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61화
“통과.”
이 층에 들어서자마자 천 팀장님의 통과가 울려 퍼졌다.
숨을 거칠게 내뱉는 이준 형의 뒷모습과 바닥에 쫙 깔린 유리 조각 같은 자잘 자잘한 얼음의 파편, 당장이라도 피부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한 깊고도 그윽한 서늘함.
인기척을 느낀 형이 뒤를 돌아보았다.
“왔어?”
아직 고르지 않은 호흡을 차분히 진정시키며 말하는 형이 나를 지그시 직시하였다. 초록색으로 환히 빛나는 형의 두 눈이 어째선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뭐랄까, 평소보다 빛이 더욱더 밝고 찬란한 느낌…….
“김 선생님도 오셨어요?”
“그래.”
적나라하게 자신의 눈동자를 지그시 응시하는 김 선생님의 시선에 형이 민망하게 웃었다. 한층 진지하던 김 선생님은 넌지시 미소를 띠셨다.
“보아하니 한계를 격파했나 보구나.”
형이…… 한계를 격파했다고?
“귀한 장면을 놓쳐버렸구만. 좋겠어, 천 팀장. 직접 한계를 격파하는 장면을 목도했으니 말이야.”
“아직 날이 많이 서 있어. 다듬기만 하면 순식간에 눈에 띄게 성장할 수 있을 거야.”
아무리 제 속성이라 한들 속성 보유자들에게는 저마다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속성 보유자 중에서 자신의 한계를 느끼는 자는 오십 명 중 한 명, 그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는 자는 백 명 중 한 명, 그리고 한계를 격파하는 자는 십만 명 중 한 명이다. 대략적인 수치가 그렇다는 거지 깊게 파고 들어서 분석하면 한계를 격파하는 자는 더욱 희귀하다. 한계를 격파한다는 건 속성 대표가 될 자격 중 하나를 얻는 것이니.
형은 그 확률을 뚫고 지금 한계를 격파했다. 형의 한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것을 격파하는 장면을 직접 마주하지는 못했으나 한계를 격파했다는 한마디와 영광을 담아 찬란히 빛나는 형의 초록빛 눈이 그에 대한 위대함과 한층 더 그윽해진 압도감이 적나라하게 전해졌다.
한계 돌파……, 내 한계는 아무래도 달 속성이겠지.
“이걸 최 소장이 봤어야 됐는데.”
안타까움이 묻어 나오는 김 선생님의 목소리에 이준 형이 몇 번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어서 올라가서 최 소장한테 자랑해. 속성 사용하다 자칫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몸 좀 사리면서 조심하고.”
“네. 이만 가보겠습니다.”
천 팀장님의 손짓에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는 얼음 파편과 함께 형은 최 소장님이 계신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너는 왜 올라온 거냐.”
김 선생님을 향하는 천 팀장님의 눈빛에 방금 전까지 담겨 있는 빛이 확 죽어버렸다.
“도헌이가 마지막이잖나. 애들은 다 올라갔는데 나 혼자 아래층에 쓸쓸히 있으라고?”
“어. 그래야지.”
“하, 진짜 너무하군. 내 마음이다.”
“여기 내 층이거든.”
위층으로 올라오자마자 나와 함께 올라오신 김 선생님과 천 팀장님의 투닥거리심이 이어졌다.
“오빠!”
천 팀장님 옆에는 목도리를 두르고 담요를 덮고 방석을 깔아 나란히 앉아 있는 인화와 연희가 있었다. 나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드는 인화를 보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코끝이 살짝 빨개진 채 배시시 웃어 보이는 인화의 모습에 조금은 긴장이 풀린 듯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결국 먼저 하얀 깃발을 들어 올리신 천 팀장님의 말에 김 선생님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셨다.
“이준이가 한계를 격파했다고 해서 더 긴장할 필요 없다. 부담 가질 필요도 없고.”
나도 모르게 첨가된 긴장과 부담감을 단번에 알아채신 김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번에도 기대하마.”
김 선생님의 온기 어린 손길이 스쳐 지나가듯 잠시 내 어깨에 머물렀다. 김 선생님마저 천 팀장님 옆으로 가시니 잠들어 있던 일부의 한기까지 깨어나며 그 서늘함이 더욱 선명해졌다.
“아까 전에 폭격음, 도헌이 네가 한 거니?”
“네.”
소리가 여기까지 전해졌나.
“아무리 자폭 기질을 가진 물체가 있어도 그 정도로 폭발이 크게 일어나지는 않을 텐데. 달 속성의 영향인 건가.”
달 속성의 영향……. 다행이었다. 이렇게라도 자신의 존재를 내게 확인시켜 줘서.
“고막은 안 나갔어, 김 선생?”
“멀쩡해.”
“아쉽네.”
“뭐?”
“자, 그럼 설명해 줄게.”
김 선생님을 가뿐히 무시한 채 천 팀장님이 훈련 설명을 시작하셨다. 하늘색으로 눈을 빛내시는 천 팀장님의 손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사소한 진동이 일며 얼음 속성으로 만들어진 벽이 내 앞길을 막아섰다.
“부숴. 제한 시간은 오 분.”
거의 공간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상당히 두터웠다. 바닥 끝부터 천장 끝까지 빈틈 하나 없는 얼음 속성의 벽. 마치 단 한 번도 뚫린 적 없는 천 팀장님의 보안을 엿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걸 부수라고? 오 분 안에?
“준비되면 시작할게.”
나는 아직 후유증이 떠나가지 않은 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준비됐습니다.”
별 수 있나. 이번에도 어떻게든 해내야지.
“그럼 시작할게요!”
천 팀장님과 눈이 마주친 인화가 크게 말했다. 틱, 타이머를 누르는 짧은소리가 울려 퍼지자 오 분의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벽에 살며시 손을 대자 이루 형용할 수 없는 한기가 혈관을 타고 심장으로 직행하려 한다. 그와 동시에 온몸의 체온을 훅 떨어트려 놓았다. 우두머리와는 감히 비교도 안 되는 극강의 서늘함에 손에 불 속성이 머물지도 못했다.
어서 생각해 내야 한다. 저 벽을 어떻게 부술지. 시간이 촉박해.
뇌를 재촉하며 머리를 굴렸다.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가망은 없어 보이는 가운데 한 생각이 뇌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깊게 숨을 내뱉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주먹을 되찾은 오른손과 왼손 주위에 불 속성을 입혔다. 뜨거운 온기가 손에서 더 퍼져나가지 못하는 중에 얼음 속성의 벽을 향해 오른손 주먹을 거세게 휘두르며 신속히 다시금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쾅! 큰 소음과 함께 벽과 주먹이 맞닿았고 이어서 치이익, 소리를 일으켜 자신이 커져가고 있음을 불 속성이 내게 알렸다.
살짝 녹아내린 벽이 물기를 조금씩 흘려보내고 있었다. 효과가 있다.
곧바로 왼손 주먹을 날림과 동시에 오른손 주먹에 불 속성을 추가로 입혔다. 이대로 반복, 그러면 어느 정도 충격을 온전히 흡수한 벽에 금이 가든 내구성이 약해지든 할 터. 그 틈을 노린다.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주먹질을 뒤따라 귀 아픈 굉음이 발생되었다. 아무리 불 속성이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다 한들 피를 피할 수는 없었다. 다행인 점은 피도 불 속성도 둘 다 붉기에 훈련이 끝나기 전까지 벽 너머에 있는 사람들이 내 상처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점이려나.
왼손을 휘두르며 오른손으로 불의 나비를 불러일으켰다. 소환되자마자 곧장 폭발을 낳아 등장을 요란히 알렸다.
최대한 골고루 이곳저곳에 닿는 불 속성이 벽을 마모시켜 조금씩 통로를 만들었다. 어린아이도 들어가기 힘들 법한 작은 통로에 불의 나비를 보내어 폭발을 일으켜 안까지 빠짐없이 불 속성을 마찰시켰다.
콰광! 쾅! 콰아앙! 휘둘러지는 주먹이 무의식으로 넘어갈 때쯤 또 다른 소리가 귓가에 선명히 맴돌았다.
쩌저적 -
마침내, 벽이 균열을 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