몰아붙였으면 울었을걸? 감당 가능했겠어?”


감당이고 뭐고 울든 말든 그냥 돌려보내면 되지 내가 뭐 하러…… 하아.


이 세계에 숨겨진 자그마한 홀씨, 아름다움. 대체 사부는 그걸 늘 어떻게 찾으신 걸까. 너무 꽁꽁 숨어 있어 나로서는 도저히 발견할 수가 없는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형.”


“응?”


“사부 이야기, 일부러 꺼낸 거지.”


“내가? 설마~”


내 마음을 돌리려고 일부러 꺼낸 게 확실했다. 선은 또 기가 막히게 잘 지켜서 화를 낼 수도 없고 진짜.


“솔직히 말해봐. 대체 애들 왜 감싸주는 건데?”


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금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어린애들만 보면 쌍둥이가 자꾸 나서 말이지.”


또 시작됐네, 지독한 동생 사랑.


“형은 쌍둥이를 너무 예뻐해.”


“왜, 우리 막둥이들 예쁘잖아~”


나는 쌍둥이 이야기를 하며 환히 웃는 형을 잠시 바라보다 수도 없이 복잡하게 늘어나는 고민 끝에 작게 덧붙였다.


“……일 잘 못하고 방해만 되면 바로 쫓아낼 거야.”


“당연히 그래야지요.”


형과 방에서 나와 나의 눈치를 보는 대원들과 학생들을 일별했다.


“학생들,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일단 잠시 들어와서 앉아 있을까요?”


형의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여학생이 환하게 웃으며 남학생의 손목을 잡아 남학생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와 책상에 앉았다.


“협회에 다녀올 테니 잠시 기다려 주세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짧은 한숨과 함께 나는 본부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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