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나비 83화
*
최 소장님에게 방금 연구실 안에서 있었던 일을 다 들은 나는 잠시 곰곰이 생각했다.
우두머리의 말이 진실일까? 아니면 함정? 설령 그의 정보가 명백한 사실이고 그 뒷동산에 진짜 남아 있는 추억의 흔적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가 아무 목적 없이 이 정보를 최 소장님에게 알려주었을 리가 없다.
대체 또 무슨 꿍꿍이를 꾸고 있는 건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왔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함정일 가능성이 크겠지.”
“아무래도 우두머리의 정보이니 말입니다.”
최 소장님은 깊이 고민을 하셨다.
“그래도, 정말 남아 있을 수도 있으니.”
결심을 굳힌 최 소장님에게 나는 조심히 말을 꺼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그럼, 실군단의 관한 일이니까 당연히 특경부가 나서야지. 아, 헌데 나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 연구실로 온 게 아니더냐? 오늘 찾아온다고 했었잖나.”
물론 질문이 있어 연구실로 찾아온 게 맞긴 하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일과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지금은 이 일이 더 우선이니까요.”
“그래, 네가 그래도 된다면야.”
나는 책상에 올려놓은 제복을 챙겼다. 최 소장님과 연구실을 나가면서 진우에게 잠시 로비로 나와달라고 연락을 했다.
“꼬맹이들이랑 연정이 누나 제복이야. 휘장도 하나씩 줘서 넥타이에 달라고 해. 꼬맹이들한테는 넥타이 매는 법도 좀 알려주고.”
나는 진우에게 제복을 주었다.
“그리고 나 오늘 좀 늦는다. 퇴근 시간 전까지는 갈게. 잘하면 꼬맹이들 집에 가기 전에 올 수 있을 거야.”
진우는 최 소장님과 나를 한 번씩 일별한 후 말했다.
“뭐, 알겠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해. 최 소장님도요.”
진우는 제복을 들고 다시 본부로 향했다.
“가시죠.”
최 소장님을 따라 우두머리가 알려준 최 소장님의 아내분과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곳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최 소장님의 아내분에 관한 일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내분은 최 소장님의 생신에 갑작스럽게 번진 화재로 세상을 떠나셨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다 된 쌍둥이를 데리러 가려고 준비하며 아내분은 최 소장님과 통화를 하셨던 중이셨다. 그때, 의문의 폭발이 일어났고 금세 큰불로 번지자 건물은 삽시에 잿더미가 되었다. 아마 전선 합선으로 인한 폭발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로 인해 아내분은 밤하늘로 가셨고, 아내분과의 추억이 남겨진 물건들마저 재조차 남기지 않고 모두 불길에 타버렸으며, 최 소장님의 생신은 아내분의 기일이 되었다.
오늘이 바로 최 소장님의 생신이자 아내분의 기일이다.
나는 문득 유독 걸음을 재촉하시는 최 소장님을 바라보았다. 최 소장님은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고 계셨다. 아내분과의 추억을 생각하시는 건가.
우두머리가 말한 뒷동산은 최 소장님의 옛날 집에 뒤에 있던 자그마한 동산이 분명했다. 옛날에 그곳에서 어렸던 지금의 특경부 대원들과 함께 자주 놀았었지.
슬며시 피어오른 어릴 적 추억을 다시 넣어두려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우두머리에 집중할 때야.
우두머리는 분명 확실하게 모두 타버린 추억을 실군단 측이 업무를 보던 중에 찾았다고 했다. 과연 진짜 남아 있을까? 만약 남아 있다고 한다면, 실군단은 도대체 그걸 어떻게 찾은 거지? 이걸 순순히 최 소장님에게 알려주는 이유는? 그들이 보았던 업무는 또 무엇이고.
우두머리는 특경부와 협회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나를 자신과 적대 관계라 정의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면서 최 소장님에게는 고분고분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알려주며 호의를 표했다. 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 우두머리는.
또다시 불현듯 우두머리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쳐 지나갔다.
‘공연은 곧 시작되고 커튼콜이 내려오기 전에 제국은 도래할 거야.’
공연, 커튼콜, 그리고 제국.
우두머리가 남긴 말을 아무리 생각하고 되뇌어도 의미심장하기만 할 뿐이었다.
한치의 생각도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뒷동산에 도착하자 어느덧 하늘은 주황빛으로 점차 물들고 있었다.
그저 하늘이 아름다워서일까, 아니면 내 속도 모르고 이런 광경을 나에게 띄고 있는 하늘이 미워서일까. 노을에 침식되어 가는 하늘에서 쉽게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원래는 이 앞에 큰 저택이 하나 있었는데. 화마에 뒤덮여 자그마한 재도 없이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고 이젠 텅 비어버린 곳을 두 눈에 고스란히 담는 최 소장님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뒷동산 주변에는 몇몇의 실군단들이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저번에 나타났을 때와 달리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의아할 정도로 확연히 수가 적었다. 나는 팔찌를 빼며 최 소장님에게 말했다.
“실군단들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부탁하마.”
잠시 망설이시던 최 소장님은 끝내 말을 꺼내시고 산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셨다.
*
타버리지 않은…… 추억이라. 만약 그 추억의 흔적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아마 그곳에 있을 것이다.
JI 그룹 바로 옆에 위치한 JI 연구소는 끊이지 않는 연구가 계속하여 줄을 이어 언제 비상상태가 발생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속성은 예민하다. 온전히 자신의 속성 하나만으로도 극도로 예민한 특성을 띄는데, 두 가지 이상의 속성이 결합되면? 폭발은 매번 일어날 정도로 흔하디흔한 일이고 작은 불길도 꽤나 잦은 일이다. 여태는 내 선에서 수습이 가능하였으나 앞으로의 일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회사 내에 있는 나의 개인 연구실이라고 다를 것 없다. 만약, 속성을 이용한 연구를 진행하다가 속성이 폭주해 연구실이나 연구소를 뒤덮거나 큰 화재가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연구든 뭐든 즉시 멈추고 바로 대피해야 되지 않나.
그래서 연구소에서의 내 자리에도 연구실에도 가족들의 사진을 놔두지 않았다. 비록 사진일지언정 그 사고에 휘말리게 두고 싶지 않았다. 사태가 벌어지는 도중에 사진을 지킬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가족들의 사진을 비롯한 추억의 흔적은 모두 집에 있었다.
모두, 집에 있었는데.
불길에 휩싸여 모든 것이 재만 남기고 타버렸다. 재조차 이젠 모두 바람에 날아갔다.
그 찰나의 불길이 나의 사랑을 앗아갔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유일하게 연구실 책상에 놓여 있는 액자 속에 담긴 아내의 오래된 사진만은 재로 변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했던, 고귀하고 소중하며 아름다운 내 부인의 하나뿐인 사진만이.
그 사진마저도 얼굴 쪽이 닳아 없어져 사실상 추억이라 부를 수 있는 물건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맞지만.
나는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며 산의 정상으로 뛰어갔다. 다행히도 실군단은 산의 앞쪽에만 머물러 있었기에 막힘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종착과 가까워질수록 내 발걸음은 뇌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최고 속력을 내고 있었다.
하늘은 점차 흑으로 물들어져 갔고 높이 박힌 별들은 빛을 내며 산을 밝혀주었다.
시야에 끝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뛰는 것을 멈추고 천천히 걸어갔다. 익숙한 동산의 풍경과 맑은 공기가 도약하는 심장에게 진정하라 일렀다. 마침내 마지막 걸음이 그 끝에 멈춰 섰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땅을 파고 다시 덮은 듯한 둥근 흔적이었다. 그 주위에는 덧없이 거의 다 시들어가는 은방울꽃이 몇몇 개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팔찌를 빼 약간의 풀 속성을 개화 시기가 한참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피워져 있는 축 처진 은방울꽃에 주입하였다. 그러자 금세 은방울꽃이 마치 지금이 자신의 개화 시기인 마냥 생기를 얻어 파릇파릇해졌다.
“……은방울꽃, 당신이 참 좋아했었는데. 그치?”
닿을 수 없는 물음을 건네며 나도 모르게 희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은방울꽃에서 시선을 떼고 이어서 둥근 흔적에 속성을 가해 흙을 파내려던 그 순간이었다. 속성이 닿은 흙이 떠오르려는 무렵 어느새 내 앞에 나타난 하늘색의 빛이 소용돌이를 구성하며 강한 바람을 일으켰다. 원인 모를 강풍에 속성이 떠나간 은방울꽃이 힘없이 흔들렸다.
소용돌이 속 조금씩 무언가의 형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형체가 명확해지며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형상을 감싸고 있던 빛의 소용돌이가 시나브로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형상이 온전함을 이루자 소용돌이가 미약하게 남아 있는 바람을 내버려 두고 원래 자신이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태어난 존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