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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막 불길에 타버린 사랑(3)

불의 나비 82화

by 매화연

“짜잔~!”


문 너머로 꽤 크기가 상당한 택배 상자 두 개와 비닐로 포장된 채로 정 중앙에 리본을 단 커다란 곰돌이 인형 세 개가 떡하니 놓여져 있었다. 설마, 되묻는 듯한 눈빛을 이신에게 보내자 내게 장미꽃을 건네며 이신이 말을 꺼내었다.


“케이크는 항상 일주일 전에 미리 드시니까 저는 따로 준비 안 했습니다.”


얼떨결에 장미꽃을 받았다. 이슬 맺힌 장미의 꽃잎이 빛에 반짝였다.


“저기 아래쪽 택배는 커피머신, 위쪽 택배는 커피 원두입니다. 최 소장님 커피 드시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그래서 준비해 봤습니다! 아, 그리고 저 곰돌이 인형은 우리 이준 도련님이랑 이후 도련님, 이현 아가씨 거입니다. 우연히 봤는데 너무 예뻐서 이쁜이 도련님, 아가씨에게 진짜 꼭! 사주고 싶더라고요. 소장님이 좀 전해주세-”


“아니, 잠시만.”


멈추지 않고 쭉 내뱉던 이신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너 뭐라는 거냐, 지금?”


“뭐라는 거긴요~”


몇 번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던 이신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덧붙였다.


“최 소장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나는 이신을 바라보던 시선을 문밖에 잔뜩 놓인 선물들로 옮겨 일별하였다.


“어라, 어라라.”


이신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왜 그런 표정이십니까. 혹시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럴 리가.”


“그럼 그렇게 반응하지 마십쇼. 저 괜히 민망합니다.”


애교 섞인 말을 건네고는 헤헤거리며 웃는 이신을 지그시 바라보다 짧게 한숨을 쉬었다.


“저거 다 얼마야.”


“당연히 비밀입니다.”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던 이신은 옮겨갈 생각은 추호도 없는 내 적나라한 눈길에 결국 졌다는 듯 숨을 내뱉었다.


“인형 하나에 십만 원 정도 하고 원두가 오만 원 정도, 그리고 커피머신이 대략 천오백이었으니까…….”


“뭐?”


내 되물음에 이신이 말을 멈추고는 민망하게 웃어 보였다.


“아이, 왜 그러십니까. 소장님한테 천오백만 원 정도는 껌값도 아니시면서.”


철없는 이신의 말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정말 고맙긴 한데, 뭘 이렇게까지 해 주느냐. 생일이 뭐 대수라고.”


“이때까지 많이 감사해서 그러죠, 감사해서. 아잇, 낯간지럽게 뭘 또 직접 말씀하시게 만드시고 그러십니까!”


쑥스러운 듯 이신이 괜히 목소리를 높였다. 이거, 받기가 너무 미안한데…….


내 생각을 엿보기라도 한 건지 이신은 신속히 움직여 밖에 있던 선물들을 모두 연구실 안으로 들여서 한 곳에 가지런히 놔두었다.


“그리고, 대수 맞습니다. 최 소장님 생신.”


순간 몸이 절로 멈칫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신을 바라보자 여전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속에 어린 다정함이 너무도 컸기에 마음이 뭉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두 제 마음이 담긴 선물이니까 부담 가지지 마시고 받아주세요. 이게 뭐 대단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러고는 그대로 문턱에 서서 내게 인사를 건네었다.


“다시 한번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데도 예쁘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더 나은 비서가 될 수 있도록 노력 많이 하겠습니다.”


이신은 몸을 돌리고는 말을 덧붙였다.


“저 갑니다~”


“이신아.”


밖으로 한 걸음 옮기던 이신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내 목소리에 당황을 고스란해 표출하여 급히 고개를 돌렸다.


“나중에 밥이라도 한 끼 사주마.”


이신의 입꼬리가 도로 높이 올라갔다.


“세 끼 사주십쇼.”


“그래. 알겠다.”


수고하시라는 말을 건네고는 이신 연구실을 벗어났다.


무수히 쌓인 선물들 속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인형들에 절로 시선이 갔다. 곰돌이 인형이라. 쌍둥이는 좋아할 텐데, 이준이는…….


“오랜만에 녀석 당황한 표정을 볼 수 있으려나.”


나는 실험실 안쪽으로 들어가 기다란 유리병 하나를 꺼내 안에 약간의 물과 장미꽃을 조심히 넣은 뒤 팔찌를 빼 미약한 풀 속성을 꽃에 가하였다. 장미 한 송이는 더욱 활짝 피며 여린 빛을 띄웠다.


실험실 밖으로 나와 책상에 장미꽃이 든 유리병을 놔두었다. 깊은 활기가 스며든 연구실의 공기가 연구원들과 박 비서가 오기 전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안녕하십니까, 최 소장님.”


기계음이 섞인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연구실에 울려 퍼졌다.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대체 어느 틈에 들어온 거지? 연이어 계속해서 이어지는 선물과 축하에 누군가 왔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속성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듯 하늘색으로 변한 그의 눈이 극도의 밝은 빛을 품어내고 있었다.


“……네놈은…….”


“절 아십니까? 이것 참, 매우 영광입니다.”


차마 전부 숨기지 못해 약하게 느껴지는 살기와 숨길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강한 한기.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와 얼굴의 하반부를 가리고 있는 실이 엉킨 듯한 가면.


그리고, 그 속에 숨겨져 있는 기분 나쁜 웃음.


이 대표에게 전해 들은 실군단의 우두머리와 완전히 일치하였다.


“흐음, 추억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니었군요.”


움직이기 시작한 그의 손의 종착지는 책상 위 액자에 소중히 간직된 아내의 사진이었다. 나는 재빨리 팔찌를 빼며 거칠게 우두머리의 손목을 잡아챘고 그와 동시에 팔이 움직이면서 책상과 부딪쳐 그 위에 있던 계획서들이 바닥으로 흩날렸다.


잡지 못해 아무런 저항 없이 밑으로 추락하는 팔찌와 함께 바닥으로 흩뿌려지는 계획서들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나는 그대로 우두머리를 덮쳐 바닥에 눕혔고 한쪽 팔로 그의 어깨를 꾹 눌러 그가 일어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게 막았다.


꽤나 큰 소음과 함께 제압당한 우두머리는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반달을 담는 눈을 유지했다.


“환영이 너무 격하신 것 아닙니까?”


그의 교활한 목소리에 나는 어깨를 누르고 있는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자 때문에 한 협회장이 실종되었다. 자신의 안위는 뒤로 한 채 도헌이를, 협회를 지키려다 사라졌단 말이다. 그런데도 정작 네놈은 평온히 숨을 내뱉으며 태평하게 웃고 있다니…….


하고 싶은 말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입 밖으로는 그 어떤 말도 나오지 못했다.


“저에게 궁금한 것이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굳게 닫힌 입을 열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나는 그저 그를 조용히 노려보았다.


“너무 경계하시지 마십시오. 전 그저 최 소장님께 한 가지를 알려드리고자 이렇게 연구실로 찾아온 거랍니다.”


“듣기 싫다.”


미리 팔찌를 빼두었으니 당장 우두머리에게 속성을 사용해서-


“아내분에 관한 일인데도 말입니까?”


“……뭐?”


혜영이와 관련된 일……?


속성을 이용하여 그를 제압하려던 순간 그의 목소리를 담긴 그 한 단어가 귓가에 스며든 지금, 나도 모르게 행동도 생각도 완전히 멈춰버렸다.


내 눈을 향하던 그의 시선이 점차 밑으로 이동하며 팔찌를 뺀 내 손목에 정착하였다.


“아무리 속성 대표라는 이름을 쥐고 있고 그 때문에 본부 경보 제외 대상이라 한들 마음대로 속성을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최 소장님. 잘 아시잖습니까? 그때 한 협회장도 매우 미약한 속성으로 저와 겨루었지 본래의 힘을 발휘해서 속성을 사용하지는-”


한시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즉시 우두머리에게 속성을 가했다. 곧바로 형성된 나무의 한 줄기가 그를 낚아채며 벽에 밀착시켰다. 그를 휘감았던 단 하나의 줄기는 바닥까지 밑으로 침투하는 나무의 뿌리와 여러 개로 나뉘어 뻗어 나가는 가지를 벽에 박제시키며 곧 하나의 나무를 이루었다.


“한 협회장은 감히 네까짓 게 입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한 협회장은-!”


“지금 슬프시군요.”


그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가지에 무심코 피어난 꽃을 바라보았다.


“한 협회장이나 아내분과의 추억이라도 생각나셨습니까?”


나의 모든 감정은 저마다의 꽃을 가지고 있다. 기쁨과 슬픔, 분노, 미련, 행복, 증오, 그리움. 이러한 기타의 모든 감정들과 그 끝에 있는 사랑까지.


내가 속성을 사용하는 고유의 능력인 나무를 형성할 때면 그곳에는 언제나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꽃으로 피워 나고는 했다. 다른 감정들은 어떻게든 이를 꽉 물고 억눌러 꽃의 결실을 막을 수 있으나 단 하나, 슬픔만은 차마 감춰지지 못하고 결국 개화에 도달했다.


다섯 개의 자그마한 꽃잎으로 이루어진 꽃이 앙상해야 할 가지에 보란 듯이 훤히 만개하였다. 마치 유리를 닮은 투명하고 얇은 꽃잎은 굴절된 햇빛으로 옅은 무지갯빛을 빛내고 있었다. 꽃잎 하나하나에는 빈틈없이 수많은 금이 가 있었고 자칫 스쳐 지나가는 손끝만 닿아도 바스러질 정도로 무척이나 연약했다.


나의 슬픔으로 만들어진 꽃이었다.


“화는 숨기셨습니까?”


비열한 웃음을 수용한 우두머리 앞에 순간 한 협회장과 혜영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흐릿하고 또 흐릿해서 정녕 한 협회장과 혜영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으며 금방 다시 사라질 것 같았다.


벌써, 잊어버린 건가.


“하, 하하……!”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뜨거워져 가는 눈시울을 우두머리에게 보여서는 안 되었다.


“최 소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감히 미천하기 그지없는 제가 어디 한 협회장의 이름을 입에 담겠습니까.”


끝까지 한 협회장‘님’이 아닌 한 협회장이라고……, 하.


“오냐, 내가 친히 네놈의 그 미천한 명줄을 지금 단번에 끊어주지.”


그와 가장 가까운 가지 하나가 그의 목을 감아 점차 압박하기 시작했다. 호흡이 어려워지고 목소리가 막혀오는 와중에도 유지되는 초승달처럼 휘어진 그의 눈매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그가 가지를 떼어내려 몸을 움직이며 발악하고 애를 쓴다고 한들 헛될 뿐이다. 너의 그 미약한 능력으로는 결코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지.


“저희……, 실군단 측이 업무를 보다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최 소장님의 아내분과의, 하아, 추억을 말이죠.”


중간중간에 가파른 숨을 섞어가며 겨우 문장을 이은 그의 말에 순간 멈칫했다.


아내와의 추억……?


“뒷동산입니다. 자세한 장소는, 하아, 하아……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그때, 누군가 연구실의 문을 몇 번 연속해서 두드렸다.


“그럼……, 최 소장님. 다음에 또 봅시다. 아, 그리고.”


어느새 날카로운 가시들의 틈을 억지로 벌려 그가 겨우 작은 틈을 만들었다. 그 사이로 수많은 상처를 입어 피가 팔을 타고 나무에까지 침범하는 손을 꺼낸 뒤 그가 말을 이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탁, 손가락을 튕기는 간결한 소리와 함께 자욱한 안개와 함께 우두머리는 물론이고 우두머리를 벽과 고정시키고 있었던 나무조차 흔적도 없이 완벽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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