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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막 불길에 타버린 사랑(1)

불의 나비 80화

by 매화연

“얘들아, 내가 방금 협회에서 이상한 걸 듣고 왔는데…….”


평소와 같이 모두 자신의 업무에 찌든 채 적막을 유지하고 있던 본부 안, 이후와 함께 협회에 순찰을 간 연정 누나가 본부로 복귀하자마자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특경부의 광견이 누구냐? 최이후한테 아무리 물어봐도 안 알려줘. 나보고 맞춰보라면서.”


대원들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누나를 보더니 이내 꼬맹이들과 나, 그리고 연정 누나를 제외한 대원들의 웃음이 터졌다.


“그러게~ 특경부의 광견이 누구일까나~?”


은근슬쩍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진우의 말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하던 일을 마저 진행하였다. 대체 누나는 또 그런 말을 어디서 듣고 온 거야…….


“뭐야, 왜 웃어?”


“언니도 결국 들었구나?”


“다 아는 거야? 나만 몰라?”


어리둥절하던 연정 누나가 선아 누나의 말에 더욱 당황했다. 아직 그 시답잖은 별명의 주인이 누군지 모르는 꼬맹이들도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누구길래 그래?”


겨우 웃음을 멈춘 인혁이 연정 누나에게 말했다.


“누구일 것 같은데?”


“아니, 내가 진짜 순찰하면서 계속 생각해 봤거든? 근데 도저히 누군지 모르겠다니까.”


“특경부의 광견, 딱 하면 한 명밖에 안 떠오르는데. 정 모르겠으면 한 명 찍어봐.”


“흠…….”


이후의 말에 연정 누나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가늘게 뜨며 대원들을 한번 둘러보면서 심사숙고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진 누나와 눈이 마주치자 누나의 시선이 나에게로 고정되었다.


“쓰읍, 도헌이인가?”


누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왜 나라고 생각하는 건데?”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연정 누나가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하, 우리 리더님 별명이구나? 특경부의 광견이라. 미친개……. 오호, 잘 어울리는데? 멋있어, 멋있어!”


누나의 말이 끝나자 곧이어 진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거봐, 내 말이 맞지? 누가 봐도 너를 완벽하게 형용하는 말이라니까.”


“허…….”


하던 업무를 대충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인혁이 나에게 말했다.


“어디 갈려고? 설마 삐졌냐?”


“일하러 간다, 왜.”


“삐졌네, 삐졌어~”


인혁의 얄미운 목소리를 무시한 채 나는 ‘특경부 광견’이라는 단어가 다시 귀에 들어오기 전에 빠르게 엘리베이터를 탑승하였다.



최 소장님에게 유서호의 속성과 다른 조력자의 속성에 관해 물어볼 것이 있어 회사 로비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중에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을 걸어왔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특경부의 이도헌 님 아니십니까?”


뒤를 돌아 확인해 보니 마케팅 1팀의 팀장이신 박 부장님이셨다. 아는 사람이긴 했지만, 인사를 할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것보다 특경부라는 단어를 이렇게나 큰 목소리로…… 하아.


“네, 안녕하십니까. 마케팅 1팀 박 부장님 맞으시죠?”


“예, 맞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볼일이 있어서 방금 출고 쪽에 다녀오는 길인데 글쎄 특경부 대원분들의 제복이 도착했더라고요.”


꼬맹이들과 연정 누나의 제복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난 물류 팀에게 연락을 받은 적이 없었다. 본부 연락망으로 연락을 했다 하더라도 내가 그걸 모를 리가.


“그렇습니까. 근데 전 물류 팀에게 연락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만…….”


“아 그게, 제복을 내가 들고 왔거든요. 그러면서 연락 안 해도 된다 말하고 와서 당연한 일일 겁니다.”


“……예?”


머릿속을 계속 뒤져봐도 박 팀장님에게 그런 걸 부탁한 기억이 없었다. 아니, 부탁할 리가 없잖나. 물류 팀이 직접 본부로 가져다준 거면 모를까. 근데 대체 왜 박 팀장님은 뿌듯하게 웃고 계시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유, 바쁘신 특경부 대원분들을 대신하여 이런 시답잖은 일을 한 거 가지고 감사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하하!”


순간 너무 당황해 할 말을 잃은 채 머리가 띵 울렸다.


당연히 박 부장님의 잘못이 명백하나 물류 팀의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물류 팀은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건지, 그걸 나한테 말도 없이 박 부장님에게 주면 나보고 어떡하자는…… 허, 진짜 미치겠네.


두통이 느껴지는 게 곧 비가 올 예정이라 그런 건지 박 부장님과 물류 팀 때문인지 특정할 수 없었다.


“그, 박 부장님……. 다음부터는 특경부에 관한 모든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특경부는 속성 보유자만이 알고 있는데 회사에는 속성 보유자가 아닌 사람들도 있어 조금 조심스러워서요. 이해, 하시죠?”


그 말에 순식간에 박 부장님의 표정이 변하셨다. 잔뜩 구겨진 인상과 언짢아진 목소리, 비딱해진 태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자신의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겉으로 표현하셨다.


“아, 예. 그러든가요.”


속성 보유자이며 협회에 살고 있고 JI 그룹의 마케팅 1팀 팀장 직을 맡고 있는 부장이라 한들 그는 절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러한 태도를 보인다면 더더욱.


“제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제 자리에 있습니다. 뭐, 가져가시려고?”


대놓고 이젠 말을 놓아버리는 박 부장님의 행동에 절로 나오는 한숨을 애써 삼켰다.


“네. 지금 가져가겠습니다.”


마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박 부장님은 먼저 안으로 들어가시며 중얼거리셨다.


“특경부의 광견인 주제에…….”


하아…… 그놈의 광견, 광견…….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자 박 부장님은 나와 멀리 떨어지셨다. 최 소장님에게 가봐야 하지만 신뢰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에게 특경부의 제복을 맡길 수 없다. 자칫 속성 보유자가 아닌 사람에게 특경부의 존재가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팠다.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마케팅 1팀에 도착하자 약간의 대화 소리와 함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속성 보유자이건 아니건 구별 없이 마케팅 1팀의 직원들 모두 나를 보고 놀랐다.


“저 사람 대표님 아들 아니야?”


“어머, 맞네. 그 이도헌이라 했던가?”


“……어라? 저분이 왜 이곳에……?”


“음? 미진 씨, 대표 아들이랑 아는 사이야?”


“아, 아뇨! 그, 대표님 아드님이시니까, 워낙 유명하시잖아요! 하하…….”


직원들의 수군거림에 박 부장님의 인상이 더욱 짙어졌다.


“참나, 이도헌이 뭐 대수라고…….”


또다시 시작된 중얼거림을 무시하며 박 부장님의 책상으로 가자 특경부의 검은 제복이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박 부장님은 제복을 대충 잡아 나에게 던지다시피 내팽개쳤다. 나는 제복을 받고 구겨진 옷을 정리하였다.


“그럼.”


나는 박 부장님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한 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 이제야 진짜 원래 일정에 잡혀 있던 업무를 보려 최 소장님의 연구실로 갔다.


……나중에 물류 팀으로 가서 자초지종을 물어봐야겠군.


최 소장님의 연구실 앞에서 몇 번 문을 두드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에서는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침묵만이 유지되었다. 자리를 비우신 건가?


나는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다.


“최 소장님, 저 이도헌입니다. 안 계십니까?”


여전히 연구실은 적막을 깨지 않으며 그 어떠한 소리도 흘려보내지 않았다.


“저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문을 열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익숙한 안개, 지긋지긋하군.


무언가 한 차례 지나간 듯한 연구실 바닥에는 계획서로 보이는 떨어진 서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최 소장님은 작은 미동조차 없이 그저 가만히 서서 하염없이 벽을 쳐다보셨다.


“최 소장님?”


못 들이신 건지, 안 들리시는 건지, 최 소장님은 내 말에도 계속해서 벽에 시선을 고정하셨다. 나는 책상에 잠시 제복을 놓고 최 소장님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최 소장…….”



타악 - !



손이 최 소장님의 어깨에 닿기도 전에 최 소장님은 반사적으로 내 손을 세게 치셨다.


그대로 팔이 뒤로 밀려 나간 걸 확인하시자 최 소장님이 정신이 드신 듯 흠칫 놀라셨다.


“아…… 미안하구나. 나도 모르게…….”


“괜찮습니다.”


“맞다, 그러고 보니 오늘 도헌이가 오기로 했었구나. 그래, 그랬었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시며 최 소장님은 고개를 푹 숙이셨다.


잠깐이었지만 확실히 봤다. 손을 치시던 순간, 처참히 무너져 내린 최 소장님의 표정을.


“최 소장님, 혹시 방금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최 소장님은 잠시 고민을 하시다가 방금 있었던 일을 나에게 천천히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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